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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100대명산

산행기 - 지리산 노고단/화엄사 (2008.12.20)

by 청려장 2008. 12. 22.

"산행기 - 지리산 노고단 (1,507m)"

노고단 고개

화엄사 계곡

o 일시: 2008.12.20(土) 10:45 ~ 15:08 (총 4시간 23분) o 날씨: 가랑비 후 갬 -3.6℃~8.0℃ (전남 구례) o 코스: 성삼재→노고단고개→노고단→노고단고개→코재(무넹기)→화엄사 o 거리: 12.0km o 동행: 대전한마음토요산악회 33명 ☆ Time Table :
시 각 구 간 거 리 시 간 속 도
10:45~12:18 성삼재→노고단→대피소 4.05km 1:33' 22'57"/km
10:45 성삼재
11:12 갈림길1 (화엄사 5.9km, ←노고단고개 1.1km) [대기 3분]
11:19 무넹기(코재) (화엄사 5.7km)
11:25 갈림길2 [대기 4분]
11:35 노고단대피소 [대기 3분]
11:46 노고단고개 [대기 10분]
12:00 노고단(1,507m) [대기 6분]
12:18 노고단대피소
12:18~12:55 중식 (노고단 대피소) - 0:37' -
12:55~14:26 대피소→화엄사 6.45km 1:31' 14'06"/km
12:55 노고단대피소
13:03 무넹기(코재) (화엄사 5.7km)
13:54 참샘터(화엄사 2.5km)
14:00 연기암 갈림길(화엄사 2.0km)
14:26~14:49 화엄사 [관람 23분]

14:49~15:08 화엄사→주차장 1.5km 0:19' 12'40"/km
14:49 화엄사
15:03 일주문
15:08 주차장

종 합 12.0km 4:23' 21'55"/km (2.73km/hr)
※ 지체시간: 총 1시간26분 (중식: 37분, 휴식/관람: 49분) ☆ 산행코스

산행지도

◎ 등반 메모 ◎
o Intro.. 지리산 노고단(1,507m)은.. 신라시대 때 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 선도성모를 지리산 산신으로 받들고 나라의 수호신으로 모셔 매년봄, 가을 제사를 올렸던 곳이다. 이런 연유로 해서 선도성모의 높임 말인 노고와 제사를 올리던 신단이 있었던 곳이라는 뜻으로 노고단이라 부르게 되었다. 신라시대 화랑들의 심심수련장이었다고도 얘기되는 노고단은 일제시대 때 미국, 호주 외국인 선교사들의 피서용 별장이 52동이 있었던 곳으로도 유명한데 1948년 10월 여순사건이 발발한 후 근 한달간 이상 김지회의 반란군들이 이곳 별장촌을 근거지로 삼았다고 하여 국군 토벌대가 다시 들어와 점령하면서 빨치산 거점화되는 것을 막기위해 불태워버려 지금은 그 옛 건물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다. 별장건물이 파괴되면서 주변의 수목들도 함께 피해를 입어 지금도 노고단 일대에는 큰 수목이 보이지 않고 싸리나무 등 관목류만이 앞다투어 자라고 있다. 봄철의 진달래.철쭉, 여름철의 원추리 군락등이 장관인 노고단의 정상을 올라와 보면 주능선의 웅대한 자태와 함께 남쪽으로는 섬진강의 물줄기가 흰 곡선을 그리며 흐르는 것이 마치 한 폭의 산수와 같이 느껴진다. 또한 탁 트인 시계로 멀리 무등산을 확연히 볼 수 있는가 하면 다도해의 장관도 조망할 수 있는 아름답고 신비한 곳이다. 다도해에서 실려온 운무가 산허리를 감싸고 흐르면서 운해만리 구름바다를 이루다 다시 점점이 흩어지는 비경은 산객을 홀리게 한다. 노고단 정상일대에는 KBS,MBC방송 송신탑과 그 부속건물이 있고 청학동 도인들이 3일간 공들여 쌓은 거대한 돌탑(케룬)이 서 있다. - 출처: 남원시관광발전협의회 o 이동 오전 6시40분, 집 밖으로 나오니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어 우산을 챙긴 뒤 승용차를 몰고서 평송으로 간다. 오전 7시00분, 밋쓸버스가 평송 앞에서 출발한다. 오전 7시20분, 대전 IC를 벗어나 경부고속도로에 진입한 후 대진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남하한다. 오전 9시00분, 함양 IC에서 88올림픽 고속국도에 진입하여 서쪽으로 전진한다. 오전 9시15분, 지리산 IC를 빠져나와 인월에 진입한 후 60번 국도를 타고 남진하다가 산내에서 861번으로 갈아탄 뒤 달궁, 심원을 거쳐 성삼재로 향한다.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비가 잠시 그치는 듯 하더니만 목적지에 다가올 즈음 다시 빗줄기가 굵어지고 있다. 그래도 1,000미터를 훌쩍 넘는 지리산 날등에는 비가 눈으로 변하여 쌓여 있으려니 생각하고 심원을 지날 즈음 산행 예정코스인 지리산 서북능선(성삼재-고리봉-만복대-큰고리봉)에 쌓여 있을 법한 하얀눈을 기대하며 우측 창밖을 올려다보지만 짙은 운무만 보일 뿐이다. 오전 10시15분, 성삼재 주차장에 도착한다.

