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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일반산

트레킹 후기 - 통영 둘레길 (2024.6.22)

by 청려장 2024. 6. 24.

2024년6월22일(토)

대한토 산우들과 함께 통영 둘레길을 트레킹하였다.

 

당초 통영 연화도 정기산행이 예정되었으나

오후에 비 바람이 매우 드세질 것으로 예보됨에 따라

섬에 들어가더라도 돌아오는 배가 없을 것이라 하여 취소하고

주관대장인 레간자님의 프랜B에 따라 남파랑길 29구간으로 대체한 것이다. 

 

트레킹 코스는 강구안으로부터 무전동 해변공원까지

대략 18km/6시간 소요되는 것으로 계획하였으나

비가 내리고 있으니 자유롭게 걷되.. 목적지인 해변공원엔 제시간에 와주십사 당부한다.  

 

트레킹에 앞서서

비장의 무기인 방수커버를 등산화에 씌우고 우중 트레킹에 대비한다.

그런데 1시간반 가량 걸었었나? 그 사이에 바닥이 너덜너덜.. ㅠㅠ

결과적으로 우중 산행엔 택도 없이 무용할 것이라 결론지음.^^ 

 

오전 9시09분, 통영 강구안에서 트래킹을 시작한다.

 

우선 동피랑 마을로 향한다.

 

 

동피랑 언덕에서 내려보는 강구안..

항구 건너편에 위치한 미륵산은 구름이 짙게 드리워져 윤곽도 보이지 않는다.

 

리얼한 할머니 모형..

고운 얼굴에 인자함이 덕지덕지 베어있다.

 

선두일행이 동피랑 벽화거리에 들어서기에..

많이 가본 곳이라 건너뛴다.

 

그것은 필자가 아직 가보지 않은 세병관에서 좀 더 머물고 싶기 때문이다.

세병관은 여항산 허리춤에 자리잡고 있다.

여항산과 세병관

 

동피랑 언덕에서 내려오다 만난 카페토랑.

선뜻 들어가고 싶은 충동이 일도록 입구 장식이 인상적으로 꾸며져 있다.

 

오전 9시28분, 느긋하게 세병관 입구에 들어설 즈음..

레간자대장을 필두로 선두 일행이 어느덧 동피랑 트레킹을 마치고 나타나서 앞서 간다. 와~

 

선두일행은 세병관 옆길로 사라지고..

필자를 비롯한 네명의 산우만이 티켓을 끊고서 세병관에 입장한다.

 

이곳은 삼도수군통제영이 설치된 곳으로서 

1604년부터 1895년까지 전-충청-경상의 3도 수군을 지휘하던 본부라고 한다.

 

세병관 입문은 망일루(望日樓)다. 

망일루

망일루를 지나 세병관에 이른다.

 

세병관은 1605년 세워진 국보 제305호 객사(客舍)다.

 

세병관 서쪽엔 산성청이 있다.

산성청은 산성중군이 통영성을 지키기 위해 근무하던 곳이라 한다.

 

세병관 동쪽 건물로 가는 길목엔 통제사비군이 있다.

290년동안 209대 통제사까지 근무하였다고 하니, 공덕을 기리는 비석이 많을 만하다.

 

내아군으로 들어선다.

이곳엔 통제사가 업무를 보던 운주당과 경무당이 자리하고 있다.

내아군 - 운주당, 경무당

운주당은 통제사 집무실이라 한다.

 

 

담장 한켠엔 석인이 있다.

세병관 앞 장대석 석축 해체 과정에서 발굴된 것으로

액막이를 위해 만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산우들은 발길질로 액을 떨쳐내고 있다.^^

 

오전 9시51분, 세병관을 벗어나..

 

서포루로 향한다.

 

서포루는 서피랑 이야기의 구심점이다.

 

서포루 가는 길목에서 박경리선생의 친필을 만난다.

문학의 골자는 "왜"라는 질문이라 말씀하셨다.

끊임 없이 관찰하고, 탐구하고, 느낌과 깨달음을 표현하는 것.. 그것이 문학이라는 말씀일까?

 

가르침을 해독하느라 중얼중얼 하며..

서포루로 오른다.

 

그 길목에서 만난 산수국.

헛꽃이지만 참으로 매혹적인 색상으로 피어 있다.

