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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일반산

산행기 - 거창/김천 수도산 (2011.7.23)

by 청려장 2011. 8. 18.

"산행기 - 김천 수도산(1,317m)"

top image 1 - 양각산, 수도산, 단지봉 [조망처: 흰대미산]

top image 2 - 양각산, 흰대미산, 보해산, 금귀산 [조망처: 시코봉]

o 일시: 2011.7.23(土) 09:07~15:25 (총 6시간 18분) o 날씨: 흐림 21.9℃~30.9℃ (경남 거창/경북 김천) o 코스: 심방마을→흰대미산→양각산→시코봉→수도산→청암사 o 거리: 13.4km o 참석: 대전한마음토요산악회 34명 ☆ Time Table :
시 각 구 간 거 리 시 간 속 도
09:07~10:03 심방마을→흰대미산 1.5km 0:56' 37'20"/km
09:07  심방마을(이정표 - 흰대미산 1.5km)
09:11  산길입구(이정표 - 흰대미산 1.3km)
09:38  주등로 진입
09:42  무덤(청도김公)
09:57  능선 진입
10:03  흰대미산(흰덤이산, 1,018m) [조망 4분]
10:07~11:14 흰대미산→양각산 1.9km 1:07' 35'15"/km
10:07  흰대미산
10:24  삼거리(흰대미산 0.9km, 심방 1.4km, 양각산 1.0km)
10:54  물고기바위
11:01  양각산좌봉(흰대미산 1.5km, 약수암 2.8km, 양각산 0.4km)
11:14  양각산(1,150m)(흰대미산 1.9km, 수도산 3.5km) [휴식 2분]
11:16~13:21 양각산→수도산 3.5km 2:05'/1:44' 29'42"/km (중식 제외)
11:16  양각산
11:31  갈림길(양각산 0.4km, 어인 3.2km, 수도산 3.1km)
12:06  시코봉(1,237m)(양각산 1.7km, 우두령 4.1km, 수도산 1.7km)
12:12  갈림길(양각산 2.0km, 심방 3.8km, 수도산 1.4km)
12:44~13:05  능선 안부 [중식 21분]
13:14  신선봉(서봉)(이정표 - 수도산 0.2km)
13:21  수도산(1,317m) [조망&촬영 9분]
13:30~15:25 수도산→청암사 6.14km 1:55' 18'43"/km
13:30  수도산
13:32  단지봉 갈림길(수도산 70m, 단지봉 4.5km)
14:03  내리막 능선 공터 [휴식 5분]
14:09  수도암 갈림길1(수도산 정상 1.79km, 수도암 0.70km, 청암사 4.35km)
14:20  수도암 갈림길2(수도산 정상 2.37km, 수도암 0.88km, 청암사 3.77km)
15:12  감자밭
15:25  청암사
종 합 09:07~15:25 13.04km 6:18' 28'59"/km (2.07km/hr)
※ 지체시간: 총 0시간41분 (중식 21분, 휴식&조망 20분) ☆ 산행코스

산행 개념도1

산행 개념도2

◎ 등반 메모 ◎
o Intro.. 수도산엘 간다. 지난 겨울에 가보았던 수도암과 청암사. 아름다운 그 절집들을 품고 있는 곳이기 함 오르고 싶었던 산이고.. 또한 중부지역에서는 조망이 매우 수려하다고 소문이 난 곳이기에 찾아가고 싶었던 산이다.
수도산(1,317m), 양각산(1,150m), 흰대미산(1,016m)

수도산(修道山·1,317m)은 가야산 북서쪽 경북 김천과 경남 거창의 경계에 우뚝 솟은 산으로 불령산·선령산이라고도 불린다. 산 이름은 신라말기 참선 수도장으로 유명한 수도암을 품고 있어 붙여졌으며, 산기슭에는 비구니 승가대학이 있는 청암사가 자리잡고 있다. 평균 고도 1,200m 고원에 수림과 초원, 바위길이 어우러진 산능선을 걷다보면 동쪽으로는 가야산 단지봉·독용산 형제봉, 서쪽으로는 삼봉산·덕유산·봉산, 남쪽으로는 보해산·금귀산·매화산·금기산·오두산·기백산·금원산, 멀리 지리산 천왕봉·반야봉, 북쪽으로는 월매산·삼방산·삼악산·민주지산 등을 관측할 수 있을 정도로 조망이 수려한 산이다.

