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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100대명산

산행기 - 합천 가야산 (2008.4.13)

by 청려장 2008. 5. 2.

"산행기 - 합천 가야산 (1,430m)"

산행 중인 스님 (가야산 숲 속) [클릭☞확대]

o 일시: 2008.4.13(日) 09:53 ~ 16:53 (총 7시간 00분) o 날씨: 맑음 9.1℃ ~ 20.2℃ (경남 합천) o 코스: 해인사→토신골→헬기장→상왕봉→칠불봉→서성재→야영장→백운동주차장 o 거리: 10.0km ☆ 등산기록 :
시 각구 간거 리시 간속 도
09:53~12:38해인사→헬기장4.6km2:45'35'52"/km
09:53  해인사주차장(박물관)
10:06~10:24  해인사 [관람 18분]
10:24  용탑서원
11:36  공터 [휴식 14분]
12:00  토신골 갈림길
12:38  헬기장
12:38~13:15중식 (헬기장)-0:37'-
13:15~14:05헬기장→상왕봉0.8km0:50'62'30"/km
13:15  헬기장
13:19  석조여래입상 [감상 7분]
13:30  봉천대 [대기 3분]
14:00  상왕봉 갈림길(1,420m)
14:05  상왕봉 정상(1,430m) [감상 14분]

14:19~15:28상왕봉→서성재1.4km1:09'49'17"/km
14:19  상왕봉 정상
14:22  상왕봉 갈림길
14:33  삼거리
14:35  칠불봉 정상(1,433m) [감상 5분]
14:52  1,346봉 [감상 8분]
15:29  서성재 (상왕봉 1.4km, 칠불봉 1.2km, 백운동 3.2km)
15:28~16:53서성재→백운동3.2km1:25'26'33"/km
15:28  서성재
15:43  백운암지 (칠불봉 1.8km, 백운동 2.6km)
16:06  동성재 (칠불봉 2.5km, 백운동 1.9km)
16:17  백운3교 (칠불봉 2.8km, 백운동 1.6km)
16:22  백운2교
16:27  백운1교
16:38  백운동 야영장 [휴식 8분]
15:47  백운동 매표소
16:51  가야산 관광호텔 (정상 4.5km, 주차장 0.2km)
16:53  백운동 주차장
종 합10.0km7:00'42'00"/km (1.42km/hr)
※ 지체시간: 중식 37분, 휴식 & 감상 1시간17분 (총 1시간54분) ☆ 산행코스

산행 지도

◎ 등반 메모 ◎
o Intro.. 석화성(石火星). 우리 말로 바꾸면 돌불꽃.. 이 말은 가야산의 크고 작은 뾰족한 기암봉을 비유한 것으로 출처는 조선 후기 지리서인 이중환의 '택리지'라고 한다. 이 책에는 '합천 가야산은 끝이 날카로운 바위들이 늘어선 모양새가 흡사 불꽃이 공중에 솟은 듯하다'고 적혀있다 한다. 합천 가야산은 1972년 10월13일 우리나라에서 아홉 번째로 지정된 국립공원이다. 이 돌불꽃 성(城)이 품고 있는 해인사에는 민족의 보배이자, 세계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을 간직하고 있다. 또한, 해인사는 송광사, 통도사와 더불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3보 사찰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즉, 불(佛), 법(法), 승(僧)을 불교의 요체라 하여 부처님의 진신사리(佛)를 모신 양산 통도사를 불보사찰 부처님의 말씀(法)을 모신 합천 해인사를 법보사찰 16국사(僧)를 배출한 순천 송광사를 승보사찰이라 일컫고 있다 한다. 명산은 고산자락에 깃든 명찰의 존재에 의해 위세가 살아나고 명찰은 명산의 가호 안에 고고한 생명이 유지되고 있으리라.. 고고함이 깃든 고산자락을 향하여 홀연히 떠나본다. o 이동 아침 5시45분 기상하여 배낭을 꾸린 뒤 아침 6시10분 자전거를 타고 출발.. 하상도로를 타고 농수산시장까지 간뒤, 농수산시장을 관통하여 중리동으로 진입.. 중리5거리를 지나 용전동 한전앞을 통과한 시간이 아침 6시50분.. 시간이 다소 빠듯하다 싶어 그 부근 국민은행 앞에 자전거를 주차하고 택시를 타고 시외버스 동부버스터미널로 향한다. 7시00분, 터미널에 도착하여 7시10분발 해인사행 버스티켓을 끊은 뒤 대합실 식당에서 김밥 2줄을 허겁지겁 먹어 치운 뒤 버스에 승차.. 대전 IC를 벗어난 시외버스가 경부고속도로에서 대진고속도로로 진입하여 함양으로.. 함양에서 88올림픽고속도로로 갈아타서 거창에 도착한 시간이 아침 8시45분.. 버스는 아침 9시정각 거창에서 출발하여 아침 9시45분경 가야산 해인사 입구에 도착한다. o 해인사입구 → 해인사 아침 9시45분, 해인사 입구에서 하차하여 해인사 방향으로 걸어올라간다. 몇년전 가족과 함께 왔었던 기억이 아롱아롱 떠오른다. 맞아 이 길이었어..

