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 강화도 마니산 (469m)"
마니산의 암릉
마니산 참성단
o 일시: 2008.5.31(土) 10:55 ~ 15:19 (총 4시간 24분)
o 날씨: 맑음 13.2℃ ~ 20.6℃ (경기도 강화)
o 코스: 정수사→469봉(정상)→참성단→303봉→석곡골관통도로→상봉→선수
o 거리: 9.8km
o 참석: 대전한마음토요산악회 45명
☆ 등산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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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각 |
구 간 |
거 리 |
시 간 |
속 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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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5~11:12 |
정수사 입구→정수사 |
1.0km |
0:17' |
17'00"/k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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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5  정수사 입구 (정수사까지 1km)
11:10  정수사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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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20  정수사 [관람 및 단체사진 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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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0~12:30 |
정수사→참성단 |
3.0km |
1:10' |
23'20"/k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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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0  정수사
11:28  안부 삼거리 (정상 1.6km)
12:04  주능선 삼거리 (참성단 1km, 정상 0.8km)
12:07  469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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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칠선녀교
12:22  참성단중수비
12:24  헬기장 [촬영 3분]
12:30  참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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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0~14:05 |
참성단→석곡골 관통도로 |
1.8km |
1:13' |
40'33"/km [중식시간 제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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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0  참성단
12:34  단군로 표지목 [계단길로 알바 3분]
12:43  나무계단
12:56~12:18  능선 전망바위 [점심식사 22분]
13:24  단군로 갈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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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5  303봉 (삼각점 423번)
13:48  상방리 갈림길 (선수 4.3km, 참성단 1.5km)
13:57  헬기장 (정상 1.7km)
14:05  석곡골 관통도로 [대기 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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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8~15:19 |
석곡골→선수 |
4.0km |
1:11' |
17'45"/k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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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5  석곡골 관통도로
14:12  일봉 [대기 2분]
14:37  헬기장
14:46  상봉(254.6m) (삼각점 311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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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4  북봉 [휴식 5분]
15:15  선수돈대
15:19  선수 (하산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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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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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km |
4:24' |
26'56"/km (2.22km/h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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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체시간: 총 46분 (중식 22분, 대기&알바&조망&휴식 24분)
☆ 산행코스
산행 개념도
◎ 등반 메모 ◎
o Intro..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인 강화도에는
고려산, 혈구산, 진강산, 마니산 등 400m 이상의 산 네개가 남북으로 일직선상에 솟아 있는데 그 중 제일 높은 산이 마니산이다.
이 마니산 정상에는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마련했다는 사적 136호 참성단(塹城壇)이 있다.
이 참성단은 단군왕검 재위 51년(BC 2,283년)에 운사(雲師)인 배달신(倍達臣)이 쌓았고,
이후 고려 공민왕, 조선 인조 및 숙종 때 각각 보수되어 현재 이른다고 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고구려, 신라, 백제의 여러 왕들도 이곳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으며
현재는 성역으로 보호되어 매년 개천절에 제전이 올려지며, 1953년 이후 전국체육대회의 성화를 점화하고 있다.
마니산(摩尼山)은 조선초기에 발간된 문헌인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태종실록>에
머리산, 우두머리산이라는 뜻의 마리산(摩利山) 또는 두악(頭嶽)으로 되어 있다.
강화도에서 '가장 높은 땅의 머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산 정상에 하늘에 제사하는 단이 있으니 우리나라의 머리라고 할 수도 있으리라..
마니산은 본래 고가도(古加島)라 하는 섬으로 바다 가운데 우뚝 솟아 있었던 것인데,
가릉포(嘉陵浦)와 선두포(船頭浦)에 둑을 쌓은 뒤로 육지가 되었다고 한다.
산 정상 부근의 주능선은 화강암으로 형성된 기암 절벽이 이어지고 있고
그 위에 올라서면 강화도와 서해의 작은섬, 넓은 김포벌판, 해안의 간척지와 염전 등을 조망할 수 있다.
산자락에는 조선 때부터 형성된 여러 촌락이 있는데
동록에는 고려분청사기 가마터가 발견된 사기리(沙기里)가 있고
서록에는 서해안을 마주 바라보고 있는 장화리가 있고
북록에는 마니산을 오르는 입구인 내리, 문산리, 상방리가 있고
남록에는 몽고의 침입을 받아 강화도로 천도한 고려 조정의 흥왕리 궁터가 있는 흥왕리가 있다.
