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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일반산

산행기 - 하동 성제봉 (2009.4.18)

by 청려장 2009. 4. 21.

"산행기 - 하동 성제봉(1,115m)"

악양 무딤들

o 일시: 2009.4.18(土) 10:44 ~ 17:23 (총 6시간 39분) o 날씨: 맑음 10℃ ~ 24℃ (경남 하동) o 코스: 노전마을→청학사→깃대봉성제봉→1054봉→신선대→신선봉→고소성 북문터→최참판댁→하평리 o 거리: 18.5km o 참석: 대전한마음토요산악회 33명 ☆ Time Table :
시 각 구 간 거 리 시 간 속 도
10:44~13:18 노전마을→성제봉 7.0km 2:34' 22'00"/km
10:44  노전마을 입구 (형제봉 6.7km, 고도 109m)
11:11  청학사(330m) [단체사진 대기 9분]
11:59  바위아래(567m) [휴식 7분]
12:30  전망대(825m) [휴식 7분]
13:00  능선 갈림길 (청학사 4.3km) [대기 2분]
13:06  깃대봉(1,108m) [촬영 6분]
13:18  성제봉(1,115m) [촬영 8분]

13:26~14:00 중식 (성제봉) - 0:34' -
14:00~15:43 성제봉→신선봉 6.0km 1:43' 17'10"/km
14:00  성제봉
14:11  1054봉(헬기장) [촬영 3분]
14:24  강선암 갈림길(철죽제단) [휴식 11분]
14:36  철제다리
14:41  구름다리
14:43  신선대
15:01  소나무그늘 [휴식 10분]
15:30  615봉
15:43  신선봉(586m) [휴식 10분]

15:53~17:23 신선봉→최참판댁→하평리 5.5km 1:30'/1:12' 13'05"/km [관람시간 제외]
15:53  신선봉
16:03  통천문
16:04  전망대 [조망 6분]
16:19  갈림길
16:23  고소성 북문터 [촬영 3분]
16:28  갈림길
16:53  최참판댁 [관람 18분]
17:20  주차장(상평마을 입석)
17:23  하평리 1003번지방도

종 합 18.5km 6'39' 21'34"/km (2.78km/hr)
※ 지체시간: 총 2시간14분 (중식: 34분, 조망&휴식&관람: 1시간40분) ☆ 산행코스

산행개념도

◎ 등반 메모 ◎
o Intro..
성제봉(聖帝峰, 1,115m)은
풍요로운 고장 악양의 진산으로, 언제나 덕을 내리는
어진 임금 같은 산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그러나 어원을 따지자면
정상에 두 개의 봉우리가 나란히 솟아 있어
형제봉이라 불렸는데
이 지역에서는 형을 성으로 부르다보니
성제봉이 되었다는 설이 더욱 유력하다.
성제봉은
지리산 주능선상의 영신봉에서 뿌리를 내린 산이다.
지리산 세석평전 서편 영신봉(1,652m)에서
정남으로 갈라진 정맥이 삼신봉(1,354m)을 일으키고,
삼신봉으로부터 계속 남하한 지맥이
성제봉을 솟구친 후 광양 백운산을 바라보면서
여맥을 섬진강에 가라앉힌다.
고소성으로부터 신선대, 1,054봉, 성제봉,
깃대봉으로 이어지는 성제봉 능선은
노송지대와 온갖 기암과 반석, 널찍한 억새밭,
조릿대 숲길, 넓은 철쭉 군락지 등으로 이어져
무척 아름답다.
또한 평사리 상촌마을은 대하소설 토지의 주무대인
최참판댁을 중심으로 민속마을화 되어 있어
등산시 빠질 수 없는 명소로 부각되고 있다.
- 참조: 김형수 저 "한국 555산행기"


지리산 남부능선 (출처: wonho님 산행기)

o 이동.. 오전 07시00분, 밋쓸버스가 평송 앞에서 출발한다. 오전 08시00분, 대진고속국도 금산인삼 휴게소에서 20분간 정차후 남진한다. 오전 08시51분, 함양 분기점에서 88올림픽고속국도에 진입하여 서진한다. 오전 09시37분, 남원 IC를 빠져나와 19번국도를 타고 남진한다. 오전 10시04분, 구례읍을 지나고.. 오전 10시19분, 화개마을옆을 지날 즈음 섬진강을 가로지르는 남도대교가 차창 밖으로 보인다.