해인사 입구

5분 가량 걸어올라가니 주차장이 있고 그 옆에 해인사 박물관 건물이 있다. 예전엔 보지 못했던 것 같은데.. 최근에 새로 지었나보다.

해인사 박물관

박물관 뒷길로 돌아들어 자그마한 다리를 넘어가니 자연관찰로 안내표지판이 보인다.

안내 표지판 - 해인사 가는 길

자연관찰로를 따라 나무 숲을 천천히 감상하며 오른다. 예전 기억이 나기에 문득 주변에 있는 참나무를 올려다 보니 역시 겨우살이들이 눈에 많이 띈다. 숲이 건강하단 증표이리라..

겨우살이

해인사가 900m 남았음을 알려주는 이정표를 지나 계속해서 자연관찰로를 따라 가다보니 길가 풀섶에서 현호색과 개별꽃이 경염을 하고 있다.

현호색

개별꽃

아침 10시02분, 사리탑군을 지난다. 문득 몇 해 전 열반에 드신 성철종정의 부도도 있을 듯 싶어 찾아본다.

사리탑

비교적 새로이 조성된 곳을 찾아 뒷켠으로 들어서보니 두개의 부도가 보이는데 하나는 종 모양이고 하나는 자그마한 공 모양이다. 가까이 가서 비문을 읽어보고 싶지만 주변이 공사중이라 접근이 여의치 않아 되돌아 나온다. 둘 중 하나일 것 같은데.. 나중에 알고보니 자그마한 공 모양이 성철종정의 사리가 모셔진 부도라고 한다.

성철종정 부도

집에 돌아와 자료를 찾다보니 종정께서 1993년 열반하였음을 확인한다. 벌써 그케 되었나? 이 큰 스님이 남긴 열반송을 음미하여 본다. 삶의 우둔함과 한계를 독특한 어법으로 지적하였다는.. "일생 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 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 갈래나 되는지라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아침 10시06분, 일주문에 들어선다. 큰 법회가 열리는지 입구에 원색 깃발들이 도열하여 나붓낀다.

일주문

일주문을 지나니 다시 해인총림이라는 현판이 쓰여진 구황문 입구가 나온다.

해인총림 입구 (봉황문)

그 길 중간 오른편에 커다마한 고사목 한 그루가 둥치만 남은 채 서 있다. 그 앞에 세워진 안내문에 따르면.. 이 느티나무는 신라 제40대 애장왕 3년(서기 802년), 순응과 이정 두 스님의 기도로 애장왕후의 난치병이 완치되자 왕이 이 은덕에 보답코자 법당과 승료(僧寮) 등 많은 가람을 헌공하여 해인사를 창건하였고 이를 기념하여 식수한 나무라고 전해지고 있으며 1,200여년의 장구한 세월동안 해인사와 더불어 성장하여 오다가 1945년 수령을 다해 고사하였다고 한다.