양각산(兩角山·1,150m)은 수도산 남쪽에 솟은 봉우리로 일명 쇠뿔산이다. 소의 양쪽 뿔을 연상케 하는 두 개의 봉우리 형태에서 이름이 비롯된 것으로 추정되며, 쇠머리고개를 뜻하는 우두령 (牛頭嶺), 소의 밥그릇인 구유(구시)를 상징하는 구수(口水) 마을, 쇠불알(우랑)을 뜻하는 우량동(牛郞洞) 마을 등과 같은 인근 지명도 이 산의 소 형태와 관련된 것이다.

흰대미산(1,016m)은 양각산 남쪽에 솟은 봉우리로서 흰덤이산, 백석산(白石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 이름들은 모두 산 정상의 하얀 바위 때문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산경도

o 이동
오전 7시 정각, 평송에서 출발..
최근 잠이 많이 부족했던 바, 버스 이동 중 곤하게 잠에 떨어진다.
그 사이 청림버스가 지나갔을 법한 경로를 'daum 지도'를 통해 추정해본다.
대전 IC에서 경부고속국도로 타고 남진하다 대진고속국도에 진입하여 다시 남진..
무주 IC에서 고속국도를 빠져나와 19번국도를 타고 무주 적상면으로 남진하다가 적상산을 왼편에 끼고 49번 지방도를 타고 동진..
무주군 설천면에서 37번국도를 타고 덕유산 동편으로 넘어선 뒤 거창군 고제면에서 남진..
거창군 주상면에서 1089 지방도로 갈아탄 후 동진하다가 북쪽으로 방향을 바꿔 전진..
이후 1099번지방도를 만나 계속 북진하여 거창군 가북면 중촌리에 이르렀으리라..

버스 이동경로 (추정)

오전 8시55분, 심방마을에 도착한다.

심방마을 표석

마을 뒷편에는 오늘 코스 중 두 번째 봉우리인 양각산이 하얀 암벽을 드러내며 솟아있다.

심방마을과 양각산

각자 산행채비를 마친 후, 모두 모여 단체사진을 찍는다.

단체사진

o 심방마을 → 흰대미산 오전 09시07분, 산행을 개시한다. 선두는 No.3 대장, 후미는 내가 맡았다. 들머리는 정자나무와 간이화장실 사이로 열려있다. 날씨는 다소 흐리지만 적당히 선선한 바람이 불어 산행하기엔 딱 좋은 듯 싶다.

마을 정자

모든 회원들을 앞세운 뒤 조금 쫓아가니 산길 입구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그 이정표는 흰대미산이 1.3km 남았음을 알려준다.

산길 입구

숲속에 들어서니 각종 식생들이 풍부하다.

숲 속

머리를 숙이고 있는 노란 짚신나물..

짚신나물

하얀 헛꽃으로 치장한 보라빛 산수국..

산수국

꽃말이 '기다림'이라는 여로..

여로

그리고 동자꽃.. 옛날 깊은 산속 스님을 기다리던 동자승이 배고픔과 추위에 떨다가 얼어죽은 자리에서 피어났다하여 지어진 이름이라는데.. 그래서 동자꽃은 산밑을 바라보며 피며, 동자승의 밝그레한 볼을 연상시키는 색깔로 꽃이 핀다고 한다.

동자꽃

소나무와 떡깔나무가 울울창창한 숲속. 등로가 매우 가파르게 이어진다.

숲길

등로는 솔잎이 수북히 쌓여 있어 제법 폭신하다.