남도대교

오전 10시28분, 1003번 지방도를 만나 좌회전하여 하동군 악양면에 접어든다. 도로 우측에는 박경리선생께서 대하소설 토지를 구상할 때 주요 무대로 삼았던 악양면 무딤들이 보이고 그 한 가운데에는 토지의 주인공인 서희와 길상(또는 용이와 월선)의 애틋한 사랑을 연상시킨다는 부부송이 서 있다.

악양 무딤들과 부부송

오전 10시36분, 악양면 중심가를 지난 뒤 1047번지방도를 타고 노전마을로 향한다. 오전 10시42분, 노전마을 입구에 도착하니 갖가지 표지석과 표지판이 산객들을 맞는다. 그 중 "반갑습니다. 조용히"라는 문귀가 마음에 와닫기에 나직히 답해본다. "감사합니다. 그럴께요.."

안내표지판

노전마을 맞은 편에는 칠성봉이 열댓 채의 농가를 넉넉하게 품으며 우뚝 솟아있다.

칠성봉

o 노전마을 입구 → 청학사 오전 10시44분, 청학사에서 단체사진을 찍기로 하고 각자 준비되는 대로 출발한다. 선두는 산수대장, 중간은 산삼대장, 후미는 산이슬대장이 맡았다. 세 분 모두 산씨 가문이네? 날씨가 무척 덥기에 속에 입었던 반팔티를 벗고 긴팔티 하나만 입고 출발한다.

노전마을 입구

노전 마을에 접어드니 전방에 성제봉 정상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려가는 주능선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신선대에 설치된 구름다리도 얼핏 시야에 들어온다.

성제봉 전경

세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15분 가량 전진하니 갈림길이 나오고, 그 옆에 세워진 표지석이 청학사로 가려면 우측으로 가야 함을 알려준다. (오전 10시59분)

청학사 입구

오전 11시09분, 청학사 직전 삼거리에 당도한다.

청학사 직전 삼거리

그곳에 세워진 대장군의 모습들이 해학적이다. 쭉 내민 혓바닥, 돼지코, 뻐드렁니.. 좌우에 세워진 장승 몸통에는 절아 원력(折我 願力)이라 쓰여있다. 나를 꺽어서 소원을 성취한다? 욕망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이리라..

대장군

오전 11시11분, 청학사 경내에 들어선다. 최근에 지어진 듯한 오층석탑 뒤에는 전면 5칸, 측면 3칸 구조의 대웅전이 있고

청학사 대웅전

마당 왼편 언덕에는 사방이 한 칸으로 된 아담한 약사전이 자리잡고 있다.

약사전

대웅전 안에는 삼존불이 계시는데.. 가운데는 석가모니불인 듯 싶으나, 좌우에 금관을 쓰고 계시는 두 협시보살은 뉘신지 잘 모르겠다. 석가모니불은 다소 근엄한 모습이고, 두 협시보살은 살짝 미소를 머금고 있다.

삼존불

대웅전 앞에는 포대화상이 풍만한 배를 내밀고선 넉넉한 웃음을 짓고 계신다.

포대화상

처음엔 달마대사인 줄 착각하였는데, 자등명님의 지적을 받고 포대화상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차제에 달마대사와 포대화상에 대한 자료를 찾아 정리해 본다. [주요 참조자료: 다음 블로그 "염대장" (http://blog.daum.net/yum815)]
달마대사[達磨大師; ? ~ 528]는..

남천축(남인도) 향지국(香至國)의 셋째 왕자로 태어났다. 본명은 보리다라이다. 보리다라는 동인도 승려 반야다라(般若多羅;? - 457))에게서 법을 이어받은 뒤 보리달마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달마는 40년동안 스승인 반야다라를 섬겼으며 스승의 유언에 따라 중국으로 건너가 전법을 가르쳤다.

달마 대사의 전법의 목적은 문자를 세우지 않고(不立文字), 언어 밖의 마음과 마음을 전하여(敎外別傳), 바로 사람의 마음을 직관해서(直指人心), 부처를 이루는(見性成佛)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 28대인 보리 달마 존자는 선종 제1조이며 2조가 헤가 존자, 3조가 승찬 존자, 4조가 도신 존자, 5조가 홍인 존자. 6조가 혜능 존자로서 우리나라 조계종은 선종의 혜능 존자의 법통을 이어오고 있다. 달마 대사는 중국 선종의 시조로 숭앙받으면서 그 선의 생명이 오늘날까지 끊이지 않고 흘러 넘치고 있다.