성삼재 휴게소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고.. 대장님들은 산행을 예정대로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고민한다. 일부 회원은 산행 대신 찜질방을 가자고 부추기지만, 일부 회원은 예정대로 산행을 하고 싶어 비옷을 덧입고선 산행개시를 기다린다.

성삼재 주차장

고심 끝에 예정대로 산행을 하기로 결정하고 일단 단체사진을 위해 한 자리에 모인다.

단체사진

찍사는 비옷 자락을 휘날리며 대포를 들이댄다. 멋진 찍사다. ^^

찍사

단체사진을 찍은 뒤 선두가 만복대를 향하여 출발을 하려던 중, 빗줄기가 더욱 굵어지기 시작하니 대장님들이 다시 모여 상의를 하더니만 산행코스를 당초 예정되었던 서북능선에서 비교적 위험하지 않은 노고단-화엄사 코스로 급변경한다. 고심에 찬 결정이었으리라.. o 성삼재 → 노고단 오전 10시45분, 노고단을 향하여 산행을 개시한다. 선두는 봉평대장, 중간은 산수대장, 후미는 산이슬대장이 맡아서 회원들을 이끌고 간다.

산행 개시

탐방지원센터를 통과하여 포장도로에 진입하니 도로 한가운데의 노면이 얼어붙은 잔설 때문에 빙판이어서 비교적 잔설이 없어 미끄럽지 않은 노견으로 전진한다.

빙판 길

그러나 10분 가량 전진하니 이제는 노견에도 잔설이 얼어붙어 있어, 잠시 걸음을 멈추고선 아이젠을 찬 뒤 전진한다. 이후에도 점점 더 미끄러운 빙판 길이 이어지고 있어 아이젠을 차지 않은 회원들은 더 이상은 위험하니 하산할 것을 권유한다. 그 바람에 순한양 고문님, 보라향기/충곡 부회장 등 10여명의 회원들이 산행을 포기하고 성삼재로 되돌아 내려간다.

빙판길

오전 11시12분, 첫번째 갈림길에 당도한다. 이곳에서 막바로 노고단으로 오르려고 왼편 계단을 타고 오르려다가.. 일단 코재까지 간 다음 그곳에서 노면 상태를 본 뒤 노고단에 오를 것인지 화엄사로 하산할 것인지를 결정하기로 한다.

갈림길1

오전 11시15분, 왼편 계단 길을 버리고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직진하여 오전 11시19분, 코재(무넹기) 갈림길에 당도하니, 그 즈음부터 노면에 잔설이 없어 미끄럽지 않은 길이 노고단으로 이어진다. 하여.. 이곳에서 화엄사로 하산하지 않고 노고단을 찍고 내려오기로 결정한다.

갈림길 이정표

계속해서 노고단으로 향하는 길.. 언제부턴가 비가 그쳐있고, 산길도 미끄럽지 않아 어렵지 않게 산행을 하고 있는데, 슬그머니.. 산행을 포기하고 내려간 회원들께 미안하단 생각이 든다. 10분 정도만 더 버티고 올라오면 문제없이 산행을 할 수 있었을 텐데.. 허긴, 앞길을 어떻게 예측할 수 있으랴.. 그때 그때 최선의 판단과 선택을 할 뿐이지.. 오전 11시25분, 두번째 갈림길에 당도한다. 그곳에서 산행 인원을 파악하며 잠시 대기한다.