주등로

오전 9시42분, 봉분이 나즈막한 묘에 이른다. 묘비석이 보통의 것과 다르게 한글로만 되어 있다.

청도 김공 묘

그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되돌아서서 남동방향을 바라보니 소나무 사이로 흐릿한 산자락이 하늘금을 긋고 있다. 대략 방향을 따져보니 거창 가조면을 둘러싸고 있는 산자락의 일부인 듯 싶다. 그곳에 미녀산, 숙성산, 오도산 등등이 있음을 기억하고 있기에 혹시나 하고 짜맞춰보지만 잘 모르겠다. 나중에 구글로 확인해보니 그들이 아니었다.

남동쪽 조망 - 거창의 산자락

그런데 천지인님이 몸 콘디숀이 좋지 않은가 보다. 더 이상 산행을 못하겠다고 하신다. 후미대장을 맡은 처지이다 보니 당황스러워 조금 더 쉬었다가 천천히 움직이자고 해보지만, 자신이 자신의 몸 상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만 하산해야겠다고 하신다. 그러고 보니 얼굴이 창백하다. 결국 천지인님은 그곳에서 하산한다. 우리를 심방마을에 태워주었던 청림버스는 이미 청암사쪽으로 떠나고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천지인이 홀로 마을에 내려간 뒤 지역버스를 타고선 청암사로 이동해야 할 것이다. 잘 가실 수 있으련지.. 걱정이 앞서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인지라, 천지인님의 뒷모습을 한 동안 바라보다가 다시 정상을 향하여 전진한다. 오전 09시57분, 커다마한 바위 앞에 다가선다. 이제 남쪽 박유산, 금귀산, 보해산 등으로부터 수도산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에 들어선 듯 싶다.

주능선 바위

암장 슬랩을 타고 오르니..

암장

북쪽으로 앞으로 가야할 양각산, 시코봉, 수도산 등으로 이어지는 산능선이 모습을 드러낸다.

북쪽 조망 - 양각산, 시코봉, 수도산, 구곡령, 수자골

수도산 우측으로는 구곡령 너머 단지봉이 꽤나 긴 산자락을 거느리며 자리잡고 있다. 저곳이 백두대간 대덕산에서 갈려나와 수도산과 단지봉을 지나 비계산과 오도산을 거쳐 합천 성산까지 이어지는 수도지맥의 일부이다.

북-동-남쪽 조망(파노라마) - 양각산, 수도산, 구곡령, 단지봉

남동쪽을 바라보면 거창군 가북면 중촌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그 마을을 등지고 있는 산능선 너머로 거창 별유산으로 추정되는 봉우리가 보이고 그 우측편의 봉우리들은 아까 묘소앞에서 바라보이던 봉우리인데 이름은 잘 모르겠다.

거창군 가북면 산자락

정남방향으로는 산자락으로 둘러쌓인 분지형태의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지도를 짚어보니 웅양면 우량동 마을이다. 가까운 곳엔 '금광(金光)마을'도 있다. 예전부터 이 부근에 금이 많이 나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그러고보니 우측 산자락에 하얀 생채기가 있다. 그러한 유래와 관련있는 광산이 아닐까 추정해본다.

거창군 웅양면 우량동 마을

조망을 마치고 암능을 따라 북쪽으로 전진하여..

흰대미산 정상 직전

오전 10시03분, 흰대미산 정상에 이른다. 정상석에는 '흰대미산'이 아닌 '흰덤이산(白石山)'이라 쓰여 있다. 누군가의 분석에 따르면, 흰돌더미를 뜻하는 '흰덤이'가 흰더미를 거쳐 흰대미로 변한 것이라 한다. 공감이 가는 분석이다.