인간인 달마대사는 최근 국내에서 나돌고 있는 달마도의 모습과 다르게 절대 배불뚝이가 아니고 절대 지팡이(주장자)를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고 한다.
포대화상[布袋和尙; ? ~ 916]은..

중국 명주 봉화현(明州奉化縣:浙江省寧波)에서 출생한 후량의 선승(禪僧)으로 복덕원만(福德圓滿)한 상을 갖추고 있어 회화·조각 또는 시문의 좋은 제재되었고 미륵보살의 화신이라 하여 존경을 받았으며 호는 정응대사(定應大師)이고 별칭은 이름이 계차(契此)이며 별명은 포대화상(布袋和尙)이라한다.

당시의 사람들은 장정자(長汀子) 또는 포대사(布袋師)라 불렀다. 체구가 비대하고 배가 불룩하게 나왔으며, 항상 커다란 자루를 둘러메고 지팡이를 짚고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시주를 구하거나 시대나 인간사의 길흉 또는 일기를 점쳤다고 한다. 게(偈)를 잘하였으며, 봉화현 악림사(岳林寺)에서 죽었다 한다.
.. 모든 회원들이 청학사에 도착한 후 단체사진을 찍는다.

단체사진

o 청학사 → 성제봉 오전 11시20분, 성제봉을 향하여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 개시

곧이어 대나무 숲 옆길을 지난다.

대나무 숲길

무더운 날씨인데다가 정상까지 가파른 오르막이 계속해서 이어짐을 산행기를 통해 알고 있기에 무리하지 않기 위해 땡볕을 피해 대나무 숲 그늘 속으로 느긋하게 걸어올라간다.

대나무 숲

조금 더 오르다가 등로 옆에서 독사 한마리를 발견한다. 인기척을 느끼고선 스르르 사라진다. 깊은 동면을 하다가 화사한 봄 날을 맞아 땅 위로 나왔을 텐데 아직 충분히 배를 채우지 못하여 기력이 없는 듯 보인다.

독사

대나무 숲 그늘을 벗어나 관목 숲 지대로 들어선다. 땡볕에 노출되니 어느덧 몸에서 땀이 송송 맺히기 시작한다.

관목 지대

그 즈음 발견한 구슬붕이.. 올해 처음 상면하는 언제 보아도 귀여운 꽃이다.

구슬붕이

오전 11시47분, 너덜겅 지대를 지나고..

너덜겅

10여분 더 오른 뒤 선두일행과 함께 잠시 휴식을 취한다. 그곳에서 GPS 궤적을 찍어보니 해발고도가 600m도 채 되지 않는다. 성제봉 정상이 1,115m이니 아직도 600m 가량의 고도를 넘어서야 한다. 끙~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이 넘었는데 아직도 이 정도라면 앞으로의 산행길은 얼마나 더 급경사일지가 가늠되다보니 끔찍하다.

휴식

오후 12시06분, 휴식을 마치고 다시 오르는 길..

등로

어느 산죽 길을 지나 던 중..

산죽 길

등로에 여러가닥의 선이 깔려 있어 다소 지저분하다 싶었는데, 그 선의 끝이 나무 줄기에 꽂혀 있다. 그제야 저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기 위한 배관인 것 같다. 그런데 고로쇠 채취는 초봄 수액이 오르기 시작할 때에만 한시적으로 허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직까지 저렇게 배관이 꽂혀 있으면 저 나무는 어떻게 가지를 치고 새순을 낼 수 있을꼬? ㅉㅉ

고로쇠 채취관

그나저나 남 걱정할 처지가 아니다. 다시 나타난 너덜겅 지대에 들어서니.. 하늘에서 내리쬐는 땡볕과 너덜바위가 뿜어내는 복사열이 내몸의 수액을 빨대 없이도 뽑아낸다. -.-;;

너덜겅

오후 12시27분, 석간수가 나오는 샘터에서 상아가 쫄쫄쫄 흐르는 물을 받아서 일행들에게 한잔씩 건넨다. 고마운 마음을 짖궂은 농담으로 돌려준다. "저기서 술이 나오면 좋겠지? ㅎㅎ"

석간수 샘터

샘터를 지나 조금 더 오르니 전망이 좋은 곳이 나온다. (오후 12시30분) 전방에는 칠성봉으로부터 구재봉으로 뻗어가는 능선이 보이고 그 아래에는 악양 땅의 수 많은 전답들이 있다. 밋쓸버스가 우리 일행을 내려놓은 노전마을 입구와 단체사진을 위해 잠시 집합하였던 한산사는 바로 앞에 내려다 보인다. 산행을 시작한지 어느덧 2시간 가까이 되는 데도 저리 가까이 보이는 것은 우리가 얼마만치 급경사 오르막을 치고 오른지를 알려주는 듯 싶다. GPS 궤적을 다시 확인해보니 이제 해발 820m를 넘고 있다. 아직도 300m 가량의 고도차를 넘어서야 한다.

