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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백두대간

산행기 - 백두대간 (지기재/신의터재/화령재)

by 청려장 2006. 12. 19.
"산행기 - 백두대간 (지기재→화령재)"
o 일시: 2006.12.16(土) 09:00 ~ 13:58 (4시간58분) o 날씨: 흐림/가랑비, 1℃ ~ 6℃ o 코스: 지기재(260m)→신의터재(280m)→무지개산(441.4m)→윤지미재(538m)→화령재(320m) o 거리: 15.9km o 참석: 대전한마음토요산악회 총 40명 ☆ 등산기록 :
시 각 구 간 거 리 시 간 속 도
09:00~10:00 지기재→신의터재 4.6km 1:00' 13'02"/km
09:31  쑥밭재 [대기 4분]
09:54  철탑
10:00  신의터재 [대기 9분]
10:09~11:05 신의터재→무지개산 4.3km 0:56' 13'01"/km
10:21  삼각점 (329.6m봉)
11:05  무지개산
11:05~12:04 중식 (무지개산 묘터) - 0:59' -
12:04~13:12 무지개산→윤지미산 4.5km 1:08' 15'06"/km
12:58  437.7봉 [대기 5분]
13:12  윤지미산 [대기 6분]
13:18~13:58 윤지미산→화령재 2.5km 0:40' 16'00"/km
13:50  청원-상주 고속국도 공사장
13:58  화령재
종 합 15.9km 4:58' 18'44"/km (3.20km/hr)
☆ 등산 개념도
등산개념도
◎ 등반 메모 ◎
o Intro.. 몇년전부터 뜀박질을 하는 틈틈히.. 홀로 또는 와이프와 내맘 내키는 대로 산행을 해오다가 올해 들어서부터는 산악회를 쫓아다니며 많은 산꾼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러는 과정에.. 지리산 태극종주와 백두대간 종주가 가슴에 들어앉은 듯 싶다. 이제는 '태극' 또는 '대간' 소리만 들어도 마음이 조급해진다. 언젠가 해내리라.. 금번 구간인 지기개로부터 신의터재를 거쳐 화령재까지 가는 구간은.. 최고봉인 윤지미산이 538m, 제2봉인 무지개산이 438m에 불과할 정도로 대간종주 코스 중 고도가 가장 낮고 또 오르내림이 적은 육산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들 산은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서 대간꾼이 아니면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한다. 따라서 발맛이 좋은 호젓한 산책길이리라 예상해본다. o 이동.. 아침 7시, 평송 앞에서 출발한 밋쓸버스가 8시20분경 인터체인지를 빠져나와 영동 지역으로 진입하고 있다. 간밤에 뽑아놓은 산행기를 읽느라 밖을 내다보지 못했더니 어느 IC를 통해 나왔는지 잘 모르겠다. 영동 IC? 황간 IC? 8시50분, 어느 고개에 당도하여 하차하니 길가 전봇대에 걸려있는 이정표가 각양 각색의 리본들을 주렁주렁 매달고서 이곳이 백두대간의 한 길목인 지기재(260m)임을 알려주고 있다.
이정표 - 지기개
지기재.. 자료에 의하면.. 예전에 이 동네 뒷산에 도둑이 많아서 적기재라 불리웠는데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이름이 변형되어 지기재로 불리우게되었다고 한다. 길 건너편에는 이곳이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령임을 알려주는 커다란 현판이 세워져 있다. 배낭을 꾸려 맨 대한토님들이 그 옆으로 난 세멘트 포장길로 모여든다.
들머리,분수령 - 금강/낙동강
포도밭 건너편에 훼양목으로 울타리쳐진 공간에는 커다란 비석이 거북이등 위에 세워져 있다. 비문을 읽어보니 승정원 좌승지를 지낸 창령 성씨의 공덕비인 듯 싶다.
공덕비 - 창령 성씨승정원 좌승지..
o 지기재 → 신의터재 "가자! 가자! 가자!" 아침 10시 정각, 꺼벙이대장님의 지휘에 따라 구호를 외친 후 산행을 개시한다. 마을로 향하는 세멘트 포장길을 5분 가량 걸어가다 보니 세 그루의 미루나무가 보인다. 맘씨 좋은 키다리 아저씨 같은 모습이다.