흰대미산(흰덤이산, 백석산, 1,018m)

정상석 너머 북쪽으로 양각산과 수도산이 긋는 산능선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북쪽 조망 - 양각산, 수도산, 구곡령, 단지봉

서쪽으로는 거창군 웅양면 산포리(山圃里) 일대의 마을이 구름 아래로 흐릿하게 내려보인다. 산포리(山圃里)는 예전엔 산과 물이 좋아 '산수동(山水洞)'이라 불렀었다고 한다. 그리고 본래엔 사(史)씨와 탁(卓)씨 등 두 성씨들이 살던 터전이었으나 1795년에 청산 현감(靑山縣監)을 지낸 연안 이지순(延安 李之淳)이 옮겨 살기 시작하여 연안이씨의 집성촌이 되었다고 한다.

동쪽 조망 - 거창 웅양면 산포리 일대

o 흰대미산 → 양각산 오전 10시07분, 산행을 재개한다. 모든 회원을 앞서 보냈기에 호젓한 등로를 홀로 걷는다.

신갈나무 숲길

오전 10시24분, 심방 갈림길을 지난다. 심방마을에서 이쪽으로 올라오면 흰대미산을 우회하여 양각산으로 직접 오를 수 있다. 이곳에서 양각산까지는 1.0km 남아있음을 이정표가 알려주고 있다.

심방 갈림길

등로는 암릉으로 이어지지만 그 주변은 울창한 숲이다.

숲속의 회원들

전방엔 양각산의 두 봉우리가 가까이 다가온다. 양각산(兩角山)은 두 봉우리가 소뿔의 형태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며, 앞에 있는 봉우리가 남봉(혹은 서봉)이고 우측에 보이는 봉우리가 주봉이다.

양각산

그렇게 홀로 전진하다가 앞서 가던 회원들을 만난다. 등로 한쪽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휴식 중인 회원들

그곳에서 조금 더 전진하다가 묘한 모양의 바위를 만난다. 어느 산행기에선가 이것을 물고기바위라고 이름지어 놓은 것이 기억난다.

물고기 바위(토끼바위)

그런데, 현지에서 바라보니 내 눈에는 토끼 형상만이 그려진다. 왼편에 눈, 귀, 코, 입이 뚜렷한 얼굴, 오른편에 두 다리를 오르리고 웅크리고 있는 몸통.. 옆에 있던 회원들도 그럴싸하다며 내 말에 동의하기에, 내 맘대로 걍~ 토끼바위라고 명명해 버린다. *^^*

토끼 바위

오전 11시01분, 양각산의 남봉(서봉)을 지난다.

이정표 - 양각산 0.4km

남봉으로부터 양각산 정상은 400m 떨어져 있다. 양각선 뒷편에 앞으로 가야하는 시코봉과 수도산이 안개속에서 하늘금을 긋고 있다.

양각산, 시코봉, 수도산

이후 이동 중에 만난 야생화.. 하늘말나리, 바위채송화, 난쟁이바위솔.. 화사하고 귀엽고 깜찍하다.

하늘말나리

바위채송화

난장이바위솔

양각산 정상에 다가갈 즈음 되돌아 보니 흰대미산이 어느덧 저만치 물러나 있다.

양각산 남봉(좌봉), 흰대미산, 불영산

흰대미산 남쪽으로 거창 보해산이 드디어 희미하나마 윤각을 드러낸다. 날씨가 좋으면 이곳에서 보해산과 그 뒷편 금귀산의 윤곽을 뚜렷히 볼 수 있을 텐데, 오늘은 날이 워낙 흐리기 때문에 애당초 그런 눈호강을 버렸다.

흰대미산, 보해산

오전 11시14분, 양각산 정상(1,150m)에 이른다.

양각산 정상 - 후미일행

양각산 정상석 옆에는 양각산 유래비가 세워져 있다.

양각산 정상석

그곳에서 북쪽을 바라보니, 앞으로 가야하는 시코봉과 수도산이 좀 더 가까이 다가와 있다.

시코봉, 수도산

남쪽을 내려다보니 흰대미산으로부터 보해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왼편으로 거창군 가북면 일대의 마을과 그 가운데를 지나가는 1099번 지방도가 내려다보인다. 가까이에 있는 마을이 우리가 산행을 시작한 심방마을, 조금 뒷편에 있는 마을이 중촌마을인 듯 싶다.