고사목 (수령 1,200년)

아침 10시09분, 해탈문을 지나 해인사 경내에 들어서서 옆에 세워진 조감도를 보며 전각의 위치를 파악하며 해인사 유래를 다시 한번 짚어본다. "해인"이란 "대방광불화엄경"의 "해인삼매(海印三昧)"에서 유래된 말로서 바다에 온갖 사물의 그림자가 인영(印影) 처럼 비치듯이 부처님의 지혜바다에는 온갖 만법이 나타난다는 뜻이라 한다. 따라서, 해인사는 "화엄경"의 진리에 의지해 수행하여 화엄의 사상을 온 누리에 천명하려는 원력으로 이루어진 사찰이라 한다.

해인사 조감도

구광루를 지나..

구광루

대적광전으로 간다. 대적광전은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모시는 화엄종 사찰의 중심법당이다. 해인사 창건 당시(애장왕 3년, 서기 802년) 순응(順應)과 이정(利貞) 등 두 스님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대적광전

법당 밖에 놓여 있는 신발을 보니 안에서 많은 신도들이 예불을 올리고 있음이 짐작된다.

대적광전 - 신발

대적광전 뒤뜰에는 화단이 있다. 매발톱꽃과 꽃잔디가 화사하게 어울려 피어있다.

화단

그 중 가장 목을 하늘로 치켜든 매발톱꽃이 있어.. 저런 매발톱꽃도 있던가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하늘매발톱꽃이다. 화려하기도 해라..

하늘매발톱

팔만대장경판전으로 들어선다. 대장경판은 촬영이 금지되어 눈으로만 감상한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은 보물이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다.

법보전

이제 사찰을 빠져나와 산행을 하기 위해 산행들머리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고 하는 대적광전 왼편으로 가보니 울타리 밖으로 나가는 길이 있다. 울타리 밖을 나서니 전나무 한 그루가 있는 데 그 앞에 안내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학사대 전나무

안내문에 따르면 최치원 선생이 만년에 벼슬을 버리고 가야산에 은거하였는데, 말년에 제자들 앞에서 이 곳에 지팡이를 꽂으며 "내가 살아 있다면 이 지팡이도 또한 살아 있을 것이나 학문에 열중하거라"는 유언을 남기고 지금의 홍제암 뒤 진대밭골로 홀로 유유히 사라졌다는 전설이 전해내려온다고 한다. 그래서 이 전나무를 고운 최치원 선생의 "지팡이 나무", 혹은 최치원 선생의 벼슬 이름을 따서 학사대(學士臺) 전나무라고 부른다고 한다. o 해인사 → 헬기장 아침 10시24분, 계곡 너머 용탑선원이 보이는 포장길을 따라 계곡을 거슬러 올라간다.

용탑선원 옆길

10분 가량 오르다가 계곡을 가로질러가니 등로가 토신골 왼편으로 이어진다.

토신골

등로 왼편 풀섶에는 남산제비꽃이 우유빛 꽃잎을 활짝 피워놓고 있다.

남산제비꽃

곧이어 나타나는 현호색 군락지..

현호색 군락지

이어지는 얼레지 화원.. 각양의 표정으로 교태를 부리고 있다.

얼레지 1

얼레지 2

얼레지 3

얼레지 4

조금 더 오르다보니 어딘가 낯익은 나뭇가지가 길가에 떨어져 있다. 들여다보며 가만 생각하니 겨우살이다. 참나무 높은 가지에 기생해서 살고 있는 것인데 왜 길가에 떨어졌을꼬? 주워들은 얘기로는 만병통치약으로 쓰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채취하러 다닌다고 하던데.. 그러고 보니 주변 나무 위를 올려다보니 겨우살이가 눈에 띈다. 누군가가 저기서 채취하다 떨어뜨린 모양이다.

겨우살이

오전 11시36분, 길가 옆에 공터가 있기에 그곳에 올라가 잠시 휴식을 취한다.

