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 서울 인왕산 길"
북한산 전경
o 일시: 2009.5.28(木) 18:28 ~ 20:00 (총 1시간 32분)
o 날씨: 맑음
o 코스: 사직단→인왕산초소→자하문(창의문)→인왕산초소→사직단
o 거리: 4.8km
o 참석: 홀로
☆ Time Tab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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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각 |
구 간 |
거 리 |
시 간 |
속 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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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8~18:44 |
사직단→인왕산초소 |
0.6km |
0:16' |
26'40"/k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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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4~19:20 |
인왕산초소→창의문 |
1.8km |
0:36' |
20'00"/k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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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20:00 |
창의문→초소→사직단 |
2.4km |
0:30' |
12'30"/k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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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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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km |
1:32' |
19'10"/km (3.13km/h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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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코스
인왕산 개념도
◎ 산책 메모 ◎
o Intro..
인왕산은 서울의 어느 방향에서 오르든지 한 시간이면 오를 수 있고, 오르면 조망이 뛰어나다.
서울의 중심에 솟아 있고 높지는 않지만 산세는 웅장하다. 특히 동쪽 기슭이 아늑하고 풍치가 빼어나 장안 제일의 명승지었다.
인왕산은 조선이 한양 천도를 결정할 당시 무학대사가 이 산에 올라와 산중턱에 있는 선(禪)바위를 보고
인왕산을 주산으로하고 북악산과 목멱산(남산)을 좌우용호(左右龍虎)로 삼으려했으나 정도전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조선 개국 초기엔 서산(西山)이라 지칭하다가 세종 때부터 인왕산(仁王山)이라 부르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인왕(仁王)이란 '불법을 수호하는 금강신(金剛神)'의 이름이라 한다.
인왕산 자락에는 사직단(社稷壇)이 있는데, 이곳에는 땅을 지배하는 신(社)과 곡식을 관장하는 신(稷)을 모시고 있고
인근 북악산 자락에는 종묘(宗廟)가 있는데, 이곳에는 조선 왕조 역대 임금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이와 같이 이 두 산은 조선왕조 500년 동안 종묘사직을 품고 있어 조정으로부터 높이 숭상 받던 산인 것이다.
한편, 인왕산하면 호랑이와 얽힌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실제로 조선 초에는 이 산에 호랑이가 많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이 종종 경복궁 안이나 창덕궁 뒤뜰에까지 들어와서 소란을 피우기도 하여
조정에서 군대를 출동시키기도 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한다.
o 사직공원 → 전망대
핸드폰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니..
인왕산은 일요일과 월요일을 제외한 평일엔 등산이 가능하고
들머리는 사직공원 옆이며 정상까지 1시간 가량 소요된다고 나온다.
그런 정도라면 등산 차림이 아니더라도 산책하는 기분으로 다녀올 수 있을 듯 싶다.
교육이 다소 늦게 끝나서 오후 6시가 되어서야 밖으로 나선다.
전철을 타고 경복궁역에서 내려 사직공원 앞으로 간다.
사직공원 우측 골목 입구(배화여대 입구)에서 한 어르신께 등산로를 물어보니 상세하게 알려주신다.
오후 6시28분, 인왕산을 향하여 출발한다.
18:28, 배화여대 입구
골목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니 삼거리가 나오고
그곳에서 왼쪽 길로 가다보니 우측으로 꺽어지는 길 모퉁이에 종로도서관이 있다.
도서관 담장에는 빨간 장미가 화사하게 피어있다.
18:31, 종로도서관
도서관 담장을 우측에 두고 꺽어돌아 조금 더 전진하니 주차장 너머로 팔작지붕이 보인다.
그 어르신이 일러주신 활터(황악정)인 모양이다.
18:34, 황악정 입구
그런데, 팔작지붕 옆 정자 앞으로 올라가다보니 머리 위로 휙휙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난다.
가만 보니 지금 활을 쏘고 있는 모양인데, 사대는 팔작지붕 앞에 있고 표적은 주차장 뒷편에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화살이 내가 방금 지나온 인도 위를 지나 반대편으로 날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흐미..
고도차가 다소 난다고 하더라도 이렇듯 사람이 지나는 길 위로 활을 마구 쏘아도 되는 것인지 의아스럽고 걱정스럽다.
..
정자 우측편에 숲으로 향하는 길이 있고 그 입구에 등산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18:36, 등산로 입구
안내도를 잠시 살펴본 뒤 숲 속으로 들어선다.
