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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특별산행

산행기 - 키나발루산 2 (2022.12.23)

by 청려장 2022. 12. 30.

12월23일(금)

새벽 2시에 기상하기로 약속하고 알람을 맞춰놓고 취침하였는데.. 새벽 1시경 갑장 산수가 바깥 날씨가 바뀌었음을 알려준다. "야~ 별 떴다!" 지난 밤 그렇게도 드세게 쏟아내리던 비가 그쳤다는 말이다. 정말? 정말 밖으로 나가보니 별이 쏟아질 듯이 빛나고 있다. 와우~~~ 

 

새벽 2시 식당에서 가벼운 식사를 한 뒤.. 정상을 오를 수 있다는 설레임을 품고서 출동 대기를 한다.

라반라타 게스트하우스 식당 - 일행 10명 (맨 우측 필자)

새벽 2시30분경, 정상을 향하여 2일차 산행을 개시한다. 이곳 산장(3,272m)에서 정상 Low's Peak(4,095m)까지는 도상거리 2.7km, 고도차 800m 가량된다. 정상까지 대략 3시간30분 소요되어 동이 틀 무렵인 새벽 6시경 도착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맨 앞에는 현지 가이드이다. 키나발루 산을 오르려면 만드시 현지 가이드가 동행하여야 한다. 등산객 3인 기준 1명의 가이드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우리 일행은 4명의 현지가이드가 함께 오르고 있다.

한 시간 가량 숲 길을 걷다 뒤돌아 보니 산 아래 마을의 불빛이 시야에 들어온다.

새벽 3시30분경, 숲길을 벗어난 듯 싶은데 전방은 깜깜한 어둠 속에 하늘엔 별빛이 초롱초롱 빛나고.. 그 아래 앞서간 산객들의 해드랜턴 불빛만이 앞길을 가늠케 해주고 있다. 

가파른 경사의 나무 데크를 밟고 오르고.. 

화강암 암반에 드리운 로프를 잡고 오르고..

또 오른다.

새벽 4시13분, 사얏사얏 체크포인트(3,668m)에 이른다. 산장으로부터 1km 전진하였고, 고도는 400m 가량 높이는데 1시간30분 가량 소요되었다. 고산증을 대비한 적절한 페이스이다.

 

사얏사얏 체크포인트는 관리사무소에서 발급 받은 'ID 카드'를 제시하여야 통과할 수 있다. 그래야 나중에 인증서를 받을 수 있다.

사얏사얏 체크포인트(3,668m)

사얏사얏에서 10분 가량 휴식을 취한 뒤 다시 거대 화강암반에 드리운 로프를 따라 전진한다. 전방 좌상단에 외로운 불빛이 시선을 끈다. 별빛일까? 정상의 불빛일까? 나중에 확인해보니 정상의 불빛이었다. 정상까지 도상거리 1km 라 하지만.. 현장 느낌은 아직도 저만큼 아득한 거리를 올라야 했었다.

오전 5시15분, 8km 지점을 지난다.

이제 정상이 가시권에 들어온다. 앞서 이동하는 헤드렌턴 불빛이 왼편으로 이어지다가 우측으로 꺾여서 올라간다. 그 끝이 정상인 듯 싶다. 이제 많이 왔다.

올라온 방향을 되돌아보니.. 어느덧 산 아래 저 너머로 붉은 기운이 번지고 있다. 먼동이 트고 있는 것이다.

주변의 기암괴석도 어둠을 머금은 채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왼편 무사 같이 우뚝 솟은 암봉은 나중에 알고보니 '성요한봉'이었다.

성요한봉(Saint John Peak)

그리고 거북이가 기어올라가는 형상의 암봉은 서부 산군(Western Plataeu)에 속하는 알렉산드라봉이었다. 두 봉우리 사이 가장 낮은 지점이 정상을 향하여 우측으로 꺾어 올라가는 분기점이다.

알렉산드라봉(Alexandra's Peak)

오전 5시45분, 그 분기점에 도착한다. 정상(4,095m)은 가파른 암릉 끝에서 산객을 맞이하고 있다. 4,000m 이상의 고지는 '신들이 사는 곳'이라 하고, Kinabalu는 '영혼이 머무는 곳'이라 한다. 드디어 영혼이 머무는 곳에 다다르고 있는 것이다.