갈림길2

구간 거리도 [클릭☞확대]

오전 11시29분, 오른편 돌계단을 타고 오른다. 6분 가량 힘차게 돌계단을 타고 오르니 노고단 대피소가 나온다. 대피소에는 산객이 아무도 없는 듯 운무 속에 고요함이 젖어있다.

노고단 대피소

오전 11시38분, 대피소에 산행 회원들이 얼추 다 모일 즈음 노고단 고개를 향하여 전진한다. 경사진 오르막에 자잘한 너덜바위들이 깔려있는데, 군데군데 잔설이 얼어있어 발걸음을 조심하며 오른다.

노고단 대피소 [클릭☞확대]

노고단 고개 가는 길 [클릭☞확대]

11시46분, 노고단 고개에 당도한다. 고개 북쪽에 설치된 케룬이 뿌연 안개에 휩싸여 희미한 윤곽만 보여준다.

노고단 고개

잠시 기념촬영을 한 뒤, 남쪽으로 뒤돌아서서 노고단 방향의 목책 앞으로 간다.

노고단 고개

여지껏 지리산 종주를 위해 노고단 고개를 몇 차례 지나갔지만 그때마다 노고단은 출입이 제한된 구역이라서 들어가지 못 하였던 터라 오늘은 기필코 가보고 싶다. 오후 11시56분, 봉평대장과 함께 목책을 뛰어넘어 노고단으로 향한다. 등로는 목판으로 단장되어 있고, 그렇게 잘 단장된 목판 길이 노고단 정상까지 이어진다.

노고단 가는 길

부지런히 5분 가량 오르니 나즈막한 언덕 위로 노고단 케룬이 보인다.

노고단 정상

오후 12시00분, 노고단 정상(1,507m)에 오른다.

노고단 돌탑(케룬)

안개가 심하여 이곳의 환상적인 조망은 생각조차 할 수 없더라도 처음 올라온 곳이니 만치 여유 있게 감회를 느끼고 싶은 맘이 있지만, 드센 바람이 몰아치고 있어.. 증명 사진이나 찍고 내려가기 위해 표지석을 찾아보니 케룬 뒷편 남쪽 한켠에 세워져 있다.

노고단 표지석

그 앞에서 증명사진..

노고단 정상 - 청려장

o 노고단 → 노고단 대피소 오후 12시06분, 하산한다.

하산 길

노고단 정상에서 남쪽으로 돌아내려가는 하산로를 따라 가다보니, 안내표지판이 세워진 전망대가 보인다. 표지판에는 섬진강 사진이 있다. 아마도 날씨가 좋으면 이곳에서 저와 같은 섬진강 물줄기가 조망되는가 보다. 전북 진안군 팔공산에서 발원하여 대지를 적시며 남해로 굽이쳐 흘러가는 대장정의 한자락을 안개 때문에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섬진강 안내도

정상 일대는 50년전 빨치산 소탕을 위해 수목들이 제거되었던 바, 아직도 자잘한 관목들만이 자라고 있는데 드문드문 자리잡고 있는 구상나무만이 무성한 가지를 내뻗치며 꾿꾿한 위세를 떨치고 있다.

구상나무

오후 12시18분, 노고단 고개를 지나 대피소에 당도한다. 대피소에는 노고단 고개까지 올라왔다가 막바로 내려간 회원들이 자리를 잡고선 라면을 끓여 먹고 있다.