등산 안내도
잘 단장된 등로를 따라 오르니 암반지대가 나오고 계속해서 조금 더 전진하니 테니스장이 나온다.
테니스장을 가로질러 나가니 등로가 차도 옆으로 이어지고
곧 이어 이정표가 나오는데 등산로는 길 건너편 초소쪽을 가르키고 있다.
초병에게 다가가 인왕산을 등반하러 왔는데 갈 수 있는지를 물어본다.
그런데 그로부터 등반이 불가하다는 답을 듣는다. 지금 등산로를 보수공사하고 있기 때문이라 한다. 흐미..
하필 오늘 보수공사를 하고 있는지 답답할 따름이지만 하소연 해봐야 소용 없을 것 같다.
그 진정한 내막이 혹 오늘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과 관련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보지만
어쨋거나 지금 중요한 것은 모처럼 맘 먹고 찾아온 인왕산을 등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쩔꺼나..
결국, 등반계획을 포기하고 우측 산책로를 따라 자하문까지 걷기로 한다.
이정표에 따르면 자하문은 이곳으로부터 1.8km 떨어진 곳에 있다.
18:44, 초소
근데, 자하문은 뭐지?
얼핏 어느 사극 중의 한 대사가 입에 가물거리기는 한데.. "이 놈을 자하문 밖으로 내치거라!"
아마 한양 땅을 둘러싸고 있는 성곽의 한 통문이리라..
완만한 오르막을 느긋하게 걸어가다 뒤돌아보니 차도 너머로 인왕산이 보인다.
18:52, 차도
오르막 마루에 올라서서 다시 되돌아보니
화강암 암반을 불쑥뿔쑥 돌출시킨 산등성이가 제법 맵시있게 뻗어가고 있다.
18:54, 인왕산
'낮으나 격이 높은 산'이라 하더니만 그 품격이 범상치 않아 보인다.
저 안에는 선바위, 해골바위, 범바위, 치마바위 등과 같은 기기묘묘한 바위가 있다던가?
인왕산 (자료사진)
길 우측 편에 전망이 좋은 듯 싶은 곳이 있기에 그곳으로 가니..
북악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푸른 기와집이 보인다.
18:56, 청와대
그 우측 편으로는 빼곡히 들어차 있는 건물들 사이로 경복궁이 자리잡고 있고
좀 더 우측편 서로 키재기를 하고 있는 고층 건물 너머로는 남산 서울탑이 여보라는 듯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18:56, 남산
남산 오른 편에는 관악산까지도 나 여기에 있소 하며 얼굴을 내민다.
18:56, 남산과 관악산
그곳에서 북쪽으로 좀 더 걸어올라가니 북악산이 가까이 다가온다.
19:01, 북악산
그 우측에는 청와대와 경복궁 건물이 다시 보인다.
청와대 옆에 있는 건물은 경복고등학교로서, 평준화 이전엔 이른바 '5대 공립' 중의 하나로 이름 날리던 명문교다.
이 학교는 일제 강점기인 1921년 경성 제2고등보통학교로 개교하였고,
이후 경복중학교를 거쳐 1953년 경복중·고등학교로 분리되었다가 1971년 중학교를 폐교하여,
2008년 현재 83회 졸업생을 배출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학교라고 한다. 음~ 근디 나의 모교보단 역사가 조금 짧군..
19:02, 청와대와 경복궁
암튼, 두 사진을 한데 모으니 바라던 그림이 그려진다.
북현무 북악산을 기대어 자리 잡은 경복궁(慶福宮)..
'새 왕조가 큰 복을 누려 번영하기'를 바라는 뜻으로 개국공신 정도전이 이름 지었다고 하던가?
이제는 500년 영화가 쇠하여 북현무의 깊은 품을 푸른 기와집에 넘겨주고 있다.
북악산, 청와대, 경복궁
o 전망대 → 창의문(자하문)
계속해서 자하문을 향하여 걸어간다.
10분 가량 전진하니 산책로가 인왕산을 넘어온 산성과 만난다.
산성길을 따라 전진하니 전방에 북한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19:14, 북한산
나중에 지도를 펼쳐놓고 검토해보니
북한산(삼각산) 주능선상의 문수봉에서 분기해 내려온 비봉능선인 것으로 확인된다.