정상으로 오르는 마지막 암릉

이제 체력도 어느 정도 바닥을 보이고.. 다소 어지러운 고산증세도 나타나기에.. 가파른 오르막 암릉길을 두 팔의 힘까지 보태가며 조심조심 정상으로 오른다. 정상에 오르기 직전 되돌아 보니, 지나온 암봉이 얼굴 표정을 드러낸다. 왼편 뾰족한 봉우리는 '남봉(South Peak)'이고 오른 쪽 험상궂은 표정의 봉우리는 '성요한봉(St John's Peak)'이다.

좌 남봉(South Peak, 3,933m), 우 성요한봉(St John's Peak, 4,091m)

험상궂은 표정의 성요한봉. 얼핏 고릴라 형상이다. 배트맨이 연상되기도 한다.

성요한봉(St John's Peak)의 고릴라

그 우측(서쪽)에는 알렉산드라봉이 웅장한 자태를 보여준다. 알락산드라봉 앞에 엄지 모양으로 솟은 봉우리가 있다. 그곳은 Oyayubi Iwu Peak이라 하는데, 오야유비(Oyayubi, 親指)는 엄지를 뜻하는 일본 말이다. 일본 식민지 시절 지어진 이름인 듯 싶다.

알렉산드라봉(Alexandra's Peak, 4,003m) & 엄지봉(Oyayubi Iwu Peak, 3975.8m)

오전 6시06분, 드디어 키나발루산 정상 Low's Peak (4,095m)에 오른다.

키나발루산 정상(Low's Peak, 4,095.2m) - 필자

정상에서 내려보는 경치는 신비로움이 압도적이다. 동쪽으로 동부고원(Eastern Plataeu)에 속하는 King Edward's Peak을 중심으로 한 거대한 장벽이 펼쳐지고, 그 아래로 깊이 1,800m 가량 된다는 협곡(Low's Gully)이  어둠속에 심연(深淵)을 감추고 있다.

[정상 View] 동부고원(Eastern Plataeu) - 거대 장벽과 협곡(Low's Gully)

남쪽으로 남봉과 성요한봉이 아득한 화강암 암장의 끝에 솟아 있다.

[정상 View] 남부고원(Southern Plataeu) - 남봉(South Peak)과 성요한봉(Saint John Peak)

성요한봉 우측으로 서부고원(Western Plataeu)에 속하는 알렉산드라봉과 디왈리 피나클이 솟아 있다. 디왈리(Dewali)는 '촛불 축제'를 뜻하고, 피나클(Pinnacle)은 '연달아 솟아 있는 자그마한 봉우리'를 뜻한다고 한다. 대략 작명한 뜻이 짐작된다.

[정상 View] 서부고원(Western Plataeu) - 성요한봉(Saint John's Peak), 알렉산드라봉(Alexandra's Peak), 디왈리 피나클(Dewali Pinnacles)

우리 일행 모두 차례차례 정상 인증샷을 찍은 후..

정상 인증샷

오전 6시20분경, 하산을 시작한다. 등로는 성요한봉쪽으로 내려가다, 성요한봉 직전 분기점에서 왼편 남봉쪽으로 이어진다. 그 위에 하산 중인 산객들의 움직임이 개미 행렬처럼 자그맣게 시야에 들어온다.

좌 남봉, 우 성요한봉

어느덧 떠오른 해는 먼 하늘의 구름에 가려졌지만.. 부족함 없이 신들의 세계를 밝히고 있다. 화강암반 너머엔 지상의 산자락이 아득하고, 구름은 산자락 사이를 메우며 흩어져 있다.

남봉(South Peak)

오전 6시33분, 성요한봉 직전 분기점에서 되돌아보는 Low's Peak. 어느덧 하늘을 찌르고 있다.

Low's Peak

등로는 전방에 '못난이 자매봉(Ugly Sisters Peak)'쪽으로 이어진다. 못난이 자매봉은 올라올 때는 어두워서 보이지 않던 봉우리이다. 그런데 그 이름의 유래는 알 수가 없다. 나중에 좀 더 가까이 지나가지만 특별히 눈길을 끄는 형상도 찾아볼 수 없다.

못난이 자매봉(Ugly Sisters Peak), 남봉(South Peak)

조금 더 내려가다 되돌아보니 정상이 저만큼 물러나 있다. 정상에서 내려와 이곳으로 꺾어지던 분기점은 Low's Peak과 성요한봉 사이 가장 낮은 지점이다. 그 부근의 등로가 얼핏 하얀 띠처럼 보인다.