미루나무 길..
포장도로가 끝나니 비포장도로가 우측편으로 이어진다.
산행 초입길..
그 길을 따라 조금 더 전진하다가 좌측편 산기슭으로 오르기 시작하여 본격적인 산행길에 접어든다. 옆에 함께 걷게된 회원님께 어디선가 읽은 내용을 알려준다. "원래는 지기재 입구에서부터 능선을 타고 와야하는데  그 부근이 사유지(과수원)여서 여기까지 포장길로 돌아왔다네요."
첫 오르막.. 금은골 초입..
군데군데 자리잡고 있는 묘지를 지나며 10분 가량 오르막을 치고 오르니 첫번째 봉우리에 당도한다. 지도를 보니 금은골 정상인 듯 싶고 높이는 300m 남짓 되는 것 같다.
금은골 정상 당도..
옛날에 도적들이 들끓었다던 지기재 뒷산이 바로 여기인 듯 싶은데.. 숲의 형태를 둘러보니 도적들의 흔적이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그 당시에는 도적들이 은신하기 좋도록 숲이 무척 우거졌으리라.. 은신처를 기반으로 가까운 민가나 과객을 호시탐탐 노렸으리라.. 금은골을 넘어 10여분간 내리막길을 타고 내려가니 시계가 툭 터진 개활지가 나타난다. (오전 9시31분) 왼편에 너른 밭이 있는 것을 보니 이곳이 쑥밭골인 듯 싶다.
9시31분, 쑥밭골에 당도하여 대기..
쑥밭골에서 후미를 기다리며 5분가량 머물다가 열댓명의 중간 그룹들이 속속 도착하자 다시 산행을 개시한다.
9시35분, 쑥밭골에서 출발..
그때부터 빠르게 치고 나가던 선두 페이스가 다소 주춤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선두의 페이스가 빨라지는 듯 싶으면 여지없이 대오 중 한분이 제지를 하기 때문이다. "선두 반보!!!" 그러다보니 20여명의 대원들이 흩어짐 없이 일렬이 되어 전진하게 된다.
모여 모여서 전진..
9시54분, 철탑을 통과하고..
9시54분, 철탑 통과..
10시 정각, 20여명의 대원들이 끊임없는 대오를 유지한 채 신의터재에 당도한다. 중간에 페이스를 조절하였는데도 산악대장님이 예상했던 시간(2시간)보다도 1시간 빨리 도착하였다. 대한토님들의 체력이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리라.
신의터재 도착..
신의터재 고개에는 상주시 화동면과 내서면을 잇는 20번 지방도로가 지나가고 있고 그 고갯마루에 신의터재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일단 표지석 앞에서 기념촬영을 한다.
기념촬영.. 신의터재..
표지석 바로 옆에는 이 신의터재의 유래와 많은 연관이 있는 인물인 김준신의사의 유적비가 세워져 있다.
절곡 김준신의사유적비..
신의터재 표지석에 새겨진 이곳의 유래를 그대로 옮겨본다. "임난 이전에는 신은현(新恩峴)이라 불리었고  임난 때 의사 김준신(金俊信)이 이 재에서 의병을 모아  최초의 의병장으로 상주진에서 많은 왜병을 도륙하고  임진 四月 二五日 장렬하게 순절한 사실이 있은 후부터 '신의터재'라고 불리었으나  일제 때 민족정기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어산재"로 불리게 되었고  문민정부 수립후 광복 五十주년을 맞이하여  민족정기를 되찾고 후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 교육의 장으로 삼고져  옛 이름인 '신의터재'로 다시 고치다." 그런데 그 유래를 아무리 읽어보아도 '신의터'라는 말 뜻은 아리송하다. 무슨 뜻이지? 神이 살던 곳? 信義가 있는 곳? o 신의터재 → 무지개산 신의터재에서 10분 가량 머물다가 10시09분 무지개산을 향하여 다시 출발한다.
무지개산을 향하여 출발..