노고단 대피소

나도 라면을 끓여 먹기 위해.. 어제 새로 장만한 콜맨과.. 코펠, 라면 3개, 보온통에 담아온 끓인 물 3리터, 끓이지 않은 물 2리터를 꺼낸다. 콜맨에 불을 붙이고 라면 3개에 필요한 물을 코펠에 담으며 물 대중을 하니 끓인 물 2.5리터 정도면 충분할 듯 싶다. 결국 끓이지 않은 물 2리터는 불필요하게 가져온 셈이다. -.-;; 암튼, 보온 물을 담은 코펠을 콜맨 위에 올려놓으니 얼마되지 않아 물이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좋구만.. 눈물 겨운 순간이다. 지난 해 라면을 끓여주지 않는다고 하얀머시기(?)에게 얼마나 시달렸던가? *^^*

콜맨

그 뼈져린 사연을 알고 있는 이쁜앙마가 기꺼이 시식을 해준다. 앙~~~~~ 맛 있다!

앙마의 시식

딱 알맞게 끓여진 라면 가락을 후루룩 후루룩 맛 좋게 먹고.. 얼~큰하고 시원한 라면 국물을 훌훌 탈탈 다 마시고 나니.. 먼저 와서 식사를 하던 다른 일행들은 이미 화엄사를 향하여 떠나고 없고 봉평대장과 나만이 남아있다. o 노고단 대피소 → 화엄사 오후 12시55분, 봉평대장과 함께 노고단 대피소에서 나와..

노고단 대피소

너덜바위 소로길을 지나고..

노고단 대피소에서 하산하는 길

이어지는 돌계단 길을 통과한 뒤 좌우로 가로지르는 세멘트 포장길에서 왼편으로 꺽어돌아 코재로 향한다. 이제 비는 완전히 그쳐 있고 간간히 햇볕도 보일 정도로 날씨가 개이었다.

코재로 가는 길

오후 1시03분, 코재(무넹기) 3거리에 당도한다. 코재는.. 화엄사방향에서 이곳으로 오르기 직전의 오르막이 워낙 경사가 심하여 코가 땅에 닿을 정도라고 하여 불려진 이름이고 혹자는 앞 사람의 궁둥이가 코 앞에 걸린다고 하여 '궁둥이 골'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또한 이곳은 '무넹기'라고도 불리우는데, 그것은 원래 노고단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심원계곡 쪽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이 고개에 인위적으로 도랑을 파서 물을 화엄사계곡 쪽으로 넘어가게 했다고 하여, '물을 넘겼다'라는 뜻의 '무넹기'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이라 한다.

코재(무넹기) 삼거리 이정표

코재삼거리에서 화엄사 계곡쪽으로 내려간다. 가파르게 떨어지는 너덜바위 지대를 벗어날 즈음 앞서간 일행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화엄사 계곡

이제 운무가 어느 정도 걷히니.. 밝고 맑은 공기가 숲 속의 활기를 찾아주고 있다. 퇴색했지만 아직 붉은 단풍잎과 사시사철 푸르른 조릿대, 그리고 갈색으로 나뒹구는 낙엽.. 아름다운 화엄사계곡의 숲이다.

화엄사 계곡의 숲

참샘터를 지날 즈음..

참샘터 이정표

섭이님과 산초님을 만난다. 무언가를 놓고 티격태격을 하였던 듯 산초님이 나에게 물어온다. 산초님 - "충곡님하고 산수님 중 누가 대토에 먼저 들어왔죠?" 청려장 - "글쎄.. 충곡이 먼저 왔을 껄요?" 섭이님 - "아녀~ 산수는 나와 동기이고, 충곡은 나보다 늦게 들어왔어! 긍께 산수가 충곡보다 빨러!"

섭이와 산초

섭이가 그렇게 완강하게 주장하고 있으나.. 나와 산초님은 막연히 '충곡이 먼저!'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이따 확인 함 해봅시다!' 하고 논쟁을 마무지 짓는다. (나중에 충곡에게 물어보니, 나와 산초님의 주장이 맞았다. 흠~ 내기 하자고 할껄.. ^^) .. 오후 2시00분, 연기암 갈림길을 지나고.. 오후 2시05분, 목재 다리를 건널 즈음 산이슬대장 일행을 만난다. 웃는 모습이 이쁜 가이아님에게 물어본다. "가이아가 뭔 뜻이래여?" "대지의 신이랍니다." "그게 어느 동네에 사는 신이지요?" "그리스 신화에 나와여.." "글쿤요" 옆에 있던 무대뽀가 자기도 닉네임을 신 이름으로 바꾸고 싶다고 하기에 즉석에서 지어준다. "바카스로 햐~.. 술의 신! ㅎㅎ"

산이슬대장 일행

등로가 대숲 사이로 이어질 즈음, 뒤쫓아내려온 나뭇꾼님의 발걸음이 바쁘다 오로라님 도시락을 나뭇꾼님이 지고 있다보니, 산행을 하지 않은 오로라님이 주차장에서 밥을 먹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얼른 내려가셔야겠네요.' 하고선 길을 비켜 드리니 급히 대숲 사이를 빠져나가신다.