노전 마을, 한산사

오후 12시37분, 다시 산행을 재개한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가파른 오르막을 20분 가량 힘겹게 오르니 등로가 점차 완만한 비탈길로 변한다.

비탈길

비탈길을 따라 조금 더 전진하니 진달래꽃 사이로 파란 하늘이 열린다.

능선 갈림길

오후 1시 정각, 능선 갈림길에 올라선다. 그곳 왼편엔 성제봉 정상(1,115m)이 지척에 있고..

성제봉(1,115m) 방향

오른 편엔 성제봉의 동생격인 깃대봉(1,108m)이 뾰족한 봉우리를 세우고 있다.

깃대봉 정상(1,108m)

선두 일행이 깃대봉을 들르지 않고 막바로 성제봉으로 향하려 하기에 나 홀로 깃대봉으로 향한다.(오후 1시02분) '언제 여길 또 오게쓰..' 하며.. 진달래 숲 속을 지나니..

깃대봉을 향하여

이내 깃대봉 정상이 코 앞에 다가온다. (오후 1시06분)

깃대봉

산수대장과 함께 국기봉 정상에서 기념촬영 한다.

깃대봉 정상 - 산수대장, 청려장

막힘 없이 터져 있는 정상에서 사방을 조망한다. 남동 방향으로는 성제봉과 칠성봉으로 둘러쌓여 커다마한 분지형태를 이루고 있는 악양 땅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고..

악양

그 오른편 무딤들 너머로는 섬진강이 굽이쳐 흐르고 있다.

섬진강

남쪽으로는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성제봉과 백운산이 마주하고 있다.

성제봉, 백운산, 섬진강

북동쪽으로는 지리산의 최고봉인 천왕봉이 머리를 내밀고 있고..

천왕봉

북서방향에는 노고단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려가는 왕시리봉, 그리고 삼도봉 뒷편에 위치한 반야봉도 보인다.

노고단

오후 1시12분, 조망을 마치고 성제봉을 향하여 출발한다.

성제봉

오후 1시18분, 성제봉 정상(1,115m)에 도착한다. 이미 많은 일행들이 도착해 있기에 모두 모여 기념촬영..

성제봉 정상

성제봉 정상에서는 노고단으로부터 반야봉, 벽소령, 영신봉을 지나 천왕봉까지의 지리산 주능선이 빠짐없이 시야에 들어온다.

지리산 주능선

낙남정맥이 영신봉에서 남쪽으로 가지쳐서 삼신봉에 이르고 삼신봉에서 남쪽으로 가지치기한 지맥이 낙남정맥을 버리고 이곳 성제봉까지 이른다고 한다. 그러한 산줄기의 흐름이 부분적으로나마 가시적으로 그려지니 느낌이 남다르다.

지리산 주능선 및 남부능선

o 중식 오후 1시26분, 성제봉 정상 옆 바위 위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햇볕이 내려쬐고 있지만 바람이 솔솔 불어오니 시원하고 경치 또한 좋으니 식사장소로 적지인 것 같다. 다른 일행들은 정상 아래 무덤 옆 공터에 자리를 잡고 식사를 한다.

정상 아래 - 중식

선두일행이 식사를 마치고 정상 아래로 내려오니 아직도 많은 회원들이 식사 중이다.

정상 아래 - 중식 중

그네들 속을 들여다보니 두 낭자가 비닐장갑을 끼고선 산채비빔밥을 제조하고 있다. 위에서 배부르게 먹고 내려왔지만 침이 꼴깍 꼴깍 넘어간다.

비빔밥 제조 - 누구 누구 손이지?