공터

선선한 산공기를 마시며 주변을 둘러보던 중 단장을 허리 뒷춤에 끼고 산길을 걸어 오르는 한 스님이 시선을 끌어들인다. 속세를 떠나 용맹정진 끝에 이제는 오욕과 번뇌에서 벗어난 듯, 한가로이 걷는 그의 발걸음이 평화롭다. 숲 속으로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으로부터 구도자의 고고함이 느껴진다.

스님

오전 11시50분, 자리를 털고 일어나 스님이 지나간 길을 쫓아 올라간다. 잘 단장된 나무계단이 숲속으로 이어진다.

산길

길가 어느 나무둥치엔 사초가 푸른 기운이 도는 하얀 꽃을 터뜨리고 있다.

사초

오후 12시02분, 삼거리에 당도한다. 옆에 세워진 표지판을 보니 토신골 갈림길이다. 당초 극락골로 올라와 마애불상을 지나오려 했는데, 표지판을 보니 극락골 등산로는 출입통제로 폐쇄되어 있다.

안내도 - 토신골 갈림길

그 부근 나무벤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곤 다시 오르막을 타고 오르다가 노랑제비꽃을 만난다. 깊은 산속에서 자라는 녀석들로서 노란 꽃잎이 티 없이 진하다.

노랑제비꽃

헬기장 부근 공터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헬기장 부근 공터 - 중식

식사를 위해 앉은 공터 옆 바위위에 우산이끼가 살아생전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채 고사했다. 왜 죽었을꼬?

우산이끼

o 헬기장 → 상왕봉 오후 1시15분, 점심식사를 마치고 철계단을 오르다보니 오른편으로 석조여래 입상의 위치를 알려주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석조여래입상 가는 길

이정표가 가르키는 방향으로 잠시 걸어들어가니 커다마한 바위 뒷편에 나즈막한 석조입상이 눈에 들어온다.

석조여래입상

안내문에 따르면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시대 초기 사이에 제작된 것이라 한다. 목 부분이 잘렸다가 다시 붙여졌고 팔도 떨어져 나간 듯 보이는 등 전체적으로 마모가 많이 되어 있어, 기나긴 세월의 두께를 느끼게 한다. 누군가가 좌우에 놓여 있는 화사한 조화가 웬지 어색해 보인다고 한다. 그러게! 불상에는 연꽃이 어울리는 데..

석조여래입상

오후 1시25분, 다시 앞에 보이는 봉우리(마당바위? 봉천대?)를 향하여 걸어올라간다.

마당바위 부근

5분 가량 걸어가 마당바위 위에 올라서니 사계가 툭 터지기에 동서남북을 조망한다.

마당바위(봉천대?)

남동쪽으로는 가야산 공룡능선인 듯 싶은 산줄기가 좌우로 뻗어가고 있다.

공룡능선?

남서쪽으로는 두개의 암봉이 보이고 그 너머로 희미하게 해인사 경내가 내려다 보인다.

암봉

되돌아서 북쪽을 바라보니.. 가야산 최고봉인 상왕봉이 희뿌연한 구름사이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상왕봉

오후 1시30분, 상왕봉을 향하여 암벽 사이길을 걸어간다. 우측 높다란 암벽 위에는 까마귀 한마리가 한가로이 앉아있다.

까마귀

좁다란 암벽 사이길을 넘어가다 보니 오른편 바위 틈에 하얀 잔설이 남아있다. 이곳만 해도 1,200m가 넘는 고지이다 보니 찬 기운이 아직 물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암벽 사잇길

잔설

오후 1시53분, 넓다란 암벽지대를 지난다. 그곳에 세워진 이정표는 앞에 보이는 상왕봉이 200m 남았음을 알려주고 있다.

상왕봉 직전의 암릉지대

점차 암벽으로 이루워진 상황봉 일대가 가까이 다가온다. 석화성(石火星)이라 했던가? 돌이 불꽃처럼 춤추는 별.. 그러한 별나라에 착륙한 것이다.