진입로에서 조금 들어가다 잡풀들이 우거진 농로길에서 우측으로 꺽어서 2개의 봉분이 있는 묘지를 아래에 두고 야트막한 오르막을 오른다. 잠시 봉분을 넘겨다 보니 대한토님 후미가 그제서야 신의터재를 건너오고 있다.
뒤 돌아보는 신의터재.. 후미 출발..
오르막을 타고 5분 남짓 오르니 벌써 봉우리(324봉) 하나를 넘는다.
고개 하나 채 오르고..
산 왼편 나뭇가지 사이로 얼핏얼핏 보이는 선교리 마을을 보면서 전진하다 낙엽 숲속에 홀연히 서 있는 Dry Flower를 발견한다. 죽어 있어도 살아 생전의 도도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전생이 무엇인지 쉽게 짐작이 간다. 떡취라고도 불리우는 수리취이리라..
dry flower - 수리취
집에 돌아온 뒤 그의 전생을 재 확인한다.
수리취.. (출처: 야사모, 게시자: 삼백초꽃님)
그곳에서 조금 더 전진하여 삼각점이 박혀 있는 329.6봉을 통과한다.
삼각점 - 329.6m 봉
다시 낙엽이 쌓인 산길을 따라 하산하고..
하산..
동백나무가 심어져 있는 특색 있는 묘지를 지나고..
동백나무가 심어진 묘지..
5분 가량 산기슭을 돌아가다보니 왼편에 인삼밭이 나타난다.
인삼밭 통과..
선두대장인 솔솔님이 그 부근에 서서 지도를 보면서 위치를 확인한다.
선두.. 잠시 위치 확인..
이윽고 묘목이 듬성듬성 서 있는 사이로 몇개의 묘지가 있는 개활지를 통과한다. 지도를 보며 이곳이 대충 어디인지를 짐작해본다. 200m급 등고선이 넓게 펼쳐진 영안동 부근의 능선이리라..
개활지를 통과하고..
이후 무명봉 하나를 더 넘어선 뒤 안부를 지나고 있을 즈음 뒤에서 누군가가 소리지른다. "선두~~~ 재미없어!" 뒤 돌아보니 요산님과 호산자님이 뒤를 쫓아오신다. 선두가 너무 빠르게 전진하고 있음을 질책하면서 이제 그만 모두 모여 점심식사하기에 적당한 곳을 물색하라 하신다.
요산님과 호산자님 안부 통과..
앞서 가던 자등명님이 그들이 외친 야지(?)를 고대로 기록해달라고 한다. '예~ 녹음해 둘 걸 그랬네요' 하며 웃다 생각하니.. 엥? 일지 써 달란 얘기네? 이젠 내가 일지 써서 올리는 것이 자동빵으로 인식되는가보다. -.-;;
선두 - 솔솔님, 자등명님, 상아님
그 부근에서 또 다른 모습의 드라이플라워를 만난다. 이것도 온전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고 모양도 특이하지만 그 정체는 도통 알송달송하다.
다시 만난 드라이플라워..
집에 와서 알아보니.. '삽주'라는 다년생초로서 뿌리가 무병장수 약재로 쓰이는 것이라 한다. 와~ 귀한 약초였네?
삽주 (출처: 야사모, 게시자: 박기하님)
11시05분경 어느 마루금에 당도하니 나무에 표지판이 하나 걸려있다. 표지판에는 무지개산 441.4m이라 인쇄되어 있고 그 옆에 볼펜으로 화살표가 그려져 있다. 무지개산 정상(441.4m)이 그곳 오른쪽에 있다는 표시인 듯 싶다.
무지개산 표지판..
o 점심식사 (무지개산) 더 이상 전진하면 바람이 드세게 부는 곳 밖에 없을 듯 싶어 산 아래 편 나무로 둘러쌓여진 넓다란 묘터로 내려가 후미 일행들을 기다리며 점심식사 자리를 마련한다.
무지개산 아래 묘터..
함께 식사하기로 한 충곡이 10분 뒤 나타난다. 어여~ 와라!
11:15, 충곡 일당 도착..