심방마을과 중촌마을 - 흰대미산, 불영산, 보해산

그 즈음 천지인님에게 전화를 해보니.. 심방마을에 내려간 뒤 버스가 없기에 천천히 걸어서 저 멀리 중촌마을로 가고 있다고 한다. 그곳에 가서 버스를 타고 거창읍으로 나가면, 김천 청담사로 가는 버스가 있다고 마을 사람들이 알려줬다고 한다. 암튼, 아무 이상 없이 하산하여 이동하고 있다고 하시니 다행이다. o 양각산 → 수도산 오전 11시16분, 수도산을 향하여 다시 출발한다.

양각산 이정표

좌전방에 월매산이 보인다. 수도산에서 북서방향으로 뻗어오른 봉우리다. 시코봉에서 왼편(동쪽)으로 뻗어가는 능선은 우두령으로 향하는데, 그 능선이 수도지맥의 일부로서 경북 김천과 경남 거창을 경계짓는다.

시코봉, 수도산, 월매산

시코봉에서 북쪽 수도산과 동쪽 단지봉을 잇는 능선도 경북과 경남 사이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시코봉, 수도산

이후 완만하고 편안한 숲길을 여유로이 걷는다.

숲길

오전 11시31분, 어인동 마을로 가는 갈림길을 통과한다.

어인동 마을 갈림길

이후 등로는 암릉으로 이어진다.

암릉

잠시 뒤돌아보니 지나온 양각산이 저 만치서 뾰족한 뿔을 세우고 있다. 멀리 보해산과 금귀산도 희미하나마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양각산, 보해산, 금귀산

그 부근 암장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후미일행. 오늘따라 힘겨워 하는 그네들이 충분히 회복할 때까지 대기..

휴식 중인 후미일행

오후 12시06분, 우두령 이정표를 지난다. 별도 표지석은 없지만, 이곳이 시코봉 정상(1,237m)일 것이다. 시코봉은 소의 코처럼 생겼다해서 '소코봉'으로 불리다가 '시코봉'으로 변이된 것이라 한다.

우두령 이정표

백두대간상의 대덕산에서 분기한 수도지맥은 왼편 우두령을 거쳐서 이곳 시코봉, 북쪽 수도산, 그리고 동쪽 단지봉으로 이어진다.

지도 - 수도지맥

북동방향이던 등로는 시코봉으로부터 동쪽으로 꺾인다. 5분 가량 전진하다 남쪽을 돌아다보니, 어느덧 양각산과 흰대미산이 아련해진다.

양각산, 흰대미산, 불영산, 보해산

멀리 중촌리 너머로 거창 가조면의 보해산과 금귀산은 보일 듯 말 듯한 윤곽만 보여준다.

보해산, 금귀산, 중촌리

오후 12시12분, 갈림길에 이른다. 이곳에서 등로가 다시 북동방향으로 꺾여서 수도산으로 향한다.

심방 갈림길

15분 가량 전진하니 수도산의 세 봉우리가 가까이 다가온다.

수도산

수도산 정상에서 남동쪽으로 뻗어가는 수도지맥은 단지봉에 이르러 북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좌일곡령으로 향한다. 날씨가 좋으면 좌일곡령 너머로 가야산의 돌불꽃인 상황봉이 관측될 텐데.. 오늘은 언감생심이다.

단지봉, 좌일곡령

계속해서 전진하다 만난 솔나리.. 고고한 자태로 신비롭고 귀티나게 발광하여 지나는 산객을 매혹시키고 있다.