산수국

 

오전 10시10분, 서포루에 들어선다.

서포루

 

서포루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여항산 정상에 설치된 북포루가 시야에 들어온다.

그 아랫자락에 좀 전에 머물던 세병관이 보인다.

 

1872년에 제작된 통영고지도를 보면

동포루, 서포루, 북포루를 잇는 통영성이 삼도수군통제영인 세병관을 둘러싸고 있다.

성의 둘레는 3.66km, 높이 4.7km 가량 된다고 한다. 

 

남쪽에 위치한 미륵산은

여전히 구름에 휩싸여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서포루에서 내려와 해저터널쪽으로 가던 중..

한 무리의 산우들이 역주행하는 현장을 목격한다.^^

 

오전 10시35분, 윤이상기념관을 지나고..

 

해저터널 입구에 이른다.

터널 입구엔 용문달양(龍門達陽)이라 씌여있다.

얼핏 " 미륵도(산양)로 넘어가는 용문"이라 해석되지만.. 

 

1927년 통영군수였던 일본인 야마구치가 쓴 글씨로써

"잉어가 거친 여울목 물살을 거슬러 오르면 용이된다"는 고사성어에서 따온 것으로

"용의 문을 통해 태양(일본)이 있는 곳에 도달한다"는 뜻을 숨겨 놓은 것이라 한다.ㅠㅠ

 

터널 안으로 들어선다.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들"에서 중늙은이 둘이 용화사에 불공 드리기 위해 건너가던 곳이다.

한 많은 삶을 살아온 주인공 한실댁(김약국의 처)과 아들 때문에 한평생을 힘들게 살아온 윤씨..

 

두 늙은이가 이곳을 넘어가며 나누던 대화가 어찌나 마음을 저리게 하였던지..

"우리가 죽으면 이런 어두운 굴을 지나가겄제."

"아마도 저승길이 이럴 기다.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해저터널을 빠져나오니 미륵도다.

다시 통영으로 넘어가기 위해 충무교로 향한다.

충무교 입구에서 '착량교 김삼주 이야기'가 씌여진 안내문을 접한다. 

 

조선 영조 33년(1757)에 굴량교(掘梁橋)라는 나무다리가 세워졌었고

1935년 독지가 김남주가 사재를 털어 아취형 돌다리를 세웠는데 그것이 착량교(鑿梁橋)라고 한다.

현재의 충무교는 1967년 현대식 교량으로 설치된 것이라 한다.

충무교

 

예전에는 만조시에 이곳으로 바닷물이 들어오지만

간조시에는 땅이 드러나 미륵도로 걸어 갈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한산도 대첩 당시..

이순신 장군의 수군에게 쫓긴 왜선들이 이곳으로 도망쳐 들어왔다가

간조가 되어 물길이 닫히니 모래사장을 파내며 퇴로를 만들어보지만 여의치 않았고..

그 때를 놓치지 않은 우리 수군이 오도가도 못하는 왜구들을 섬멸하였다고 한다.

판데목(鑿梁)

그래서 통영반도와 미륵도 사이를 '판데목'(착량, 鑿梁)이라고 부르는데,

무수히 많은 일본군이 죽어 시체가 되었다는 뜻으로 '송장목'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판데목(鑿梁)

오전 11시03분, 충무교를 넘어 다시 통영에 들어선 뒤

통영대교 아래에 자리를 잡는다.

통영대교

 

다리 아래에 진수성찬이 차려진다.

 

그 즈음 빗줄기가 점점 세게 들이치기 시작하여..

또 다른 비장의 무기 비닐텐트로 아지트를 구축한다.

 

한 시간 가량 이어진 맛나고 신나는 점심시간을 마치고..

통영을 가로지르는 터널로를 따라 목적지인 무전동 해변공원으로 향한다. 

 

드세지는 빗속에서도 산우들은 즐겁기만 하다.^^ 

 

오후 12시56분, 통영터널에 진입..

 

 

오후 1시28분, 무전동 해변공원에서 대한토 버스를 만난다.

 

트래킹 거리 10.31km에 4시간22분 소요되었다.

그 중 휴식시간이 1시간 7분 포함되어 있다.

유익하고 흥겨운 우중 트래킹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