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10월14일(토)
최근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대구 팔공산(1,192m)을 찾아간다.
팔공산의 옛이름은 공산(公山) 또는 부악(父岳)이라 한다.
후삼국 통일과정에서 고려 태조 왕건이 공산의 파군재 전투에서 후백제 견훤에게 패하였다.
그 때 신숭겸(申崇謙) 장군을 비롯한 충신 8명이 왕건을 산으로 피신시키고 견훤에 맞서다가 모두 전사하였다.
이에 왕건은 통일을 이룩한 후 그 8명의 충신을 추모하는 뜻에서 이 산을 팔공산(八公山)이라 했다 한다.
산행코스는
A코스: 부인사-마당재-서봉-비로봉-동봉-관봉(갓바위) (15km/6시간)
B코스: 부인사-서봉-비로봉-동봉-관봉(갓바위) (12km, 6시간)
C코스: 갓바위-염불봉-비로봉-동화사(9.5km, 6시간)으로 계획되었으나, 실제 거리는 2km 가량 더 길었다.
오전 9시55분, 부인사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필자는 A코스에 손을 들었다.
A코스 선두는 주관대장인 올인님, 중간대장은 동그라미님, 후미대장은 모카크림님이 맡았다.
곧이어 고즈넉한 부인사 경내에 들어선다.
부인사(夫人寺)는 신라 선덕여왕의 명복을 빌기위해 7세기경 창건된 절로서 '부인'은 선덕여왕을 가르키며,
고려 초조 대장경(初彫大藏經)을 판각하여 보관하던 곳이었으나 1,232년 몽고 침입 때 전소되어 중창되었고,
고려말엔 무신집권에 항거하던 승려들의 본거지였다 한다.
현재 건물은 1930년대 초에 비구니 허상득(許相得)이 중창한 것이라 한다.
부인사 담장 옆에서 시작된 등로는..
산능선을 따라 가파르게 이어진다.
사람 발길이 많이 닿지 않은 듯한 다소 거친 등로를 쉬지 않고 40분 가량 오르니
커다마한 바위가 연이어 나온다. 그 즈음부터 등로가 편안해진다.
오전 10시57분, 마당재에 오른다.
주능선에 올라오는데 1시간 가량 소요된 것이다.
곧이어 헬기장이 나온다.
전방에 팔공산 서봉(삼성봉)과 그 왼쪽 뒷편으로 정상인 비로봉이 철탑을 치켜들고 있다.
오전 11시14분, 비로봉이 2.95km 남았음을 알려주는 이정표를 지난다.
이후 이어지는 주능선은 조망이 확 트인다.
다만, 날씨가 흐려서 근거리 산자락만 시야에 들어와 아쉬울 따름이다.
진달래 군락지에 들어서니..
팔공산 비로봉이 청운대 능선을 펼치며 나타난다.
비로봉 우측엔 노적봉으로 이어지는 능선도 시야에 들어온다.
오늘 A코스 마지막 봉우리인 관봉(갓바위)은 노적봉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암튼 육안으로 보아도 아득하다.
오전 11시17분, 톱날바위 표지판을 지나니..
서봉으로 향하는 능선이 날카로운 기암으로 이어진다.
노적봉 우측편엔 경산 환성산과 초례봉이 보인다.
가산-팔공산-환성산-초례봉 종주길(총 45km)로 알려진 가-팔-환-초 능선의 마지막 구간이다.
톱날 능선을 넘는다.
눈은 아찔하지만 발걸음은 즐겁다.
커다마한 바위 사이에 놓인 날씬한 철계단을 밟고 오르니..
고지대 수목들이 뺨을 울긋불긋 물들이고 산객을 맞이한다.
오전 11시30분경, B코스 일행이 서봉 50미터 직전까지 올랐음을 무전으로 알려온다.
A코스 선두 일행은 그 즈음 전망 좋은 데크에서 점심식사를 위해 둘러앉는다.
모두들 행동식을 준비해와 10여분만에 점심을 뚝딱 해치우고 떠난다.
필자는 챙겨온 도시락을 끝까지 비운 뒤 뒤늦게 서두르며 선두를 쫓아 서봉으로 향한다. (오후 12시05분)
서봉에 오르던 중 좌전방에 멋진 능선이 나타난다.