그렇게 제조된 산채비빔밥이 배고픈 자들에게 배급되고 있다. 산XX대장과 아XX총무는 걸신 들린 듯 먹고 있다. ^^

비빔밥 배급

그 옆에 있는 무덤은 묘비석을 특이하게도 암벽을 깍아 그 안에 박아 놓았다. 묘비석에는 "聖帝峰 處士 咸安李公.."이라 쓰여져 있다. 처사라면 벼슬을 않고 초야에 묻혀서 조용히 사는 선비를 일컫는데.. 이곳 성제봉에서 일평생을 사신 분이리라..

함안 이씨묘소

함안이씨 묘비

무덤 위에는 봄처녀 산자고가 곱게 자라고 있다.

산자고

o 성제봉 → 신선봉 오후 2시 정각, 1,054봉을 향하여 출발한다.

1054봉 방향

잠시 내리막 길이 시작되다가..

식후 출발

편안한 길이 이어진다.

편안한 길

행렬를 쫓다가 등로 한켠에 뫼제비꽃이 곱게 피어 있기에 정성껏 눈맞춤을 한다. 방가방가..

뫼제비꽃

오후 2시11분, 헬기장(1,054봉)을 지난다.

1054봉 헬기장

전방에는 형제봉 줄기가 섬진강을 향하여 뻗어내려가고 있다. 앞에 철계단과 구름다리가 얼핏 보이는 봉우리가 신선대(903m), 섬진강 직전 잠시 고개를 치켜든 봉우리가 신선봉(586m)이다.

신선대로 가는 능선

바로 앞에 보이는 봉우리를 왼편으로 우회해서 지나가고 나니..

신선대 가는 길

꼬꼬님과 국사봉님은 우회하지 않고 직선길을 따라 그 봉우리를 넘어온다. 지나고 보니 그 길이 더 멋진 길이었던 것 같다. 기암괴석도 보이고..

바위 능선

암튼, 능선상으로 이어지는 이후의 등로는 편안하고 아름답다.

아름다운 능선 1

아름다운 능선 2

아름다운 능선 3

오후 2시24분, 강선암 갈림길에 당도한다.

강선암 갈림길

그곳에서 10분간 휴식..

청려장

오후 2시35분, 산행을 재개하여 조금 더 전진하니 철제 다리가 나온다.

철제 다리

철제 다리를 건너고 나니 맞은편에 신선대(903m)가 철제계단과 구름다리를 앞세우고 나타난다.

신선대

잠시 내리막 길을 따라 안부로 내려선 뒤, 좀 전에 바라보던 철계단을 타고 오르니..

구름다리 직전 철계단

구름다리가 나온다. 조심스럽게 건너가는데.. 생각보다는 많이 흔들리지 않아 그다지 아찔아찔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구름다리

뒤쫓는 일행들도 별 것도 아니라는 듯이 즐거운 표정으로 구름다리를 건너온다.

지나온 구름다리

이제 지나온 1,054봉은 저 만치 멀어져 있고..

지나온 길, 1054봉

전방엔 섬진강의 굽이친 물줄기가 가까이 다가와 있다.

섬진강

오후 2시43분, 신선대(903m)를 넘어선 후 막바로 나타나는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내려간다. 선답자의 산행기에 여기서 직진하면 낭떠러지가 나온다고 되어있던 것이 기억난다.

갈림길

곧이어 암벽 사이의 길로 내려가니..

암벽 사잇길

소나무가 울창하게 자라고 있는 숲 길이 나온다. 소나무 그늘 사이로 시원한 바람도 불어오고 있어 발걸음이 더욱 더 경쾌해진다.

소나무 숲 길

오후 2시53분, 등로 왼편에 전망이 좋은 곳이 나온다.

전망대

그 위에 올라서니 악양 무딤들의 비옥한 땅이 가깝게 시야에 들어온다. 이 지역은 땅이 워낙 비옥해서 예로부터 만석꾼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주민들이 풍요롭고 여유롭게 살았기 때문에 「외지 거지가 악양에 들어와 1년은 놀고 먹어도 몇집 남는다」는 말이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악양 무딤들

조금 더 전진하다가 나무그늘 아래에서 휴식을 취한다. (오후 3시01분) 점심 때 먹지 않고 남겨두었던 청포도를 꺼내 건네니 인기 만점이다. ^^

휴식

오후 3시11분, 다시 산행을 시작하여 편안한 등로를 따라 전진한다. 오후 3시24분, ㅓ자 갈림길을 지나고, 조금 더 전진하여.. 목재계단을 타고서 나즈막한 봉우리 위에 올라서서 GPS 궤적을 확인하니 615봉을 가르킨다. (오후 3시30분)

615봉 직전

시원한 바람이 소나무 숲 사이로 불어오니, 발걸음이 가볍고 마음까지도 쾌청해진다.