솔나리

오후 12시44분, 등로 한켠에 자리잡고 식사를 하고 있는 회원들을 만난다. 당초 수도산 정상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지만, 시간이 많이 지체된 관계로 이곳에 그냥 자리를 잡은 모양이다. 하긴 숲속에서는 제 때에 식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허기를 참아가며 산행하는 것이 체력안배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식사시간.. 오늘도 밥과 반찬을 빌어먹었다. 참으로 울 회원들은 맘씨가 좋다. *^^*

중식

오후 1시05분, 맛 좋은 식사를 마치고 다시 산행 개시.. 얼마 가지 않아서 만난 괴목. 생채기 때문에 언젠가 성장이 멈춘 모양인데, 꼭 주먹을 쥐고 있는 손과 같다.

괴목

자연은.. 이렇듯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다간 저렇듯 묘한 형상도 빚어낸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가 아름답다.

하늘말나리

각시원추리

운무는 점차 짙어지고.. 그 속을 조금 더 걷다보니..

수도산 정상직전 능선

오후 1시21분, 수도산 정상(1,317m)에 이른다.

수도산 정상(1,321m)

정상석 뒤편의 돌탑이 제법 운치 있다.

수도산 정상석과 돌탑

수도산 정상 - 청려장

o 수도산 → 청암사 오후 1시30분, 산행을 재개한다. 동쪽 능선을 따라 2분 가량 전진하니 이정표가 나온다. 그 이정표는 청암사 방향을 가르키지 않고 있기 때문에 단지봉의 왼편 길, 즉 수도산의 반대방향으로 길을 잡아야 청암사로 갈 수 있다.

단지봉 갈림길 이정표

이제 계속해서 내리막 길이 이어진다.

하산 길

숲길

오후 2시20분, 수도암 갈림길을 지난다.

수도암 갈림길(하산 방향)

문득 수도암 방향을 되돌아보니, 지난 겨울에 갔던 고즈넉한 절집이 생각난다. 그 절집 어디엔가 등산로 이정표가 세워져있었는데, 저 길끝이 그곳으로 이어지리라 짐작된다. 그 너머로 남아있는 기억의 편린(片鱗)들이 문득 떠올라 맘 속으로 명멸한다. 아쉽고.. 답답하고.. 허전하고..

수도암 갈림길(되돌아보는 방향)

등로가 고도를 제법 많이 낮춘 모양이다. 내리막 경사가 한층 완만해진 등로에 들어선다.

등로

커다마한 가지를 손바닥처럼 펼치고 있는 괴목을 지나고..

괴목

숲을 벗어나니 감자밭이 나온다.(오후 3시12분)

감자밭

수확이 끝난 듯한 밭에는 아직도 먹을 수 있을 듯한 감자들이 여기저기 놓여있다. 청솔형님 왈, "저거 하나라도 주워가다 걸리면, 돈을 왕창 물어내야 할꺼여.." 밭 주인이 지금은 방치해 놓았지만 조만간 수거해 갈 것이라는 말씀이다. 글쿤유..

감자

곧이어 임도를 따라 내려 가다보니..

청암사 가는 길

길가에 풍접초가 보인다. 어느 분이 '이거 족두리꽃이다'라고 하기에 내가 극구 그게 아니라고 우겼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저 풍접초의 한국 이름이 족두리꽃이였다. 끙~ 아는 척 했다가.. 쪽 다 깠다. -.-;;

풍접초(족두리꽃)

이윽고 백련암 입구를 지난다.

백련암 입구

그 입구에 세워진 조감도를 보며 수도산 정상으로부터 지나온 경로를 되짚어본다.

수도산 조감도

o 청암사 → 주차장 오후 3시25분, 청암사 경내에 들어선다.

청암사 안내

청암사 가람배치

청암사는 직지사와 함께 김천을 대표하는 절로서 신라 헌안왕 3년에 도선이 처음 설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비구니 승가대학이 설치되어 있으며, 조선 숙종의 두 번째 부인인 인현왕후가 한 동안 기거하던 곳으로 유명하다.
청암사(靑巖寺) (소재지 : 경북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

청암사(靑巖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사찰이다. 불령산 북쪽 기슭인 증산면 평촌리에 있으며 조계종 제8교구의 직지사 소속 말사로 편성되어 있다. 직지사와 함께 김천을 대표하는 절이다. 대웅전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20호로 지정되어 있고, 대웅전 앞 다층석탑도 경북 문화재자료 제121호이다.