아울러, 동쪽 산기슭에는
신라 선덕여왕 8년(639년)에 창건했다는 정수사와 함허대사(涵虛大師)가 수도하였다는 함허동천이 자리잡고 있다.
o 이동
밋쓸버스가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강화도로 향한다.
어느 휴게소를 지난 뒤 번개돌이 총무님이 호두과자를 회원들께 하나 씩 나눠주더니
호두과자를 담았던 빈 봉투를 들고선 마술 도우미를 부른다. "눈꽃 이리 나오시오! 냉큼 나오시오!"
눈꽃 도우미가 빈 봉투임을 확인한 후
번개 마술사가 무어라 무어라 중얼거리며 그 빈 봉투에 손을 넣더니만..
그의 손에서 무언가가 딸려나온다. 제법 큰 인형상자가 그 빈 봉투에서 나온 것이다. 으와~~~
번총님의 마술쇼
이후에도 번개 마술사께서는..
무늬 없는 카드가 하트 무늬로 변하게 하는 마술을 보여주어 회원들을 즐겁게 해준다.
그 동안 그의 걸죽한 입담 때문에 많이도 포복절도하였는데, 이제 신비한 손재주까지 장착하였으니..
앞으로 우리들의 산행길은 환상과 경탄이 가미된 즐거움으로 가득차리라.. *^^*
오전 10시50분, 정수사 입구에서 하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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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사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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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사 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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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정수사입구 → 정수사
오전 10시55분, 정수사에서 단체사진을 찍기로 하고 막바로 정수사로 향한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완만한 오르막 길엔 나무 그늘이 간간이 드리워져 있지만 아침공기가 선선하여 발걸음이 편안하다.
선두대장은 나, 중간대장은 차돌이님, 후미대장은 산수가 맡아 회원들을 이끌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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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사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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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사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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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10분, 삼거리에 접한다.
직진은 등산로로 진입하는 길이고, 오른 쪽은 정수사 경내로 들어서는 길이다.
입구에 세워진 정수사 안내표지판을 잠시 읽어본다.
정수사(淨水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로 조계종의 말사로서
신라 선덕여왕(639년) 회정대사가 마니산에 올라 참성단에 참배하고
하산 길에 지금의 이자리를 보고 불제자들의 삼매정수(三昧精修)에 적당하다 생각하여 창건한 사찰이다.
당시엔 정수사(精修寺)로 이름 지었으나, 1426년(세종8년)에 함허대사가 중창하면서
법당 앞의 맑은 샘물이 솟는 것을 보고 정수사(淨水寺)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름 그대로 법당 옆 삼성각 아래 자리 잡은 수각은 맑은 샘의 약수로 유명하고
법당 출입문인 4분합문의 꽃 창살은 특이하게 통 판에 조각 되어 있어 보물 161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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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사 갈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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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사 안내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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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타고 오르니
마당 너머 정면에 정수사 대웅전이 있고..
정수사 대웅전
왼편 바위로 둘러쳐진 곳엔 자그마한 사탑이 고목에 둘러쌓여 있다.
정수사 탑
우선 보물 제161호로 지정되었다는 사분합문 꽃창살을 찾아보는데
대웅전 사분합문에는 꽃문양이 없이 평범한 격자무늬 밖에 보이지 않는다. 오잉~ 어디에 있지?
혹시 기둥 위에 있는가 싶어 단청부근을 샅샅히 훑어보아도 꽃 문양은 눈에 띄지 않는다.
정수사 단청
그 때 대가알이 알려준다. 지금 문이 접혀 있어서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그러고 보니 한창 예불중인 법당 출입문이 반으로 접힌 채 열려 있다.
정수사 대웅전
접혀 있는 문을 살짝 열어보니 과연 그 속에 꽃 문양의 창살이 모습을 드러낸다.
일반적인 꽃창살은
격자문이 교차되는 곳에 연꽃ㆍ국화ㆍ매화ㆍ목단 등을 잎사귀와 함께 조각하는데 반해
이것은 화병에 모란과 연꽃을 하나의 통판으로 조각한 것으로서
오색의 단청색이 화려하게 배합되어 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창살로 손꼽히고 있다 한다. 정말 그럴만 하네..
