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4) - 비엔나 합스부르크 왕궁 외"
미하엘 문
◎ 여행 메모 ◎
o intro..
5일간의 IAEA Mission을 완료한 뒤 이제부터 3일간의 휴가일정을 시작한다.
오늘 하루는 비엔나 시내를 관광한 뒤 저녁늦게 열차를 타고 헝가리 부타페스트로 넘어갈 것이고
내일과 모래는 처남이 운영하는 Hostel에 묵으면서 부다페스트 관광을 할 예정이다.
o 7월4일(토)
아침 7시경 일어나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한 후 객실로 돌아온다.
일단 그간 벌려놓았던 짐을 트렁크에 챙겨 넣은 뒤
가이드북 "오스트리아-부다페스트-프라하"를 꺼내놓고 오늘 둘러볼 비엔나 관광코스를 짚어본다.
합스부르그궁전, 링트램 투어, 쇤부른궁전, 벨베데레궁전, 도나우인젤 등의 순으로 우선순위를 정한다.
아침 10시경, 체크아웃을 한 뒤 트렁크와 노트북을 호텔에 맡겨놓고 밖으로 나선다.
쉬드티롤러역에서 전철을 타고 나가 헤렌가세역에서 내린다. 우선 합스부르그궁전부터 둘러보기 위해서이다.
헤렌가세역
현 위치
헤렌가세역을 빠져나오니..
관광객을 태운 마차가 길거리를 달리고 있다.
마차
마차가 달려가는 방향으로 쫓아가니 합스부르그 정문격인 미하엘 문이 나온다.
미하엘 문
마하엘 문 앞엔 미하엘 광장이 있다.
그 광장에는 각종 광대들이 특이한 분장과 복장을 한 채 관광객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돈을 줘야 연주를 시작하는 거리의 악사..
거리의 악사
인기가 많아 계속해서 그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든다.
거리의 악사
반변 온통 금빛으로 치장한 궁정복 차림의 아저씨 주변은 다소 한적하다.
저 것도 뭔가 개인기를 보여줘야 경쟁력이 있을 듯 싶다. ^^
궁정 복장의 아저씨
미하엘문은 18세기에 세워졌다고 한다.
미하엘문 안에 자리잡고 있는 합스부르그(Hofburg) 구왕궁은 1220년 최초 성채로 건립되었고
그후 증개축이 되풀이되다가 16세기에 페르디난트 1세에 의해 현재의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이 되었다.
이후 18세기 전반 카를 5세 시대까지 역대 황제의 거성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미하엘 문 전경
정문 양 옆에는 4개의 헤라클레스상이 있고..
4개의 헤라클라상
정면 좌우측에는 바다의 힘과 육지의 힘을 상징하는 커다란 분수대 조각이 있다.
바다와 육지의 힘을 상징하는 분수대 조각
정문 안으로 들어서면..
미하엘 문
천장이 돔 형태로 설계된 홀이 나온다.
돔 홀
홀 우측에 실버콜렉션, 시시 박물관, 황제아파트 입구가 있다.
카이저 아파트, 시시 박물관, 실버콜렉션 명판
그 안에 들어가니 검은 드레스차림의 시시 실루엣이 이방인을 맞이하고 있다.
그 시시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들어가니 매표소가 나온다.
시시 실루엣
실버콜렉션, 시시박물관, 황제아파트를 차례로 관람할 수 있는 티켓(9.90유로)을 끊고서 입장한다.
우선 실버콜렉션 관으로 들어가
왕궁 생활의 단편을 그려놓은 그림을 살펴본 뒤..
그림 - 왕궁 만찬
그림 - 죠세프황제와 엘리자베스황비
그림 - 황제 가족
그네들이 사용했다는 금은 식기들을 관람한다.
실버콜렉션 전시관
은접시 & 은그릇
금식기 전시관
금배
금도금 대형쟁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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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색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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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색 아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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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매년 12명의 노인들을 초대하여 발을 씻겨주는 행사를 했다는데
그 때 사용했던 물통도 전시해 놓았다.