충곡, 경희님, 이쁜앙마님, OO님, 청려장 등 5명이 둘러앉아 점심식사.. 보온통에 담아온 경희표 김치찌개를 코펠에 담아보니 아직도 따끈따끈하다. 그러다보니 충곡이 새로 샀다는 콜맨은 꺼내놓을 필요도 없게 된다. 자랑하고 싶을텐데.. ^^
점심식사..
뒤늦게 도착한 후미가 식사를 마칠 때까지 기다리는 중 언제부턴가 내리기 시작한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니 모두들 우비와 배낭커버를 꺼내어 우중 산행에 대비한다.
우중 산행 대비..
o 무지개산 → 윤지미산 12시 정각, 다시 출동한다.
12:01, 다시 출동..
묘지에서 무지개산으로..
식사 장소였던 묘터에서 올라 와 식사 직전에 확인해 두었던 무지개산 삼거리에 다시 당도한다. 그곳에서 오른편의 무지개산을 등 뒤로하고 왼편의 대간길로 전진한다.
이정표 - 오른편은 무지개산 정상, 왼편은 대간길
조금 전진하다가 뒤돌아보니 무지개산 봉우리가 시야에 들어온다. 자료에 따르면.. 무지개산이라는 이름은 정상 남쪽 골짜기에 있다는 무지개 폭포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무지개산 봉우리..
삼거리에서 10분 가량 전진하여 어느 무명봉 하나를 통과하고..
무명봉 통과..
5분가량 더 전진하여 또 하나의 무명봉을 통과한다. 모든 수목들이 갈색으로 탈색한 숲 속에는 노루발풀과 그의 사촌인 매화노루발풀만이 푸릇푸릇한 잎파리를 내밀고 살고 있다. 그네들은 저렇듯 낙엽 사이에서 푸르름을 간진한 채 한 겨울을 보낸 뒤 이른 봄에 아리따운 화촉을 내미는 강인하지만 고결한 종자들이다.
노루발풀의 사촌인 매화노루발풀..
이어지는 호젓한 산길에는 이쁘게 자란 운지버섯도 눈에 띄고..
운지버섯..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첫돌기념 수건도 눈에 띈다. 왜 저걸 걸어놨지?
첫돌기념 수건..
어느덧 가랑비가 멈추니 등산하기 딱 좋은 선선한 날씨가 된다. 계속해서 빠르게 전진하는 선두를 잠시 앞질러 가서 그네들의 모습을 담아보기도 하고..
선두..
점심식사후 무지개산에서 출발한지 50분이 경과할 즈음 왼편 나뭇가지 사이로 윤지미산으로 보이는 산봉우리가 시야에 잡히기 시작한다.
나뭇가지 너머로 보이는 윤지미산..
그때부터 시작되는 가파른 능선을 힘차게 채고 오른다. 아마도 윤지미산(538m) 직전의 437.7m 봉우리를 오르는 듯 싶다.
윤지미산 직전의 437.7m를 오르는 중..
오르막이 꽤나 힘들었던지 거친 호흡을 토해내며 5분 가량 치고 올라 오후 1시경 437.7m 봉 정상에 오른다.
선두 437.7봉에 도착.. 솔솔님, 상아님, 자등명님
뒤이어 카시미론님, 산수님, 술푼눈님이 도착할 즈음 후미대장 꺼벙이님이 무전기를 통해 회장님 일행이 알바를 하고 있음을 알려온다. 점심식사후 무지개산 삼거리에서 오른편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그쪽은 대간길이 아닌 무지개산 정상으로 가는 길인데.. 회장님까지 알바를 하시다니.. *^^* 누군가가 자고로 산행은 알바를 해야 재미있다고 하신다. ㅎㅎㅎ 그것도 남들이 했을 때 얘기지요. 본인이 하면 얼마나 죽을 맛인데..
솔솔님과 꺼벙이님 무선 교신..