왼편 절벽은 청운대, 우측 시설물은 공군 통신대이다.
청운대(靑雲臺)는 해발 1,142m 높이에 형성된 아찔한 바위절벽으로 팔공산 절경 중 하나이다.
청운대와 통신대 사이의 고지대에는 생태공원인 하늘정원이 조성되어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한다.
청운대 절벽 아래 얼핏 보이는 암자는 원효대사가 득도한 오도암 (悟道庵)인 듯 싶다.
오후 12시20분, 서봉 정상에 오르기전 바라보이는 남사면 산기슭.. 알록달록한 단풍으로 채색되고 있다.
초례봉으로부터 이어지는 요령봉-대암봉-용암산-문암산은 대구 동남쪽을 가로지르는 왕건길이라 한다.
오후 12시25분, 서봉 정상에 오른다.
비로봉 우측으로 동봉-삿갓봉-노적봉이 차례로 윤곽을 드러내는데..
앞으로 가야할 길이 까마득함을 느끼게 한다.
서봉은 삼성암으로도 불린다.
부근 암자에서 원효의 제자 세 분이 득도하여 그 암자를 삼성암(三聖庵)이라 불렸기에
삼성암이 위치한 서봉이 덩달아 삼성봉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한껏 폼잡은 갑장 고산..
그 동안 생각 못했는데.. 많이 멋지다. 글구 잘 생겼다.^^
오후 12시35분, 비로봉으로 향한다.
오후 12시45분, 오도재를 지나 비로봉 직전에 되돌아 보는 서쪽 능선..
서봉이 어느덧 저만치 물러나 있고, 그 뒷편으로 가마바위봉이 톱날을 내밀고 있다.
오늘 주능선상에 첫발을 내밀었던 마당재는 파계봉과 가마바위봉 사이에 위치하는 듯 싶다.
통신대 주변 철조망 사이에 난 개구멍을 통과하고..
하늘정원 갈림길을 지나
커다마한 바위 뒷편 등로로 조금 더 오르면..
비로봉 정상석이 나온다.
군부대 시설 때문에 일반인 출입이 45년간 통제되다가 2009년 개방된 곳이다.
대한토도 2010년 산수대장이 주관하여 새롭게 개방된 팔공산 비로봉을 다녀온 바 있다.
오후 1시06분, 비로봉에서 내려와 동봉(미타봉)으로 향한다.
도중에 커다마한 석불을 만난다.
통일신라시대 약사여래입상이다.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면 여성처럼 보인다. 여자부처님?
두건을 두른 듯한 육계, 어렴풋 미소를 띄는 입가, 통통한 두 볼, 얼핏 치마도 걸친 듯하고..
오른손은 무릎 위로 늘어뜨려 손가락을 바깥으로 향하고, 왼손은 가슴 위에 올려 약병을 받치고 있다.
전반적으로 옷 주름이나 얼굴 모습 등의 조각 솜씨로 보아 통일신라 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오후 1시11분, 동봉 정상에 다가간다.
동봉은 미타봉으로도 부른다. 미타불은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불'의 줄임말이다.
전방에 신령봉을 중심으로 왼편 북쪽으로 뻗어가는 신령능선,
오른편엔 삿갓봉과 노적봉이 바라보인다. 아직도 노적봉은 가깝게 다가오지 않는다.
오던 길을 되돌아보니 비로봉 일대의 통신시설이 하늘을 찌른다.
오후 1시15분, 동쪽 염불봉-신령봉-관봉을 향해 산행을 속개한다.
염불봉에 이르는 등로는 암릉이다. 내 기억속에 이곳 또한 톱날능선에 못지 않는 험한 암릉이다.
그러한 기억에 걸맞는 괴암들이 연이어 나타난다.
커다마한 바위 한켠엔 산구절초가 꽃을 피워놓았다.
빈약한 흙을 뿌리로 움켜쥐고 생명을 잇기 위한 임무를 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비장함 없이 여유롭고 완벽하게 피어 있어 감동스러울 정도로 아름답다.
오후 1시20분, 염불봉에 다가간다.
염불봉 정상은 암봉이다. 절벽같이 까마득히 높은 바위를 간신히 타고 올라야 저 정상에 오를 수 있다.
15년전 저곳에 함께 올랐던 산우들이 생각난다.