19:15, 북한산 비봉능선
조금 더 전진하여 소나무 앞 성곽까지 가니
북한산 주능선인 문수봉이 보이고 그곳으로부터 비봉·향로봉으로 뻗어가는 비봉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문수봉 우측에 뾰족히 솟은 봉우리는 북한산(삼각산)의 맥을 북악산으로 이어주는 보현봉이다.
19:16, 북한산 비봉능선
즉, 북한산 주능선상의 문수봉으로부터 분기한 보현봉이 그 맥을 형제봉을 거쳐 북악산으로 이어주는 것이다.
북한산, 보현봉, 형제봉 (자료사진)
성곽 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이내 기와지붕이 보인다.
그곳이 자하문인 모양이다.
19:17, 자하문
성곽은 좌우로 가로지르는 도로에서 잠시 단절되었다가 다시 건너편 산으로 이어지는 듯 싶다.
성곽을 내려와 도로를 건너 반대편으로 오르니 "彰義門" 현판이 걸려있는 문이 나온다.
19:20, 자하문(창의문)
성문안을 통과하니 안내문이 있기에 찬찬히 읽어본다.
「서울 성곽에는 동서남북에 4대문, 그 사이에 4소문을 두었는데
 창의문(彰義門)은 서대문과 북대문 사이의 북소문으로 '올바른 것을 드러나게 하다'는 뜻이 있다.
 그러나 창의문은 북소문으로 불린 적은 없었고 이곳 계곡의 이름을 빌어 자하문(紫霞門)이라는 별칭으로 불려왔다.
 태종 13년(1413)에는 풍수학자 최양선이
 "창의문과 숙정문은 경복궁의 양팔과 같으므로 길을 내어 지맥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건의한 것을 받아들여
 두 문을 닫고 소나무를 심어 통행을 금지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세종 4년(1422)에는 군인들의 출입 통로로 이용할 수 있게 했고,
 광해군 9년(1617)에는 궁궐 보수 작업 때 석재의 운반을 위하여 열어주도록 하였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당시에도 길 자체는 있었던 것 같다.
 이러한 창의문이 서울성곽의 문루로서 제구실을 하게 되는 것은 영조 17년(1741) 이곳을 수축할 때였다.
 당시 훈련대장 구성임이 "창의문은 인조반정(1623년) 때 의군이 진입한 곳이니 성문을 개수하면서 문루를 건축함이 좋을 것"이라고
 건의한 것이 받아들여져 비로소 세워지게 된 것이다.」
19:26, 창의문
가만 생각해보니 어제 공부했던 4소문 중의 하나인 창의문(북소문)이 바로 이 문루였던 것이다. 글쿤..
관련 자료를 찾다보니 창의문을 그려놓은 멋진 그림이 있기에 옮겨놓는다.
고개마루를 지키고 있는 것이 창의문이고 고개 너머 왼편에 있는 산이 인왕산인 듯 싶다.
전문가의 의견에 따르면 작가가 지금의 경복고 부근에서 그린 듯 하다고 한다.
[출처: 구룡초부님 블로그(http://blog.daum.net/robustus/12804658)] 그림: 창의문 (장동팔경첩), 작가: 겸재(謙齋) 정선(鄭敾), 소장: 국립박물관
차제에 서울 성곽과 관련한 자료를 좀 더 찾다가
경복궁을 둘러싸고 있는 산세와 지형이 잘 그려진 자료를 발견한다. (인터넷의 위력! 정말 지식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삼각산으로부터 뻗어내려온 산줄기가 북악산을 솟아 놓고
북악산을 중심으로 좌로는 낙산, 우로는 인왕산을 펼쳐놓았다. 그리고 맞은 편에는 목멱산이 남쪽을 지키고 있다.
그 테두리를 성곽이 둘러치고 있고 그 사이사이에 4대문과 4소문이 있고
그 가운데에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그리고 종묘와 사직이 자리하고 있다.
고지도 - 한양 (자료 편집)
o 창의문(자하문) → 사직공원
오후 7시30분, 왔던 길로 되돌아간다.
한양 성곽에 대한 현장학습을 얼떨결에 하게 되었지만 왠지 모를 뿌듯한 맘이 가슴에 남는다.
오후 7시53분, 황악정 뒷편에 있는 암반지대에 들어서니 어느새 남산타워에는 불이 들어와있다.
오후 8시00분, 출발지점이었던 사직공원 옆으로 복귀한다.
19:53, 남산
☆ 지나온 길
산책 경로
☆ 쫑
다음 기회가 오면 서울 성곽을 쭉 돌아보리라..
한양 성곽 (자료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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