선선한 하늘

오후 3시43분, 신선봉 정상(586m)에 당도하여 다시 휴식을 취한다. 이제 내려가는 길만 남아 있다.

신선봉

o 신선봉 → 최참판댁 오후 3시 53분, 신선봉에서 하산한다.

솔향 숲

오후 4시03분, 통천문에 이른다. 생각보다는 빠듯하지 않아서 배낭을 매고 지나는데도 무사히 통과한다.

통천문

통천문을 지나니 조망이 기막히게 좋은 곳이 나온다.

전망대

악양 일대가 한 눈에 시야에 들어온다. 악양(岳陽)이라는 지명은 나당연합군을 이끌고 백제를 침공한 소정방이 중국의 악양과 형세가 흡사해서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악양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소상팔경(瀟湘八景)은 중국 후난(湖南)성의 소(溯)강과 샹(湘)강이 합류하는 동정호의 정경을 읊은 시인데 그곳과 흡사하게 이곳 악양 땅이 워낙 아름다워 평사리 강변 모래밭은 금방, 모래톱 안에 있던 호수는 동정호로 명명했다 한다. 안타깝게도 평사리 외둔 마을 앞에 위치한 동정호는 일제 강점기 때 둑을 쌓은 후 바싹 말라 흔적조차 사라진 상태이다. 악양 무딤들은 섬진강에 인접한 비옥한 땅을 일컫는 것 같다. 무딤들을 앞 세우고 있는 평사리 상평마을과 그 속에 위치한 최참판댁이 발치 아래로 내려다 보인다.

악양 일대

악양 무딤들은 원래 섬진강물이 들어차는 모래땅의 풀밭이었고 무딤들판 한 가운데 소나무 두 그루 일명 "부부송"이 미끈하게 버티고 서 있는 그 곳은 작은 섬이었는데 지난 1974년 중반 국도 19호선(남해~원주선)이 연결되면서부터 그 일대가 옥답으로 바뀐 것이라 한다.

무딤들, 섬진강, 최참판댁

우측으로 시선을 돌리면.. 섬진강이 백운산 자락의 허리를 휘돌아가며 흐르고 있다. 멋지다!

섬진강

오후 4시10분, 다시 하산한다.

하산

10분 가량 내려가니 고소성 직전의 'ㅓ'자 갈림길이 나온다. 선두를 맡은 산수대장의 말에 따르면.. 산행 계획상 고소성을 들렀다가 최참판댁으로 하산하기로 하였지만, 고소성을 들렀다 가게되면 매표소를 지나야 하기 때문 이곳에서 막바로 최참판댁으로 하산하기로 했다한다.

갈림길

고소성에서 섬진강을 내려다보는 경치도 빼먹을 수 없는 절경인 것으로 알고 있어 내가 무척 아쉬워 하니, 산수대장이 혼자라도 갔다가 오라고 한다. 오케! 오후 4시19분, 그곳에서 왼쪽으로 하산하는 선두일행과 헤어져 홀로 고소성을 향하여 전진한다. 가던 도중 아직 제철이 되지 않아 드문 드문 피어 있는 철쭉에 눈길을 준다. 이곳 철쭉은 다른 곳에 비해 그 꽃이 황매산의 철쭉 처럼 크고 곱게 핀다고 한다.

철쭉

그 즈음 누군가 뒤쫓아 온다 싶어 되돌아 보니 우리 회원이다. 처음 뵙는 분이지만 갑장이라 하니 말 문이 쉽게 열어진다. 근디 갑장같지 않게 넘 젊다! 오후 4시23분, 고소성 북문터에 이른다. 성터 제일 높은 곳에 갑장을 앉게 하고 섬진강을 배경으로 화보촬영을 해본다. 정성껏 세 컷을 찍어보았는데 이 사진이 젤 맘에 든다.

고소성 북문터 - 섬진강

북문터 이후의 길은 가파른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그 길을 따라 전진하여도 하산할 수 있지만 많이 돌아가는 길이고 매표소까지 거쳐서 지나가야 하기 때문에 좀 전에 지나온 갈림길로 되돌아간다. (오후 4시 28분)

되돌아온 갈림길

이제 본격적으로 하산한다. 15분 가량 내려가니 당산나무 처럼 무성하게도 가지를 뻗고 있는 나무가 나온다. 수령이 제법 된 듯 싶다.