신라 헌안왕 3년인 859년에 도선이 처음 설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오랫동안 연혁이 전해지지 않다가 조선 시대에 다시 기록에 등장한다. 조선 숙종의 두 번째 부인인 인현왕후가 궁에서 쫓겨났을 때 이곳에 기거한 일이 있어 인현왕후 복위 이후 조선 왕실과 밀접한 관련을 맺었다. 불령산은 국가보호림으로 지정되었고, 조선 말기까지 상궁들이 내려와 불공을 드리고 시주하기도 했다.

인조 25년과 정조 3년에 각각 화재로 전소되는 피해를 입었으나 재건되었다. 1897년에 폐사되었다가, 1900년대 초에 극락전을 복원하면서 다시 문을 열었다. 1911년에 화재로 또다시 소실되어 이듬해 주지인 대운(大雲)이 복구했다. 일제 강점기에 박한영이 머물며 강론하는 등 불교 강원으로 맥이 이어졌다. 1987년에 청암사 승가대학이라는 이름으로 비구니 강원이 설치되었다.

- 출처: 위키백과 (http://enc.daum.net/dic100)


청암사 승가대학 (사진출처: "청암", 2008년8월호)

지지난해 겨울. 이곳에 왔으나 둘러보지 못했던 극락전을 찾아가본다.

극락전

300여전 전 인현왕후가 장희빈의 모략에 의해 궁에서 쫓겨난 후 이곳에서 기거하였다고 한다. 궁을 떠나야 했던 폐비. 툇마루에 앉아 물끄러미 무색 단청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을 상상해 본다. 억울하고 비감했으리라..

극락전 내부

극락전 마당 한켠에 화분이 놓여 있다. 이름 모를 빨간 꽃과 노란 꽃도 이쁘지만..

화분

그 뒷편에 하얗게 핀 난초가 시선을 끈다. 해오라비 난초다. 해오라비는 '해오라기'의 방언으로 왜가리과의 새를 말한다. 양쪽으로 활짝 펼치고 있는 꽃잎이 하늘을 날고 있는 왜가리의 날개같아 신기하다.

해오라비 난초

해오라비 난초

극락전을 빠져나와 옆 건물인 보광전으로 들어선다.

보광전

보광전 안내

이곳은 폐비 인현왕후가 극락전에 은거하던 중 복위(復位)를 빌기 위해 지어진 불전, 즉 인현왕후의 복위원당(復位願堂)이라 한다. 이 보광전 안에는 42수 관음보살을 모시고 있다. 관음보살께서 수많은 중생의 각 가지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는 42개의 손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42수 관음보살

보광전을 빠져나와 대웅전쪽으로 향한다. 대웅전은 극락교 건너편의 큰 마당에 자리잡고 있으며 지붕에 푸른 기와를 얹고 있다.

대웅전 - 푸른 기와

대웅전 마당에는 다소 균형미가 떨어지는 다층석탑이 있다. 대웅전 불단에는 협시보살 없는 한 불상이 결가부좌하고 있다. 머리에 녹색 띠를 두르고 있는 것으로 같아 지장보살인가 싶었는데,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 청나라 말기 중국 불상의 특징을 갖고 있는 석가모니불이라 한다.

다층석탑

대웅전

대웅전을 빠져나와 범종각 앞을 지나고..

범종각

사천왕문쪽으로 나가다가 만나는 암벽.. 수많은 이름들이 적혀 있지만 가운데 빨간색으로 쓰여진 이름이 가장 눈길을 끈다. "최송설당" 그녀는 조선조 마지막 궁중여류시인이자, 김천 중고교 설립자이다. 김천에서는 '고부할매'로 통하며, 청암사 중건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라 한다.