좌 성요한봉, 중앙 분기점, 우 Low's Peak

고릴라 형상을 보여줬던 성요한봉은 옆으로 지나오니 또 다른 형상을 보여주고 있다.

성요한봉(St John's Peak)

이어지는 암반 위 등로.. 아직도 끝없이 이어진다.

남봉의 날카로운 정상 너머엔 하늘과 땅이 아득하다. 

암반이 갈라진 틈엔 조그마한 꽃들이 와글와글 피어있다.

화강암반 틈새 야생화

어느 암반 표층엔 악어 한 마리가 주둥이를 내밀고 있다.

악어 바위

오전 7시12분, 또 다른 기묘한 암봉 아래를 지난다. 자료를 찾아보니.. '못난이 자매봉', '당나귀 귀봉', '압둘라만봉'이라는 유명 봉우리들이다. 못난이 자매봉은 특별히 못난 구석을 찾기 힘들었다. 그런데 왜 그런 이름을 지었을까?^^

왼쪽 못난이 자매봉, 중앙 당나귀 귀봉, 우측 압둘라만봉

당나귀 귀봉은 쌍봉인데 위에서는 서로 겹쳐서 홑봉인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 더 내려오면 두 개의 봉우리가 보인다. 원래 왼쪽 봉우리도 우측 봉우리만큼 높았는데 2015년 규모 5.9의 지진이 일어났을 때 왼쪽 봉우리 상단이 떨어져 내렸다고 한다. 당시 187명이 등산하고 있었는데, 그 중 18명이 사망하였다고 하니.. 엄청남 재난의 흔적이 저곳에 남아 있는 것이다.

못난이 자매봉(Ugly Sisters Peak), 당나귀 귀봉(Donkey Ears Peak), 압둘라만봉(Tunku Abdul Rahman's Peak) [Photo by 충곡, Edit by 필자]

우측의 남봉(South Peak)은 또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였다. 예전에는 저 봉우리 꼭대기까지 등산이 허용되었으나, 언제부턴가 통제되어 오를 수 없다고 한다.

남봉 (South Peak)

남봉과 당나귀 귀봉 사이로 이어지는 화강암반은.. 지상의 초록 산군들과 경계를 짓는 듯이 낭떠러지 처럼 다가오고 있다. 

오전 7시21분, 전방에 사얏사얏 관문이 시야에 들어온다.

사얏사얏 관문에서 다시 ID 카드를 보여주며, 정상 등정 인증을 받은 후.. 이제 베이스캠프인 라반라타 산장으로 향하는데.. 고산지에서 보기 힘든 제법 큰 키의 나무가 꽃을 활짝 피워놓고 있다.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 '스키마 왈라치'라는 차나무과 상록수인데.. 활짝 핀 꽃이 이쁘지만 피기 직전의 꽃봉오리도 색상이 참으로 곱다.

스키마 왈라치(Schima wallichii) - 차나무과 상록수

좀 더 내려가니 눈에 익은 야생화를 발견한다. 양지꽃이다. 우리나라 야생화와 온전히 똑같은 식생을 처음 만나다 보니 넘 반갑다.

양지꽃

오전 7시40분, 이제 전방에 라반라타 산장이 위치한 파나라반 베이스캠프가 시야에 들어온다. 대략 1km 가량의 거리이지만.. 나중에 따져보니 저곳까지 이르는데 40분 소요되었다.

라반라타 산장 가는 길

먼저 내려간 일행들이 어느덧 나무 데크 전망대에 올라 조망을 하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나무데크 전망대

오전 7시52분, 그 전망대에 이른다. 거대한 암반 위 왼쪽 끝이 남봉(South Peak)의 남쪽 자락인 듯 싶다.

암봉 아래 형성된 숲에는 하얗게 빛나는 바위가 시선을 끈다. 얼핏 인공적인 바위인 줄 알았는데.. 아니다. 나중에 알아보니 몇년전 일어난 지진 중에 굴러떨어진 것이라 한다. 

그러고 보니 우측 압둘라만봉 하단에 하얗게 패여진 흔적이 보인다. 그곳에서 분리된 바위가 굴러떨어진 것이다. 그 사이로 등산로가 가로질러 가고 있으니 당시의 상황을 상상해보면 아찔해진다.

 

키나발루산은 2015년 규모 5.9, 2018년 규모 5.2의 지진을 겪었다고 한다. 앞서 말한 당나귀귀봉 파손은 2015년에 발생했다 하고.. 저 압둘라만봉 파손은 2018년 발생했다고 한다. 다만, 전자는 신문에서 확인했지만, 후자는 확실치 않다. 