당산나무

그 부근 습지에서 만난 미나리냉이.. 잠시 반갑게 눈맞춤을 한 뒤 갈 길을 이어간다.

미나리냉이

곧이어 마을 길에 접어드니 매화나무가 푸릇푸릇한 열매를 맺어 놓았다. 이 지역에 매화꽃이 만발하고 있단 소식을 들은 것이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꽃은 지고 그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이다.

청매실

이윽고 상평리 마을에 접어든다.

상평리 마을

조금 더 내려가니, 눈에 익은 얼굴의 사진이 담벼락에 붙어 있는 집이 나온다. 대하드라마 「토지」 촬영세트 중 김훈장댁이다. 「토지」에서 평사리의 대소사를 관장하는 어른이었던 김훈장.. 양반으로서 자존심이 강해 반상의 구별이 엄격하지만 물질적인 욕심은 없어 농사지으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김훈장댁

집안으로 들어서니 툇마루 옆에 사진이 하나 붙어있다. 글과 사진을 들여다 보니 일제가 우리나라을 강점하는 것에 통분하여 대성통곡하는 장면인 듯 싶다. 이 분은 결국 을사조약 땐가 한일합병 때 자결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토지」 촬영장면

☆ 최참판댁 오후 4시53분, 「토지」 촬영세트인 최참판댁 앞에 이른다.

최참판댁 전경

박경리선생의 필생의 역작이며 우리 문학 최대의 작품으로 꼽히는 대하소설 「토지」.. 책을 두 번 읽었고 TV 드라마로도 KBS, SBS 각각의 방영분을 꼬박꼬박 시청하였지만 워낙 방대한 분량의 소설인지라 평사리와 만주벌판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들만 기억나고 그 이후 해방이 될 때까지의 이야기는 가물가물하다. 그렇지만.. '한민족이 스스로 위대한 존재로 일구어낸 조선 근대 역사를 장대한 스케일로 화폭에 담은 민족의 서사시이며 그 자체가 사상적으로나 예술적으로 아름답고 풍요하며 장엄하고 위대한 작품'이라는 어느 교수의 평에 주저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최참판댁 안내

이 소설의 씨줄 날줄이 되었던 최참판댁의 비극.. 그 무대에 들어선다. 솟을대문 안에 들어서니 문간채 담벼락에 박경리 선생의 사진과 함께 그녀의 작가연보가 걸려있다. 연보를 보니 결혼후 5년만에 남편과 사별한 뒤 집필작업에 몰두하여 수 많은 작품을 일구어냈다. 그 중 가장 돋보이는 소설은 「토지」. 25년동안 4만매의 원고지에 6백만자로 완성하였다던가? 대단한 역작이 아닐 수 없다.

솟을대문 안 문간채

행랑채에 들어선다. 안내도를 유심히 보아두어서 내가 가고자하는 위치가 대략 감이 잡힌다. 앞에 있는 문 너머에는 사랑채가 있고, 왼편에는 안채가 있으리라..

행랑채

윤씨부인이 거쳐하던 안채부터 들러본다.

안채

마루옆에는 최참판댁 비극의 발단 중에 하나였던 윤씨부인과 동학군 장수 김개주 사이의 불륜을 눈치챈 최치수가 어머니를 윽박지르는 장면을 그려놓았다. 독선과 아집으로 뭉친 냉소적인 인간인 최치수의 고문.. 불가피 했던 사연을 속 시원히 밝히지 못하고 괴로워 하는 어머니 윤씨부인..

윤씨부인과 최치수

최치수가 거쳐하던 사랑채로 건너간다. 사랑채 방안에는 '명예 최참판'으로 임명되었다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방문객들을 맞아준다.

사랑채와 명예 최참판

사랑채 우측 끝에는 누각이 딸려있다. 그곳은 회의적이고 냉소적이었던 최치수가 자신과 동문수학을 했던 이동진과 시류를 나누던 공간이다. 이동진은 청백리의 후손이자 개명한 양반 출신의 개화파 민족주의자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사랑채 누락

신발을 벗고 누각 위에 올라서니 담장 너머로 악양 무딤들이 내려다 보인다. 이곳에서 만석꾼인 최치수가 자신의 땅인 저 무딤들에서 소작인들이 해태하지 않고 열심히 경작하고 있는지를 감시하곤 하였으리라.. 무딤들 한 가운데에 보이는 두 그루의 소나무는.. 최치수의 무남독녀 서희와 그녀의 하인이었던 길상간의 애틋한 사랑이 연상된다 하여 부부송으로 불리우고 있다.