정수사 사분합문 꽃창살
법당 앞마당에 모두 모여 단체사진을 찍는다.
단체사진
o 정수사 → 460봉
오전 11시20분,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사찰 왼편 길로 가다보니 매표소가 보이고
아수라백작총무가 입장료(1,500원/인)를 지불하기 위해 그곳에 남은 채 우리 일행들은 산길로 접어든다.
매표소
산행 들머리
조금 전진하니
울창한 숲 그늘이 드리워진 너널바위 지대가 시작되고..
너덜 바위지대
10분 가량 전진하니 안부 사거리가 나온다. (오전 11시28분)
이곳으로부터 왼쪽 길로 접어들면 마니산 정상으로 향하는 지능선이 시작된다.
안부 사거리
지능선을 따라 숲길을 잠시 걷다보니..
지능선
길 한 가운데에 커나마한 너럭바위가 놓여 있다.
바위 위 한켠에는 둥그런 홈이 파여 있는데, 묘하게도 그 홈 가운데로부터 귀퉁이까지가 가느다랗게 갈라져 있다.
그 모양이 무언가를 연상시켰던지 적토마님이 그 위에 올라가서 '응가' 자세를 취한다. ㅎㅎ 그럴 듯 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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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럭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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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럭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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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커다마한 너럭바위가 층층 쌓여 있는 암벽이 길을 가로 막는다.
팔이 아직 완쾌되지 않아 조심조심 발로 중심을 잡고선 올라간다.
암벽
이윽고 암벽 위에 올라서니
전방에 크고 작은 바위군으로 등줄기를 이루고 있는 주능선이 정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주능선 암릉
넘어온 바위를 되돌아 보니
바다를 개간하여 만들었다는 분오리 일대의 갯벌과 전답이 시야에 들어온다.
되돌아보는 능선
오른편에는 동막리로 뻗어가는 지능선 너머로 인천 앞 바다가 시야에 들어온다.
앞에 보이는 섬이 대략 영종도일 듯 싶은데 비행기 날아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긴가민가 한다.
동막 돈대 방향 지능선
다시 높다란 암벽 위를 올라 타니..
암벽
능선상으로 쏟아질 듯 포개져 있는 바위 무더기가 가까이 다가온다.
주능선 암릉
다시 나타난 아찔한 암벽..
아찔한 암벽
팔병신임을 망각한 채 망설임 없이 올라간다. 이궁..
바위 홀드를 찾아 조금씩 팔에 힘을 주어 잡아채니 그럭저럭 참을 만하다. 휘유~
결국, 조심조심 그러나 간신히 암벽을 타고 올라 전진한다.
주능선 암벽
바위 난간에 올라서니..
바위군이 한층 빼곡하게 늘어서 있는 기나긴 암능이 정상으로 뻗어 올라가고 있다.
정상 뒤 왼편 멀리 참성단인 듯 싶은 봉우리가 어렴풋 보이기 시작하고..
주능선 암릉
잠시 암벽에서 내려서서 너널바위 지대를 지나
다시 만나는 높다란 암벽을 또 다시 올라서고..
암벽
그 앞에 다시 펼쳐지는 멋진 암릉을 감상하다가..
다시 나타난 암릉
내려서면 다시 나타나는 암벽.. 이제는 밧줄 구간까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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밧줄 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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밧줄 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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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를 기다려 밧줄을 잡아보니 통증이 어느 정도 견딜 만하기에 잡아 채고 올라서니
정상이 한층 가까이 다가온다.
정상이 가까워 지고..
그 즈음 되돌아 보는 지나 온 길..
고도를 낮춰가는 주능선 위에 불쑥불쑥 솟은 자그마한 암봉이 도열을 하고 있고
그 너머로 인천 앞바다가 넘실대고 있다.
되돌아 보는 암릉
오후 12시03분, 주능선 삼거리에 당도한다.
460봉 - 주능선 삼거리
이곳에서 함허동천과 정수사에서 올라오는 각각의 지능선이 만나 주능선을 이루며 정상으로 함께 뻗어올라간다.