물통
족욕 장면
도자기류도 전시해 놓았는데..
문양이 눈에 익은 듯 싶어 안내문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일본서 18세기에 만든 것들이다.
일제 도자기
이어서 만난 중국산 도자기들..
이들도 대략 18세기에 제작된 것들이다.
중국산 도자기
혹시나 우리나라 것도 있으려나 하고 둘러보았지만 역시나 없다.
일본, 중국이 서양과 활발히 문물을 교환할 당시 우리나라는 뭐했던고?
'선비의 나라'입네 하며 문 꼭꼭 걸어잠그고 살고 있었으니..
..
2층에 있는 시시박물관으로 올라간다.
시시박물관 안내표지판
2층
'시시'는 오스트리아 국민들이 가장 사랑한다는 엘리자베스 황비의 애칭이다.
그곳에 그녀의 화려하고도 파란만장한 생애(1837~1898)와 그녀의 소장품들이 연대별로 전시되어 있다.
시시의 일생
시시의 일생 2
시시의 일생 3
시시의 일생 4
바이에른 공작의 딸로 태어난 시시는
1853년 여름 프란츠 요제프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는데 이때 한눈에 반한 요제프가 청혼을 해 결혼하게 된다.
소녀시대의 방에는 그녀가 열살 때의 목조흉상과 장갑, 브로치, 신발이 전시되어 있다.
시시의 목조흉상과 그녀가 쓰던 장갑, 브로치, 신발
실물 크기의 석고상도 길목을 지키고 있고..
시시 석고상
그녀가 소장했던 면류관도 있고
그녀가 사용했다는 거울도 보인다. 그런데 거울 밑에 왠 대야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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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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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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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정 생활을 싫어 했던 시시는 자주 여행을 떠났다 한다.
또한, 승마에 열중하기도 했으며, 하이네의 시를 사랑해 종종 시를 짓는 데 몰두하기도 했다.
1889년에 외아들 루돌프가 자살한 이후 그녀는 검은 상복을 죽을 때까지 벗지 않았다 한다.
1898년9월10일, 엘리자베스 황후는 여행지였던 레만 호숫가에서 배에 올라타던 중 이탈리아의 한 무정부주의자의 손에 암살당하고 만다.
피습장면
암살 흉기였던 줄칼도 전시되어 있다.
줄칼
엘리자베스가 세상을 떠자나 그녀의 관 앞에서 프란츠 요제프 황제는 통곡을 하였다고 한다.
그 장면을 묘사한 그림과 데드 마스크도 전시되어 있다.
(좌) 황비의 관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조셉 황제, (우) 시시의 데드마스크
황제의 아파트먼트로 들어선다.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방은 친위대실, 알현대기실, 알현실, 회의실, 집무실, 침실, 큰 살롱, 작은 살롱 등의 순으로 이어지고
엘리자베스 황비의 방은 거실 겸 침실, 화장실, 큰 살롱, 작은 살롱, 큰 대기실 등의 순으로 설계되어 있다.
이곳은 사진을 찍지 못하는 곳이라 자료사진이 없다. 그래서 잘 기억도 안 난다. 각 방들이 화려했었다는 기억 밖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황비의 방에 있던 체조기구들.. 대들보에 플라이 링이 매달려 있었던 것 같다.
..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온다.
잔디밭에 언저리에 있는 벤치에 앉아 동쪽을 바라보면 왼편에 방금 나온 구왕궁이 보이고..
구왕궁
그 오른편에 또 하나의 왕궁이 보인다.
그곳은 1881년부터 1916년까지 35년에 걸쳐 건설된 합스부르그 최후의 왕궁으로서 신왕궁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신왕궁
신왕궁 앞에는 헬덴 광장(영웅 광장)이 있는데
이곳은 오스트리아군이 나폴레옹군과 터어키군을 무찌른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광장이라고 한다.
광장 안에는 두 개의 기마상이 서 있는데 첫번째 것은 카를대공 기마상이고, 두번째 것은 오이겐공 기마상이다.