상왕봉

오후 2시00분, 상왕봉 정상을 100m 앞둔 평평한 지대에 당도하니 상왕봉 정상으로 이어지는 철계단이 눈에 들어온다.

상왕봉으로 이어지는 철계단

상왕봉 입구 왼편에는 베이지색 제복 차림의 남녀가 서 있다. 아마도 산림감시원인 듯 싶다. 그 뒷편으로 지나는 등산객을 통제하기 위해 서 있는 모양이다. "수고하세여~~"

산림감시원

철계단을 오른다.

상왕봉 철계단

2~3분만에 상왕봉 정상(1,430m)에 당도한다. (오후 2시05분) 정상에는 많은 등산객들이 정상석 주변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상왕봉 정상

정상에서 동쪽편으로는 가야산 제2봉인 칠불봉이 구름 사이로 봉우리를 내밀고 있다.

상왕봉 정상 일대

사람들이 한가한 틈을 타 한 산객에게 부탁하여 기념사진을 찍는다.

상왕봉 정상 - 청려장

정상에서 10여분 동안 머물다가 하산 직전 앞으로 가야하는 가야산 칠불봉을 다시 한번 바라본다. 짙은 구름 때문에 '돌이 불꽃처럼 춤추는 면모'를 제대로 느낄 수 없는 것이 다소 아쉽다.

운무에 휩싸인 칠불봉

o 상왕봉 → 칠불봉 오후 2시19분, 상왕봉 정상에서 내려와 왼편(동쪽)으로 발걸음을 돌려 칠불봉으로 향한다. 등로 주변엔 버들가지가 뽀송뽀송한 눈을 틔워놓고 있다.

버들가지

암릉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따라 10여분 걸어가니 백운동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가 나오고..

삼거리

그곳에서 직진하여 2분 가량 더 가니 칠불봉 정상(1,433m)이다. (오후 2시35분)

칠불봉 정상 - 청려장

이곳에 내려오는 전설에 따르면.. 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왕이 인도의 아유타국 공주 허왕옥과 결혼하여 10명의 왕자를 두었는데 큰 아들은 왕위를 계승하여 金氏의 시조가 되었고, 둘째 셋째는 엄마의 성을 따라 許氏의 시조가 되었고 나머지 7왕자는 허황후의 오빠인 장유화상을 스승으로 모시고 가야산 이곳에서 수도를 닦아 득도하여 생불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봉우리를 칠불봉이라고 한다. .. 칠불봉에서 앞서 지나온 가야산 상왕봉을 되돌아보니 희뿌연한 운무속에 실루엣만 보인다. 그 앞 삼거리엔 등산객들이 바글바글 서 있다.

되돌아보는 상왕봉

o 칠불봉 → 서성재 오후 2시40분, 칠불봉에서 내려와 삼거리로 되돌아 간다. 삼거리로 가던 중 왼편에 보이는 철계단이 아찔한 급경사에 걸쳐 있다. 하산지인 백운동으로 가려면 삼거리에서 저 철계단을 타고 내려가야한다.

삼거리로 오르는 철계단

오후 2시42분 삼거리에서 철계단을 타고 내려간다. 철계단 주변의 노송들이 세찬 바람에 시달려 온 듯 이리저리 구부러진 앙상한 나뭇가지를 하늘로 내젓고 있다.

하산

조금 더 내려가니 우리가 가야 하는 1346봉이 점차 시야에 가까워진다.

1346봉과 철계단

오후 2시52분, 1346봉에 올라선다. 바로 앞에 또다른 암봉이 하나 보이고 그 뒷편엔 서장대의 뾰족한 봉우리가 촉을 내밀고 있다.

1346봉 전방의 암봉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니 칠불봉이 구름 속에 우뚝 솟아있다.

되돌아보는 칠불봉

조금 더 전진하여 좀 전에 내려다 보았던 암봉 위에 올라선다. 싸들고 온 과일을 배낭에서 꺼내어 먹으면서 전방에 한층 가까이 보이는 공룡능선을 감상한다. 설악산의 공룡능선에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들쑥 날쑥 솟아있는 산능선이 공룡의 등줄기를 연상케 한다.