지도상으로는 이곳이 460봉이고 조금만 더 올라가면 해발 469m인 마니산 정상이다.
그리고, 마니산 정상에서 참성단까지는 1km 가량 떨어져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그곳에 세워진 표지판을 보니 아직 정상은 0.8km, 참성단은 1km 남았다고 표시되어 있다. 얼라려?
그렇다면 정상과 참성단 사이가 200m 밖에 떨어지지 않았단 말인가? 무언가 이상타!
이정표 - 정상 0.8km, 참성단 1km
조금 더 전진하니 산행기에서 많이 보았던 소나무를 만난다.
온갖 풍상을 겪은 듯 암릉 위에 독야청청 휘휘 늘어진 소나무를 상대로 멋지게 한컷 잡으려 하는데
지나는 산객들이 너무 많아 그럴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잠시 눈길을 주는 것으로 만족하고 지나간다.
소나무
이제 한켠에 가드레일이 설치된 주능선을 따라 조금 더 오르니
가드레일
바위 난간에 국립지리원에서 설치해 놓는 안내문이 보인다.
내용을 잠시 읽어보니 현재 위치가 469m로 되어 있다. 그렇지..
이곳이 바로 지도상에 표기되어 있는 마니산 정상인 것이다.
469봉 - 마니산 정상
그렇지만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정상 표지석은 설치되어 있지 않다.
아까 삼거리에서 본 이정표로 짐작컨데
465m 고지인 참성단이나 그 앞에 있는 헬기장을 정상으로 삼는가 보다. 그건 아닌디..
참성단과 헬기장
o 469봉 → 참성단
오후 12시07분, 참성단으로 향한다.
참성단으로 가는 길
여전히 너럭바위가 켜켜로 쌓여 있는 암릉이 계속해서 이어지지만
앞서의 길처럼 가파른 암벽구간은 없는 듯 싶기에 여유로히 함께 가는 일행들 사진을 찍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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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토마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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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돌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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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2시19분, 칠선녀교를 지나고..
칠선녀교
곧이어 참성단중수비(塹城壇重修碑)를 만난다.
비문은 가파른 바위 윗면을 손질하여 그 위에 새겨진 것으로서 이미 심각하게 마모되어 글씨 판독이 어려운 상태이다.
참성단 중수비
옆에 세워진 안내문을 읽어보니, 이것은 조선 숙종 43년(1717) 5월에
강화 유수 최석항(崔錫恒)이 관내를 순찰하다가 마리산에 올라 참성단이 무너진 것을 보고
선두포 별장 김덕하(金德夏)와 전등사 총섭 신묵(愼默)에게 명하여 보수하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민족의 근본을 중시하는 마음이 깊게 담겨 있기에 옮겨본다.
참성단중수비문 해석
12시24분 헬기장을 지난다.
헬기장 한켠에는 전국체전 성화를 채화하기 위해
일곱선녀가 마니산에서 예식을 드리는 장면을 담아 놓은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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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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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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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에 강화도 마니산 표지목이 세워져 있고 건너편에 참성단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둥그런 돌담 위에 사각 제단이 쌓여 있고 그 한켠에 고즈넉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어 은근한 신성스러움을 발하고 있다.
마니산 표지목과 참성단
선두 일행 기념촬영..
마니산 표지목
기념촬영을 마친 뒤 참성단으로 접근한다.
지나는 길에 세워진 이정표를 보니 방금 지나온 헬기장을 정상이라고 표시하고 있다. 그건 아닌디..
그나저나 참성단은 철망이 둘러쳐져 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다. 개천절과 전국체전 때만 개방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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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표 - 정수사 3km, 마니산 입구 2.4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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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과 보호 철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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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높은 곳으로 올라가 철조망 너머의 참성단을 바라본다.
깔끔하게 단장된 돌담 너머로 제단의 수호목인 듯한 나무 한 그루가 위엄있게 사방을 둘러보고 있다.
참성단
그 앞에서 여왕갈매기가 물어온다. "여기가 뭐에 쓰이는 곳이예요?"
내가 아는 바를 한껏 주절거리며 알려준다.
여기는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를 지내던 곳이고..