육군 원수로서 군대개혁가이며 군사이론가였던 카를대공(1771~1847)은..
나폴레옹 시대의 프랑스 장군들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연합군측의 몇 안 되는 사령관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19세기의 첫 10년 동안 오스트리아군을 현대화하여 1813~15년에 나폴레옹을 패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고 한다. (출처: 브리태니커)
카를대공 기마상
육군 원수이며 정치인이었던 오이겐공(1663-1736)은..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의 군대에서 복무할 당시 그의 세대에서 가장 위대한 군인의 한 사람으로 명성을 떨쳤다고 한다.
중유럽과 발칸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투르크와 싸웠고(1683-88, 1697, 1715-18), 스페인 왕위계승전쟁(1701-14)에서 프랑스와 싸워 눈부신 전공을 세웠다.
그는 또 프리드리히 대제의 스승이었고, 나폴레옹이 역사상 최고의 7대 전략가들 중에서 후세에도 연구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인물로 지목한 사람이라 한다.
오이겐공 기마상
오이겐공 앞에서 기념촬영..
지나는 행인에게 부탁을 했는데 나중에 보니 구도가 애매모호하게 잡혔다. 주제가 뭐야? -.-;;
기념촬영
다시 바라보는 신왕궁..
오이겐공과 신왕궁
궁전 상단에는 머리가 두 개인 독수리가 날개를 펼치고 있다.
합스부르그가의 권위를 상징한다고 한다.
신왕궁 상단 문양
현재 국립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는 신왕궁을 떠나 왕실보물관을 찾아간다.
왕실보물관으로 가려면 구왕궁 정원을 지나가야 한다. 지나는 길에 바라본 구왕궁 정원..
구왕궁 정원
그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것이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1세(1708~1765) 조각상이다.
구왕궁 정원 - 프란츠 1세 조각상
오른편 구왕궁의 지붕에는 천사들이 나발을 불고 있다.
구왕궁의 천사
왕궁 보물관은 구왕궁 정원 맞은편 스위스 문을 지나야 나온다.
처음엔 이 안에 들어왔었어도 보물관을 찾지 못하고 되돌아 나가 헤매고 다녔는데
결국 다시 이곳에 와서 찬찬히 둘어보다가 왕실예배당 아래에 붙어 있는 왕실 보물관 안내벽보를 발견하고서야 그 입구를 찾아낸다.
왕궁 보물관 입구
왕실보물관 입장료는 10유로(약 18,000원)이다.
티켓을 끊고 배낭을 벗어 보관실에 맡긴 뒤 입장한다.
이곳엔 왕궁 안에 보관되어 왔던 합스부르크가의 보물이 전시되고 있다.
16세기 이후 수집된 것으로서 페르티난트 1세 이후 합스부르크가의 수집품이 주로 전시되어 있지만
신성로마 제국의 황제를 중간에 합스부르크가에서 세습하게 되었기 때문에 오토 대제의 왕관과 11세기의 십자가 등
신성로마 제국의 역대 황제가 이어받은 매우 귀중한 보물도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우선 눈을 사로잡는 것은 루돌프 2세의 왕관..
1602년 프라하에서 만들어진 것으로서 제국의 상징으로 불리는 왕관이다. 신성로마 제국이 붕괴된 뒤에는 이 왕관이 대관식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왕관 옆에 놓여 있는 것은 보주, 왕관 앞에 눕혀 놓은 홀장이라고 한다.
루돌프 2세의 왕관, 보주, 홀장
각종 보석이 빛나고 있는 신성로마 제국 황제의 왕관도 보인다.
아래 오른쪽에 있는 왕관은 역대 신성로마 제국에 전해져 온 왕관으로서
오토 대제가 즉위한 10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매우 귀중한 것이라 한다.
신성로마 제국 황제의 왕관
금으로 만든 장미문양의 주전자와 보석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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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den R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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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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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7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금주전자와 금쟁반..
금주전자 & 금쟁반
루비?