최송설당

조선조 마지막 궁중여류시인 최송설당(崔松雪堂, 1855-1939)

김천 중ㆍ고교 설립자인 최송설당을 경북 김천에서는 '고부할매'로 지금도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전라도 고부 출신 할머니라는 뜻이다.

1855년(철종 6년) 금산군(金山郡. 경북 김천)에서 홍경래의 난에 멸문이 되다시피 몰락한 화순 최씨 사대부 집안에서 아들 없이 세 딸 중 장녀로 태어난 최송설당은 집안을 일으키고, 억울하게 죽은 조상의 원한을 풀고자 절치 부심했다.

그가 1912년 8월에 쓴 "송설당서"(松雪堂序)에 의하면 이 때문에 결혼까지 하지 않았다고 한다. "내 나이 28세가 가까워지자 (집안에서) 바야흐로 혼인을 시키자는 의논을 할 때 내가 맹세하며 말하기를 '한번 남에게 내 몸을 맡긴다면 친정 일을 돌볼 겨를이 없을 것이니 결코 내 뜻을 따라 시집가지 않겠노라'고 했다." 이후 "악착스런 비둘기처럼 재산을 모으고 모으기"를 수십 년 동안 해서 마침내 "광무 5년(1901) 신축년 겨울에 하늘에 태양이 두루 비춰주심을 받고는 옛날의 원통 함을 시원하게 씻음으로써 따뜻한 봄날을 다시 보게 되었다"고 하고 있다.

1894년 고향 김천에서 상경한 최송설당은 고종의 계비(繼妃)인 엄비(嚴妃)와 가까워지고, 때마침 1897년 그가 황태자 이은(李垠.영친왕)을 낳자 입궐해 그의 보모 가 되었으며, 이를 발판으로 마침내 몰적(沒籍) 89년만에 집안을 복권시켰다.

말년에 전재산을 쾌척해 1931년 김천고등보통학교(현 김천중고교)를 설립하게 되는 이 여인은 58세 때인 1912년 8월 경성 무교동(현재의 코오롱빌딩 자리)에 저택을 설립하고는 당호(堂號)를 송설당(松雪堂)이라 했다. 송설당은 68세때인 1922년, 당시까지 쓴 한시 167제 285수와 국문가사 50편 및 제문 등을 묶어 '최송설당문집'(3권3책)을 간행한다. 이 문집은 거의 주목받지 못하다가 최근에야 학계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 저작권자(c)연합뉴스 (2004.6.17)

최송설당

그곳에서 조금 내려오면 우비천(牛鼻泉)이 있다.
청암사는 소가 왼쪽으로 드러 누운듯한 형태의 터위에 지어졌고, 이 샘은 소의 코에 해당하는 곳에 있다 한다.
그래서 이 샘을 우비천(牛鼻泉)이라 하며, 한 모금 마시면 부자가 된다는 설이 있다 한다.

우비천(牛鼻泉)

한 모금 마신 뒤, 사천왕문을 빠져나간다.

사천왕문 - 청려장 [촬영: 네팔사랑님]

사천왕문 밖

청림버스가 후미일행을 위해 일주문까지 올라오고 있다는 선두대장(No.3)의 연락을 받고선 일주문 앞에서 10여분간 기다려도 버스가 나타나지 않는다. 다시 연락을 해보니 더 내려가 어느 식당 앞에서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진즉 그케 얘기할 것이지..

일주문

후미일행을 다시 모아서 포장도로를 따라 5분 가량 내려가니 청림관광 이사장님이 우리를 맞이하신다.

후미일행

청림버스

☆ 산행궤적 오후 3시25분, 청림사에 도착함으로써 수도산 산행을 마쳤다. 총 산행거리는 13.04km, 산행시간은 중식 및 휴식시간(0시간41분)을 포함하여 총 6시간 18분 소요되었다.

구글 산행궤적1

구글 산행궤적2

산행고도표

☆ 쫑 난초가 깊은 골짜기에 피어있더라도 맑은 향기를 계속 품고 있다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