발걸음 급한 나뭇꾼님

오후 2시24분, 화엄사 담장이 보이기 시작할 즈음 다리를 건너가는 한쌍이 시야에 들어온다. 소리쳐 불러보니 이쁜앙마와 황금박쥐님이 뒤돌아보며 무어라 소리를 치며 손짓을 한다.

화엄사 다리

다리를 건너니 화엄사 불이문(不二門)이 보인다.

화엄사 입구

o 화엄사 오후 2시49분, 화엄사 불이문(不二門) 앞에 당도하여 경내를 들여다보니 공사중 팻말이 세워져 있고, 통행을 금지하고 있다.

화엄사 불이문(不二門)

오른편 쪽문으로 화엄사 경내에 들어선 뒤, 우선 대웅전을 찾아간다. 전면 4칸의 대웅전 앞에 다가가니 낡디 낡은 단청에 오랜 세월의 이끼가 묻어있다. 과연 천년 사찰이다.

대웅전

화엄사는.. 544년(신라 진흥왕 5년) 연기(烟起)가 창건하였다. 절 이름은 화엄경(華嚴經)의 화엄 두 글자를 따서 붙인 것이라고 한다. 643년(선덕여왕 12년) 자장(慈藏)이 증축하였고, 석존사리탑(釋尊舍利塔)·7층탑·석등롱(石燈籠) 등을 건조하였으며, 875년(헌강왕 1년) 도선(道詵)이 다시 증축했다. 1593년(조선 선조 26년) 임진왜란 중 불타 버리고, 1630년 벽암선사(碧巖禪師)가 7년을 걸려 재건하였다. 대웅전은 1636년(인조 14) 복구되었다. 그 후 1701년(숙종 27)에 화엄사를 선교양종(禪敎兩宗)의 대가람(大伽藍)으로 하였다. (출처: 위키백과) .. 법당안에는 다소 위엄스런 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대웅전 삼존불

대웅전 왼편에 있는 각황전(覺皇殿)으로 간다. 각황전은 통일시대때 지어진 앞면 7칸, 옆면 5칸 규모로 지은 2층집으로서.. 특이하게도 처마를 받치기 위한 기둥이 기단 위와 지붕 위에 있고, 전체적으로 2층 구조로 된 다포 양식이 매우 화려한 느낌을 준다. 이 각황전은 건물이 매우 웅장하며 건축기법도 뛰어나 우수한 건축 문화재로 평가되어 국보 제57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각황전(覺皇殿), 국보 제57호

법당 안은 위 아래층이 트인 통층 구조로 되어 있고, 불단에 3여래불상과 4보살상을 모시고 있다.

각황전 삼존불

각황전 마당 오른편에는 사자탑이 세워져 있다. 이 탑은 보물 제300호로서.. 아래 기단의 면석이 갓기둥과 버팀기둥이 없는 불단 형식으로 몸돌은 네모난 기둥처럼 우뚝하게 길며, 각 면에는 사천왕상이 얕게 새겨져 있다.

각황전 사자탑, 보물 제300호

각황전 마당 왼편에는 석등이 세워져 있다. 이 석등은 국보 제12호로서.. 전해 내려오는 우리나라 석등 가운데 가장 크다 한다. 간주석(竿柱石)은 통일신라 석등의 팔각기둥과는 달리 북처럼 배가 부른 형태이다.

각황전 석등, 국보 제12호

마당 왼편끝에는 적멸보궁(寂滅寶宮)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아~ 여기도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었던가?

적멸보궁(寂滅寶宮) 안내판

적멸보궁으로 가는 산 기슭으로 오르다 오른편을 보니, 각황전 뒷 숲에 동백나무가 빼곡히 자라고 있다. 선운사 보단 못하지만 이른 봄에는 이곳도 핏빛 동백꽃이 만발해 있으리라 상상해본다.