공룡능선

다시 하산한다. 커다마한 바위가 서 있는 공터에서 등산로는 오른쪽으로 휘어진다.

공터

이어서 가야산성터를 지나고.. (오후 3시14분)

가야산성터

이제 등산로는 편안한 흙길이다.

흙길

그런데, 어느 숲 한 켠에 표피가 얇게 벗겨져 알록달록해진 나뭇가지가 눈에 띈다. 무슨 나무지? 당시에는 도통 정체를 모르겠었는데.. 최근에 길거리에서 저와 비슷한 형태로 표피가 벗어진 배롱나무를 보고선 저것이 혹시 같은 종류의 나무가 아녔었나 짐작해본다.

알록무늬 나무

오후 3시28분, 서성재 3거리에 당도한다. 이곳에서 직진하면.. 서장대를 넘어서 왼편으로는 만물상 능선, 오른편으로는 공룡능선으로 갈 수 있지만 현재는 산불방지기간이라서 입산이 금지되어 있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가면 해인사 방향의 마애불 계곡(극락골)로 갈 수 있지만 이곳도 자연보호를 위하여 아예 울타리를 치고선 진입을 막고 있다.

서성재 이정표 - 백운동 주차장 3.2km

o 서성재 → 백운동 서성재 3거리에서 왼편 백운동 방향으로 내려간다. 등산로는 조릿대가 우거진 숲 사이로 나무판으로 잘 단장되어 있다.

나무판 길

고도가 다소 낮아지니 얼레지 군락지가 다시 시작된다. 어느 얼레지는 꽃봉오리를 열지 않은 채 다소곳이 앉아 있다. 내일 아침 밝은 햇살을 받아 필 모양이다.

얼레지

오후 3시43분, 백운암지를 지난다. 그곳에 세워진 안내표지판에 따르면 이곳에서 약25m 가량의 석축과 계단지가 확인되었고, 조선시대의 기와조각과 도자기 조각이 나왔다고 하여 암지(庵地)로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백운암지

오후 4시06분, 용기골 계곡에 접하니 물소리가 숲속을 시원하게 적신다.

용기골 계곡

오후 4시17분, 백운3교를 지나고.. 오후 4시22분, 백운2교를 지나며 왼편 산능선을 올려다보니 제법 웅장한 암봉이 서 있다.

암봉

오후 4시27분, 백운1교를 지나니 진달래가 숲속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진달래

오후 4시37분 백운동 야영장에 도착한다.

백운동 야영장

그곳 화장실에 가다가.. 그 근처 화단에 할미꽃이 피어 있기에 열심히 아리따운 그 모습들을 사진기에 담는다.

할미꽃 1

할미꽃 2

할미꽃 3

오후 4시46분 백운교를 넘는다.

백운교

백운교 너머 매표소 건물 앞에 세워진 조감도를 보면서 오늘 지나온 길을 되짚어본다.

조감도

오후 4시51분, 가야산 관광호텔 앞을 지난다.

가야산 관광호텔

그곳으로부터 200미터 가량 내려가 백운동 주차장에 당도한다. 산행 끝! ☆ 지나온 길 총 산행거리는 10.0km, 산행시간은 7시간 00분 소요되었다.

산행 개념도

☆ 쫑 시인이며 구도자였던 고은선생의 "산 길"이라는 시를 읊으며 가야산 숲 속으로 사라지던 한 스님의 뒷모습을 더듬어본다. "이상하다 언제나 나의 산길에는  누가 조금 전에 간 자취가 있다  이 산길은 간조(干潮) 바다까지 보다 멀고  먼 예리고* 고개까지도 닿아 있다  비록 다른 길이 있을지라도  나는 이 산길을 버릴 수 없구나  왜냐하면 여기서 누구인가 낯선 면모(面貌)를 만날테니까..." * 예리고: 요단강에서 5마일 떨어진 땅. 어의(語義)는 향기를 뜻함

가야산 숲 길 [클릭☞확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