보석
무언지 모르겠지만 아주 오래되고 귀중한 것 같은 보물..
Nachbildung Der Mariensaule
금은 보석으로 장식된 목걸이들..
목걸이 1
목걸이 2
목걸이 3
목걸이 4
왕궁 보물관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온다.
신왕궁 정문격인 부르크문을 통과하여 부르크링 쪽으로 걸어간다.
부르크 문
부르크링 정류장에서 링투어 트램이 정차하는 것을 확인한 뒤
햄버거와 콜라를 사들고 인근 신왕궁 정원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신왕궁 정원
오후 3시경, 호수가를 바라보며 늦은 점심식사를 한다.
점심식사
오후 3시30분경, 점심식사를 마치고 부르크링으로 나가 링트램을 기다린다.
트램 정류장
현위치
10여분 기다렸을까?
트램은 오지 않고 도로 한복판으로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복장도 다소 특이해 보이고..
도로 복판을 걷는 사람들
이상하다 싶어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이제 트램이 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토요일 오후엔 '차없는 거리'가 시작되는가 보다. 끙~
링트램을 타고 비엔나 중심가를 한 바퀴 둘러보려 했더니만.. 가는 날이 장날이다.
차없는 거리
할 수 없이 다음 목적지를 궁리하다가
일단 슈테판 성당이나 한번 더 보고싶단 생각에 왕궁정원 울타리를 따라 성당 방향으로 걸어간다.
왕궁정원 울타리 끝엔 커다마한 동상이 있고 그 주변에 시민들이 둘러앉아 있다.
누구의 동상일꼬 하며 이름을 보니 독일의 대문호 괴테다. 괴테와 오스트리아는 무슨 인연이 있었을꼬?
괴테 동상
어린이 오페라하우스를 지나 슈테판광장 쪽으로 꺽어든다.
그 부근 4거리에서 LG Mobile 간판을 발견한다. 꽤 번화한 길거리에 자리잡고 있다. 방가방가.. ^^
LG Mobile
스테판 광장으로 가까이 갈 수록 거리는 시민과 관광객으로 넘처난다.
붐비는 거리
우선 슈테판 성당 앞으로 다가선다.
슈테판 성당은 그리스도교 역사상 최초이 순교자로 기록된 성인 슈테판에서 딴 것이라 한다.
세계 3대 성당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곳으로서, 오스트리아 최대의 고딕양식 건물로서 '빈의 혼(魂)'이라고 부를 정도로 빈의 상징으로 손꼽힌다.
12세기 중엽 로마네스크 양식의 작은 교회가 건설된 것이 시초이나, 14세기에 합스부르크가의 루돌프 4세에 의해 고딕 양식의 대교회로 개축되었다고 한다.
총 공사기간 65년이나 걸린 대공사였다고 한다.
스테판 성당
성당 남쪽에 높게 솟아 오른 첨탑(남탑)은 높이 137m에 달하고
화려한 모자이크 지붕은 25만개의 청색 및 금색 벽돌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슈테판 성당
카페 거리인 그라벤거리로 걸어가본다.
길가에 쳐놓은 카페 천막에도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라벤 - 카페거리
그라벤 거리 중앙에는 삼위일체상이 있다.
이것은 약 1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페스트가 소멸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레오폴트 1세가 1693년 세운 것이라 한다.
삼위일체상
이후 광장으로 가서 여기저기 펼쳐지고 있는 퍼포먼스를 감상한다.
쉴새 없이 재재거리며 까부는 익살꾼..
익살꾼
돈을 주면 정중히 인사하는 납빛 부부..
납빛 부부
3인조 비보이팀이 다소 어설프다 싶었는데..
비보이
곧이어 수준 높은 7인조 비보이팀도 만난다.
그네들의 역동적인 브레이크 댄스를 바라보며 한동안 넋을 놓는다. 와~
브레이크 댄스
그네들의 공연이 끝나자
엊그제 김박이 사준 달콤한 아이스크림 맛이 생각나기에 그 가게를 찾아간다.