2008년 산행기를 들쳐보니.. 짱돌형님, 월출산님, 하얀천사가 그들이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암릉길은 여전히 멋지다.
오늘은 갈길이 멀어 염불봉 정상을 우회해서 지난다.
오후 1시38분, 남쪽으로 대구 비슬산이 흐릿하나마 존재를 드러낸다.
그 사이 대구시가지는 곰탕이 되어 뿌연하다.
오후 1시41분, 예전에 보지 못했던 정자를 만난다.
그 위에 올라서니..
비로봉 북사면 일대에 짙게 물든 알록달록한 단풍이 일품이다.
오후 2시04분, 도마재를 지난다.
이정표를 보니 갓바위는 아직 4.6km 남았다.
갓바위로부터 주차장까지 거리는 2km. 예정했던 4시를 다소 넘겨서야 하산할 수 있을 듯 싶다.
오후 2시33분, 삿갓봉에 이른다.
그 즈음 정들/먼들님이 갑자기 나타난다.
A코스 후미와 함께 오다가 비로봉부터 급발진하여 내달려왔다고 한다. 대단한 체력의 부부다.^^
삿갓봉에서 되돌아보는 지나온 길..
비로봉-서봉 너머 위치한 가마바위봉이 구름모자를 쓰고 있다. 저 일대는 비가 내리는 모양이다.
그런데 그 즈음부터 우리가 가는 길목에도 순식간에 비가 들이닥친다.
대장님들은 무전을 통해, A코스 중간-후미와 B코스 일행이 동화사로 하산하도록 조정한다.
당초엔 모두 관봉에서 하산하는 것이었으나 비 뿐만 아니라 산행거리가 예상보다 길기 때문이다.
결국 올인대장님을 비롯한 A코스 선두일행 6명만 계획된 바대로 관봉으로 향한다.
오락가락하는 비를 맞으며 40분 가량 전진하니.. 비가 좀 잦아든다.
오후 3시15분경, 팔공산 골프장이 내려보이는 전망대에서 잠시 폼을 잡는다.
갑장 고산. 볼 수록 잘 생겼다. 영화배우 같다.^^
좀 더 전진하여 도장바위를 지난다.
저 바위 때문에 이 근처 봉우리가 인봉(印峰)이라 이름지어졌다.
오후 3시30분, 노적봉을 지나고..
오후 3시43분, 관봉(갓바위)에 이르니..
약사여래불이 근엄한 표정으로 산객을 맞이한다.
이 불상은 신라 선덕여왕 7년(638)에 의현대사가 어머니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조성하였다고 한다.
왼손에 작은 약호를 들고 있어 약사여래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소원을 잘 들어주는 부처님이라서
불자들 뿐만 아니라 많은 중생들이 이곳에 찾아와서 기도를 드리고 있다.
필자도 엎드려 절을 드린다.
가족의 건강을 비롯해 이리저리 소원을 끄집어내어 빌다보니 다섯번이나 무릎을 꿇게 된다.
나이들면서.. 소원의 가짓수는 줄더라도.. 그 간절함은 더 커지는 것 같다.
오후 3시50분, 하산하기 시작하여..
오후 4시02분, 관암사에 이른다.
물 한모금 마시기 위해 들렀는데..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다.
2010년 산행중에 이곳 지장전 아래에서 "무량수(無量壽)"라 쓰여진 편액을 발견하였고,
그것이 추사 김정희의 친필 편액임을 확인하였었는데 그것이 생각난 것이다.
지장전 건물이 있었던 절집으로 가니, 마치맞게 1층에 "무량수(無量壽)" 현판이 걸려 있다.
무량수 옆에는 勝緣老人(승연노인)이라는 글씨가 쓰여져 있다. 추사가 만년에 쓴 별호이다.
승연(勝緣)은 인연을 귀히 여기고 존중한다는 뜻의 불교 용어라고 한다.
그음, 삐침, 내려뻗음이 절묘하게 어울리며 기괴한 힘을 발하는
조선 최고 명필의 흔적을 음미하며.. 절을 벗어난다.
오후 4시20분, 갓바위 관광단지 주차장에 당도한다.
산행거리 17km에 6시간 25분 소요되었다.
뻑셨지만 나름 볼꺼리와 생각꺼리가 많았던 산행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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