사랑채 누각에서 보는 무딤들

별당채로 발길을 옮긴다.

별당채

별당채 앞에는 연못이 하나 있다. 어린 서희가 자신의 친엄마인 별당아씨를 그리워 하며 않아 있던 곳.. 그 옆에서 몸종이자 친구인 봉선이가 그녀를 위로해주고 있고.. 그녀들 옆에는 길상이가 마당을 쓸고 있고.. 그러한 장면이 생각나는 곳이다.

별당 연못

별당채 한켠에는 서희의 독기서린 표정을 담고 있는 액자가 놓여있다. 아버지 최치수에 이어 할머니 윤씨부인이 죽은 이후, 최씨 집안의 유일한 생존자가 된 최서희.. 그 때 먼 친척인 조준구가 나타나 마을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서희까지 몰아내면서 최참판댁의 모든 재산을 손아귀에 넣는다. 결국 길상의 도움으로 만주 땅으로 피신하기 전에 서희가 뱉어내었던 한 서린 절규.. "찢어 죽이고, 말려 죽일 게야." SBS 드라마에서 최서희역을 맡았던 김현주의 실감나는 연기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서희의 한

별당채 담장 옆에는 작약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언제보아도 진한 한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꽃이다.

작약

별당채를 빠져나오다가 행랑채에 걸려있는 액자를 찬찬히 읽어본다. 월선이의 최후 순간을 그려놓은 놓은 것이다.
평민 아들인 용이는
농민답지 않은 수려한 용모로 살아가면서
무당 딸인 월선과 사랑하게 되는데
평민과 무당이라는 신분 차이 때문에
월선이는 사랑하는 용이와 맺어지지 못하고
다른 곳에 시집을 가게되지만
그것도 잠시, 결혼에 실패하고 돌아와
주막을 운영하면서 강청댁의 온갖 구박을 받아가면서도
용이와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나눈다.
액자속의 장면은
세월이 다소 흐른 뒤 월선이가 암에 걸려
용이와의 여한 많은 사랑을 남기고 죽음을 맞이할 때
용이가 임종을 맞아주는 장면인 것으로 기억된다.
"니 여한 없제?"
"야. 없십니다."
"그라문 됐다. 나도 여한이 없다."
가슴을 저미게 하는 대사이다.
무딤들의 부부송은
서희와 길상간의 사랑 보다도
용이와 월선간의 사랑이 더욱 애틋하여
혹자는 그 두 소나무를 '용이 월선나무'라고 부르고 있다 한다.
나 또한 후자가 더욱 걸맞는 이름이라 생각된다.


용이와 월선이

o 최참판댁 → 하평리 1003번 지방도 오후 5시11분, 최참판댁에서 나온 뒤 마을장터에 잠시 들렀다가 주차장 쪽으로 내려간다. 상가지역을 지나고..

상가

상평마을 입석과 박경리 토지문학비가 세워져 있는 대형주차장을 지나고..

상평마을 입석, 박경리 토지문학비

하평마을 쪽으로 계속해서 내려간다.

하평마을

이윽고 1003번 지방도변에 이르니 그곳에 밋쓸버스가 있다.

1003국도

☆ 지나온 길 오후 5시23분, 하평마을 1003번 지방도변에 당도함으로써 성제봉 산행을 마친다. 총 산행거리는 18.5km(GPS 기준), 산행시간은 중식/조망(2시간14분)을 포함하여 총 6시간39분 소요되었다.

GPS 산행 궤적

GPS 산행 고도 및 거리

구글 교통궤적

☆ 쫑 뒷풀이를 마치고 대전으로 귀가 하는 길.. 상아교 교주께서 홍솔님에게 시비를 건다. "언니는 너무 이뻐서 싫어!" 홍솔님이 어쩔 줄 모르며 얼굴을 붉히신다. "아이잉~ 왜 그래~~~~~~~?" 그때 '키다리 언니' 음같다님이 선 굵은 명언을 남긴다. "상아 괜찮아~ 이쁜 것들은 삼일 밖에 안 가!" 가만 듣고 있던 초롱이님, 오로라님, 나뭇꾼님, 그리고 청려장이 빵 터진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