동백나무숲

가파른 오르막 계단을 타고 언덕마루에 오르니 특이한 모양의 삼층석탑이 보인다. 국보 제35호인 사사자삼층석탑(四獅子三層石塔)이다. 이 탑은 기단에 주악천인과 공양상이 화려하게 새겨져 있고 기단 갑석 위에는 연꽃 봉오리를 든 비구니상이 서 있다. 그 위 1층 몸돌에는 문의 좌우에 인왕상과 사천왕상, 범천상과 제석천상이 새겨져 있다. 탑을 향해 석등을 머리에 이고 앉아 있는 승려상은 찻잔을 들어 공향하는 모습이다. 이곳은 효대(孝臺)라고도 불리는데, 이것은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緣起)조사가 어머니를 위해 탑을 세웠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것이다.

사사자삼층석탑국보(四獅子三層石塔), 국보 제35호

그런데 정작 적멸보궁이 보이지 않는다. 안내문에 저 석탑속에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는 말이 없는 걸보니 다른 곳인 것 같아 둘러보니 석탑 마당 북편 낮은 곳에 황적문(惶寂門)이란 현판에 걸려있는 남루한 요사체가 있다. 저곳인가? 그곳에 들어가 확인해보고 싶지만 대문이 닫혀있어 들어가보지 못한다. 결국 적멸보궁을 보지 못하고 적황전 마당으로 내려온다. (나중에 알고보니 부처님 진신사리는 사사자삼층석탑에 모셔졌다고 한다.)

황적문(惶寂門)

[적멸(寂滅)] ①자연히 없어져 버림 ②불교에서, 번뇌(煩惱)의 경지를 벗어나 생사의 괴로움을 끊음, 죽음, 입적(入寂), 열반(涅槃)을 뜻함. [적멸보궁(寂滅寶宮)] 적멸의 낙을 누리고 있는 곳. 즉,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한 사찰 당우(堂宇). 우리나라 대표적인 적멸보궁은 다섯 곳.. 1.영축산 통도사, 2.오대산 중대, 3.설악산 봉정암, 4.사자산 법흥사, 5.태백산 정암사 .. 적황전과 대웅전 앞의 큰 마당에는 서오층석탑(西五層石塔)이 세워져 있다. 보물 제133호로 지정된 이 탑은 특이하게도 탑신에 12지신, 여덟 무리의 신(八部衆), 사천왕이 함께 새겨져 있고 1995년에는 탑 속에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비롯한 유물 47점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서오층석탑(西五層石塔), 보물 제133호

대웅전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한 뒤..

대웅전

경내를 빠져나오다가 문득 곶감을 말리고 있는 만월당(滿月堂) 앞으로 간다. 대들보 아래 매달린 곶감과 처마밑의 단청이 멋지게 어울리고 있어 정성껏 한 컷 잡아본다.

만월당(滿月堂)의 곶감

o 화엄사 → 주차장 오후 2시49분, 화엄사 경내를 빠져나와 주차장을 향하여 내려간다. 오후 3시03분, 일주문을 지나고..

일주문

5분 가량 더 내려가니 밋쓸버스가 보인다.

주차장

☆ 지나온 길 오후 3시08분, 화엄사 대형주차장에 당도함으로써 지리산 노고단 산행을 마친다. 총 산행거리는 12.0km, 산행시간은 중식/지체시간(1시간26분)을 포함하여 4시간23분 소요되었다.

산행 고도

산행 궤적

산행 및 교통 궤적 (Google)

☆ 뒷풀이 주차장 옆에서 돼지찌개와 소주로 뒷풀이.. 산행을 못하고 차 속에 남은 보라향기부회장님과 꿈따라기가 정성껏 뒷풀이 준비를 해주었다고 한다. 감사합니다. ☆ 쫑 예상치 못한 비 때문에 당초 목적하던 지리산 서북능선 산행을 하지 못하였지만 처음으로 노고단에 올라섰고, 또한 화엄사를 여유있게 꼼꼼히 둘러볼 수 있었기에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산행이 되었다. 맘 고생이 많았을 법한 산행대장님들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