지리적으로도 조수차가 가장 큰 바다와 직면하고 있어 음양의 이치에 따라 엄청난 기(氣)가 모이는데
현대 기 측정 기법인 엘로드법으로 탐측하면 놀랍게도 탐지기가 68바퀴나 돌아간다고 한댜.. 엄청 많이 돌아가는 것이랴..
그리고 여기로부터 백두산까지와 한라산까지의 거리가 서로 똑같아 위치상으로도 이곳이 우리나라의 중심라고 한댜.. 아로쓰? ^^
여갈이 두팔을 벌리며 소리친다. "그래요? 와~~~ 기(氣)를 받아야겠다. 기.. 기.. 기.."
옆에 있던 어느 분이 이죽거린다. "그렇게 기를 많이 받아서 뭐하려구? 음~ 오늘 대가알 죽었군!"
o 참성단 → 석곡골 관통도로
오후 12시34분, 참성단 울타리 옆길을 지나 옆에 세워진 이정표가 가르키는 선수 방향으로 전진하는데
왼편에 단군로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아무 생각없이 그냥 지나쳐 전방으로 전진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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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표 - 정수사 2.8km, 선수 5.8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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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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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가 우측으로 휘면서 계단길이 나타난다. 이상타.. 혹시 하산길로 내려가는 거 아녀?
앞서 지나친 단군로 표지판도 생각이 나기에 급히 되돌아 올라간다.
계단길 (알바 중)
단군로 표지판 앞에서 나침반을 꺼내어 방향을 잡아보니 역시 길을 잘못 들었었던 것이다.
종주 끝단인 선수는 여기서 왼편 단군로 방향으로 가야하는데, 화도초교가 있는 하산길로 내려갔던 것이다.
오후 12시37분, 참성단을 왼편에 끼고 돌아가는 단군로 방향으로 전진하니 제대로 된 종주길이 나타난다. (3분짜리 알바 탈출!)
단군로 방향 (알바 탈출)
오후 12시39분, 오던 길을 되돌아보니..
참성단의 사각제단 한 귀퉁이가 봉우리 정상 위로 모습을 보여준다.
참성단
조금 더 전진하니..
앞으로 가야하는 303봉과 석곡골 관통도로 너머의 상봉도 시야에 들어온다.
303봉과 상봉
바위 난간에 올라서니
왼편에 흥왕리 간척지가 시원스레 내려다 보인다.
흥왕리 간척지와 앞바다[클릭☞확대]
가파른 내리막 계단이 시작된다.
내리막 계단
계단 중간에 서북 방향을 바라보니 석모도가 보인다.
석모도는 고구려 시대 때 해군의 요새지였고,
고려시대부터는 국가소유의 대단위 목장이 있었는데 조선 태조의 애마 사자황이 이곳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지금은 아름다운 절경 때문에 천혜의 섬으로서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라 한다. 나는 언제 가 볼꼬..
석모도
오후 12시56분 경치가 좋은 너럭바위 위에 자리를 잡고 점심식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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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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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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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중 앞에 바라보이는 서해바다가 시원하다.
그런데, 바다와 산기슭 사이에 구획정리된 평지를 놓고 일행들간의 주장이 엇갈린다.
한편은 논이라 하고 다른 한편은 염전이라 하고..
얼핏 보기엔 논인 듯 싶은데
조수차가 큰 이곳에 논농사를 짓기는 어려울 듯 싶어 염전에 점수를 더 주고 싶지만
주변에 소금을 가공하는 건물이 보이지 않아 쉽게 판단이 내려지지 않는다.
흥왕리
나중에 집으로 돌아와 관련 자료를 찾아보지만 딱 부러진 답을 찾을 수 없고..
다만, 가을에 찍은 사진을 보니 저 곳 일대가 누렇게 변해있음을 확인하고 논일 것 같다는 짐작만 하게 된다. (충곡! 됐냐?)
오후 1시18분, 점심식사를 마치고 상봉을 향하여 출발한다.
조금 가다 보니 등로 옆에 "신비의 땅 갯벌"에 대한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그럼 저게 갯뻘인가?
내용을 읽어보니 좀전에 보았던 흥왕리에 한정하여 설명하는 것이 아니고
강화도 해안선 주변에 형성되어 있는 갯벌에 대한 안내를 적고 있는 것 같다.