압둘라만봉과 낙석

오전 8시21분, 라반 라타 산장에 복귀한다. 새벽 2시30분에 산행을 시작하여 정상까지 3시간 30분만에 올라갔고.. 오전 6시20분경 하산을 시작하여 산장까지 2시간만에 내려온 셈이다. 편도 거리는 2.7km, 고도차는 800m다.    

파나라반 베이스캠프

산장은 10시30분 이전에 퇴실하여야 한다. 세면만 대충하고 하산을 위해 배낭을 꾸려놓는다. 그리고 아침식사를 하고 나니 오전 9시10분쯤 된다. 퇴실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기에 침대에 올라가 30분 가량 휴식겸 취침을 하며 체력을 복원한다.

 

오전 10시경, 하산을 시작한다. 산장에서 하산 직전, 위를 올려보니 각종 기암괴석이 나래비를 서 있다. 나중에 자료를 보며 꿰어 맞춰보니.. 키나발루산의 동부고원(Eastern Plataeu)에 속하는 '당나귀 귀봉', '압둘라만봉', '사자 머리봉', '에드워드왕봉'이다.

키나발루산 동부고원(Eastern Plataeu)의 봉우리

압둘라만봉 왼편의 U자형 공간은 쿨드론 갭(Commando Cauldron Gap)이라 한다. 저곳이 Low's Peak과 에드워드왕봉 암벽 사이의 거대한 협곡(Low's Gully)에 진입하기 위한 통로라고 한다.

 

다들 가을 복장으로 갈아입고 하산한다. 지금은 맑은 날씨지만 산 아랫쪽으로 구름이 걸쳐 있기 때문에 도중에 비를 만날 수도 있음을 인솔자가 일러준다.

하산

산장 아래 광장에서 다시 올려보는 암봉.. 파란 하늘과 어울려 멋지다.

파나라반 베이스캠프(Panalaban Base Camp)

광장을 지나면서 산 아래쪽을 내려보니.. 몸집을 잔뜩 부풀린 구름이 우리가 내려갈 산자락에 뭉게뭉게 걸려있다.

구름

아니나 다를까 인솔자가 언질했었던 것처럼 얼마 내려가지 않아 비를 만난다. 그 비는 한 동안 오락가락 하는 듯 하더니.. 언제부턴가 세차게 내려친다. 비 철철 맞으며 두 시간 가량 하산하여 고도가 어느 정도 낮아졌을 무렵.. 나무 위에 핀 노란 꽃이 밝게 웃고 있다. 이쁘다. 자료를 찾아보니 '로도덴드론 로위'라는 학명을 가진 만병초과 식물이다.

로도덴드론 로위(Rhododendron lowii) - 만병초 가족

오후 1시09분, 복귀환영(Welcome Back) 간판이 걸려있는 팀폰 쉼터겸 인증센터에 도착한다. 우리를 픽업할 밴은 이곳에서 100m 더 나가면 나오는 게이트 너머에서 대기중이라 한다.

팀폰 쉼터

오후 1시24분, 모든 일행이 무사히 복귀인증을 마친 후.. 단체사진을 찍으며 함께 외친다. "해냈다!"

팀폰 쉼터 - 일행 (필자 - 왼쪽 두 번째)

오후 1시25분, 팀폰 게이트를 통과한다. 

팀폰 게이트

그곳에 대기 중인 밴에 탑승하여 국립공원 관리사무소 식당으로 이동하여 점심식사. 이후 코타 키나발루에 예약해놓은 호텔로 이동하여 여장을 푼다. 그곳에서 가이드가 키나발루산 등정 인증서를 나눠준다.

키나발루산 등정 인증서

1박 2일 동안, 22.59km를 산행하는데 27시간 42분 소요되었다. 실제 운동 시간은 15시간 12분으로 집계되어.. 평균 이동속도는 시간당 1.4km인 것으로 타나났다.

산행 요약 및 궤적
산행 궤적
산행고도표

4,000m를 넘는 고산을 오르는 것이 만만치 않아서 앞으로 이런 산행을 다시 할 수 있겠나 생각했는데.. 산행기를 쓰며.. 행적을 더듬다 보니 다시 가고 싶은 맘이 슬며시 피어오른다.

키나발루 산의 봉우리들

언제 다시 저 산을 오를 수 있을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