1.8유로 짜리 하나를 사들고 쩝쩝쩝 훑어먹으며 슈테판 플라츠로 다시 걸어간다.
아이스크림 가게
도중에 만난 현악사중주단의 연주를 잠시 감상하다가..
현악 4중주
슈테판플라츠 역으로 발걸음을 옮기다가
아까 보았던 7인조 비보이팀이 퍼포먼스를 다시 시작하고 있기에 카메라로 동영상을 찍으면서 다시 감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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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보이 공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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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보이 공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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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보이 공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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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보이 공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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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슈테판 플라츠에서 느긋하게 즐기고 있다보니 어느덧 오후 5시가 가까워지고 있다.
부다페스트행 열차가 7시50분발이니, 이제 쉰브룬 궁전이나 벨베데르 궁전을 찾아가기에 너무 늦은 것 같다.
무리하게 급히 돌아다니느니 도나우 강변으로 가서 차분히 앉아 있다가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단 생각을 하며 지하철을 탄다.
오후 5시30분경 도나우인젤역에서 하차한다.
그곳에 내리면 무언가 볼 거리가 많을 것이라 했는데 보이는 것은 잔잔히 흐르는 노이 도나우강 뿐이다.
강변으로 내려가봐야 마땅한 그늘이 없을 듯 싶기에 다시 지하철을 탄다.
노이 도나우강
한 정거장 떨어진 카이저뮐렌 역에서 하차하여 그 동안 매일 산책을 다녔던 알테도나우 뱅크로 간다.
뱅크 주변에는 몇몇 팀들이 한가로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혹 수영하는 사람이라도 있다면 나도 뛰어들어볼까 하고선 수영복까지 챙겨왔는데 모두들 강변에 앉아있다.
혼자 옷 갈아입고 강물에 뛰어들 용기는 없고 하여 그냥 그곳에 앉아 부다페스트 안내책자를 보면서 내일부터의 일정을 설계해본다.
알테 도나우 뱅크
오후 7시경, 호텔로 돌아가 맡겨놓았던 트렁크와 노트북을 찾아나온다.
콩그레스 호텔
오후 7시20분, 비엔나 서부역(Westbahnhof)에 도착하여
오후 7시50분발 부다페스트행 열차티켓을 산 뒤 햄버거를 사들고 열차에 탑승한다.
비엔나에서 부다페스트로 가는 티켓은 35유로(6만3천원)이고 소요시간은 3시간이다.
열차는 선로에 문제가 있다며 40분 가량 지연된 밤 8시30분경 출발한다.
티켓에 객차번호와 좌석번호가 지정되지 않았기에 적당한 창가 좌석을 골라 앉는다.
..
밤 11시15분경..
GPS를 통해 이제 부다페스트 시내를 관통하는 도나우강을 넘겠다 싶을 즈음
옆 좌석에 있던 헝가리 청년이 창밖을 보라고 한다. 밖을 내다보니 깜깜한 어둠 한켠의 불빛이 휘황찬란하다.
나중에 따져보니 도나우 강변의 환상적인 야경의 극히 일부분이였을 뿐이었다.
부다페스트
밤 11시30분, 부다페스트 동부역(켈레티역)에 도착한다.
GPS 궤적 - 빈으로부터 부다페스트까지
역사에는 부다페스트에서 자그마한 Hostel을 운영하고 있는 둘째 처남이 마중나와 있다.
처남이 운영하고 있는 페퍼민트 호스텔은 이곳으로부터 전철로 한 정거장, 버스로 두 정거장 떨어져 있다 한다.
그와 함께 버스를 타고 페퍼민트 호스텔로 이동한다.
밤 11시50분경, 도하니 거리에 있는 그의 호스텔에 도착한다.
페퍼민트 호스텔 거실
베란다 밖에는 부다페스트의 밤이 깊어가고 있다.
도하니 거리(Dohany u)
☆ 쫑
내일부터 이틀 동안 만날 부다페스트는 어떤 모습으로 내게 다가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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