신비의 땅 갯벌
그늘진 숲 길을 걷는다.
아까와 달리 등산객이 드물고 등산로가 완만하게 이어지니 산행길이 편안하다.
숲길
오후 1시24분, 단군로 갈림길에 당도한다.
오른 편은 단군로를 따라 화도초교로 하산하는 길이고, 종주길은 직진해야 한다.
표식지를 전방으로 깔아놓고 전진하여 곧이어 안부를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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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로 갈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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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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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편안하고 선선한 그늘 길을 걷고 있는데..
숲길
주선생님이 고인돌님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건네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현재 기도원이 나타났는데 어디로 가야하냐고 물어오는 것이다. 허걱~
일행이 8명이라는 데 단군로를 따라 화도초교쪽으로 잘못 내려가버린 듯 싶다.
(나중에 알고보니 우리가 알바할 뻔 했던 첨성단에서 계단로를 타고 내려갔다고 한다. 거기도 표식지를 깔아 놨었는디..)
지도를 보면서 두 가지 정보를 알려준다.
그곳에서 여기로 다시 올라오기 위해서는 30분 가량 걸릴 것 같고..
그냥 화도초교로 내려가서 도로를 따라 3km 가량 서쪽으로 걷다보면 하산지점인 선수횟집쪽으로 갈 수 있다고 하니..
결국 그네들은 그냥 하산하겠다고 한다. 끙~
..
오후 1시35분, 바위 봉우리 위에 올라선다.
봉우리 한가운데 "강화 423"라고 쓰여 있는 삼각점이 있는 것을 보고 그곳이 303봉임을 확신한다.
303봉
그곳에서 바라보는 남쪽 바다 끝에는 한 섬이 기나긴 띠 처럼 드리워져 있다.
바다
이제 등로는 북쪽으로 휘어 올라가고
오른편엔 우리가 지나온 주능선 상의 고봉 두개가 무성한 나뭇가지 너머로 보인다.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참성단(465m)이고 뒷 봉우리가 정상(469m)이리라..
참성단과 정상
오후 1시48분, 이윽고 상방리 갈림길에 당도한다.
상방리 갈림길
그곳에서 선수방향 오르막에 올라서니 전방의 시야가 확 트인다. 시원~! & 후련~!
우리가 가야하는 상봉은 오른쪽으로 이어지고 있고 왼편에 있는 마을은 화도면 장화리인 듯 싶다.
상봉과 장화리
그곳에서 잠시 길을 헤매게 된다.
앞서 가고 있던 다른 산악회 등산객이 왼편 길은 낭떠러지 길이니 오른편 길로 가야한다기에
무심결에 따라내려가는데 길이 이상하다. 나침반을 찍어보니 전진방향은 북쪽을 가르키고 있다. 서쪽으로 가야 하는데..
되돌아와서 길을 살펴보니 좀전에 내려온 봉우리 오른편으로 샛길이 있다. 그쪽 방향을 대고 나침반을 찍어보니 서쪽이다. 여기군..
경사지고 비좁은 샛길을 따라 걷다보니 길이 다시 좋아지고 곧이어 헬기장이 나타난다. (오후 1시57분)
헬기장
헬기장을 지나 5분 가량 전진하니 도로(석곡골 관통도로)가 나오고 그 길에 대갈이 서 있다. (오후 2시05분)
좀 전 조망좋은 봉우리에서 우리가 낭떠러지 길이라 해서 가지 않았던 왼편 길로 내려왔다고 한다. 그길이 맞는 길이였군..
석곡골 관통로
관통도로에서 잠시 대기하며 선두일행을 모은다.
선두일행
o 석곡골 관통도로 → 선수돈대
오후 2시08분, 상봉을 향하여 반대편 산기슭을 오른다.
그곳 표지판에 따르면 종착지인 선수까지 4km 남았다고 하는데
지도상으로는 3km 가량 될 것 같고 1시간 30분이면 완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일봉 오르는 길
제법 가파른 오르막을 5분 가량 채고 오르니 일봉 정상이다.
주변에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지 않지만 어느 산행기에서 이곳을 일봉이라고 지칭하기에 그냥 따라 부른다.
일봉 정상
선두일행이 모두 도착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함께 전진한다.
곧이어 잘 단장된 묘지를 지나고, 선선한 숲길을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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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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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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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완만한 오르막을 걷던 중
돌뿌리를 잘 못 디뎌 미끄러지는 듯 싶더니 앞으로 퍽 넘어진다. 꽈당~
성치 않은 두 팔을 또 다시 급작스럽게 땅바닥에 짚다보니 통증이 느껴지고
가슴도 돌뿌리에 조금 대인 듯 묵직한 느낌이 남아 있다. 끙~
나도 놀랬지만 뒤쫓아오던 빔빔이 더욱 놀래서 다가와서 안위를 물어온다.
다행이 조금 지나니 통증이 가라앉고 다른 부위도 별탈이 없는 듯 싶다. 휘유~~~
등산화 밑창이 워낙 닳고 닳아서 쉽게 넘어지게 되는 것 같다. 언능 새 걸루 하나 장만해야겠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조심조심 전진한다.
10여분 동안 완만한 내리막 오르막을 걷다보니 헬기장이 나타나고.. (오후 2시37분)
헬기장
그곳으로부터 등로가 북쪽으로 이어진다.
길가엔 많은 붓꽃들이 제철을 만난 듯 푸른 꽃잎을 활짝 피워놓고 있다.
조금 더 전진하니 망망한 서해가 전방으로 펼쳐지고
갯벌을 앞에 두른 한적한 어촌이 발치 아래로 내려다 보인다.
한층 가까이 다가와 보이는 갯벌에서는 얼핏 짠 냄새가 풍겨오는 듯 싶다.
오염되지 않은 생태에서 풍겨오는 싱싱한 삶의 기운이리라..
선수 마을
오후 2시46분, 다소 가파르지만 짧은 오르막에 올라서니 정상에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다.
주변에 정상 표지석이 없지만 삼각점에 "강화 311"이 쓰여있음을 확인하고 상봉 정상(254.8m)에 올라왔음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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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봉 정상 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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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봉 정상(254.8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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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좁은 상봉 정상에서 머물지 않고 좀 더 전진한다.
잠시 안부로 내려선 뒤 다시 오르막에 오르니 또 다른 봉우리 정상이 나온다. (오후 2시54분)
일행들에게 종주능선 마지막 봉우리인 북봉임을 알려주고 그곳에서 과일을 꺼내어 나눠먹으며 휴식을 취한다.
북봉
이제 편안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숲 길을 걷는다.
숲 길
오후 3시15분, 선수돈대를 지난다.
돈대는 성벽 위에 석재를 쌓아올려 망루(望樓)와 포루(砲樓)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높직한 누대(樓臺)를 말하는데
이곳은 조선 숙종 때(1679년)에 병조판서 김석주(金錫胄)가 건의하여 세운 것으로서 선수 마을 앞바다를 지키기 위한 곳이라 한다.
선수 돈대
선수돈대를 지나고..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숲길을 걷다보니 향긋한 냄새가 코를 자극해온다.
길 위를 들여다보니 아카시아꽃이 수북히 떨어져 있어, 하늘을 보니
숲속 이곳 저곳에 서 있는 아카시아 나무가 이제서야 꽃을 피워놓고 벌과 나비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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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꽃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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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꽃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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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아카시아 향을 맡으며 기분 좋게 하산..
하산 중인 선두일행
이윽고 나뭇가지 사이로 밋쓸버스가 보이고, 날머리에는 산행안내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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밋쓸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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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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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날머리
☆ 지나온 길
오후 3시19분, 선수 날머리에 도착함으로써 마니산 종주를 완료하였다.
총 산행거리는 9.8km, 산행시간은 4시간 24분 소요되었다.
구글지도
☆ 뒷풀이
완주팀들이 도착하는 대로 인근 횟집으로 이동하여
횟집 화장실에서 홀딱 벗고 개운히 샤워를 한 뒤
병어회와 밴댕이 무침으로 뒷풀이..
살살 녹는 밴댕이에 소주가 어울리니
산행 피로가 사~~악 가셔버리고 즐거움만이 머리 끝까지 치켜오른다. 홍야~ 홍야~~
☆ 쫑
마니산의 신령스런 정기가 내 몸 어디엔가 아직도 남아 있는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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