그때 솔솔님이 점심식사후 간의의자를 놓고 왔음을 깨닫고 무전기를 통해 꺼벙이님께 물어본다. 솔 솔 님 - "혹시 식사한 곳에서 간의의자 못 봤어요?" 꺼벙이님 - "봤는데.. 우리꺼 아닌 것 같아 버렸는데.." 솔 솔 님 - "예! 감사합니다." ㅎㅎㅎ 짓궂게 버리고 왔다고 하는 데도 감사의 인사를 건네는 솔솔님.. 말투만 들어도 챙겨왔음을 확신하는 것이리라. *^^* 437.7봉에서 5분 가량 머물다가 윤지미산으로 전진한다. 능선 오른편으로는 어렴풋 도로가 보인다. 위치상 25번 국도가 아닐까 짐작한다. 이윽고 윤지미산 정상을 향한 마지막 오르막을 타고 오르기 시작한다.
윤지미산 직전..
생각했던 것 보다는 가파르지가 않아서 437.7봉 직전의 오르막에 비해 수월하게 채고올라 오후 1시12분에 정상에 당도한다. 정상 직전에 잽싸게 뛰어올라 선두일행들의 정상등정 모습을 담아둔다.
1시12분, 윤지미산 정상에 도착.. 솔솔님..
윤지미산 정상 도착 - 자등명님..
나도 일행 중 한 분께 부탁을 해서 한컷 찍어둔다.
나!
이어서 선두 일행이 모두 모인 뒤, 솔솔님의 사진기로 한컷!
솔솔님의 사진기..
(오늘 사진방에 들어가 저 당시의 사진을 찾아내어 여기에 링크한다.)
윤지미산 정상 (촬영: 솔솔님 사진기)
뒤 - 술푼눈님, 솔솔님, 청려장
앞- 상아님, 자등명님, 카시미론님, 산수님
o 윤지미산 → 화령재 윤지미산 정상에서 5분 가량 머물다가 오후 1시18분 하산을 시작한다. 내려가는 길이 워낙 가파라서 발거름이 조심스럽다. 가파른 내리막이 길게도 이어지니 거꾸로 올라온다면 땀깨나 흘리리라 가늠해본다.
급경사 내리막..
그 내리막을 15분 가량 내려오니 이제는 평평한 농로길이 나타난다. 전방에는 도로도 보이고..
농로길..
전방에 보이는 도로가 위치상 25번 국도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솔솔님이 아니라고 한다. 앞으로도 봉우리를 두개 더 넘어야 한다고 한다. 농로길 끄터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다가 되돌아보니 윤지미산이 나뭇가지 너머로 우뚝 솟아 있다. 제법 높았었군..
윤지미산..
산기슭 사이로 난 길을 걸어가던 중 솔솔님이 위치를 확실히 파악한 듯 화령재가 아직 1.5km 남았음을 알려준다.
솔솔님 - "화령재는 아직 1.5km 더 가요.."
이어서 능선이 잘려나간 듯한 절개지를 지나고..
마지막 봉우리(320m)를 넘기위해 가는 임도..
소방도로(임도) 같은 그 길을 따라 전진하다 보니 오른편에 청원-상주간 고속국도가 눈에 들어오고..
오른편에 청원-상주간 고속국도 다리가 보이고..
조금 더 전진하여 마지막 봉우리를 넘기 위한 산기슭으로 진입한다.
마지막 봉우리 진입..
나즈막한 봉우리 하나를 넘어서니, 기계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더니만 평평한 능선 오른편으로 청원-상주간 고속국도 건설현장이 나타난다. 바로 이곳에서 백두대간을 뚫고 지나 청원으로 연결되는가 보다. 백두대간이 훼손되는 것이 안타깝지만 대간이 완전히 절개되지 않는 것만이라도 다행이라 생각해야 할 것 같다. 건설현장 건너편 산중턱에는 보은과 상주를 잇는 25번 국도가 휘돌아가고 있다. 다왔군..
청원-상주 고속국도 건설현장..
그곳에서 한번 더 오르막을 5분 가량 채고 오르니..
화령재 직전 봉우리..
봉우리 너머로 화령재 비석과 밋쓸버스가 눈에 들어온다.
화령재와 밋쓸뻐스..
다시 한번 앞장 서서 내려와 우선 화령정을 사진기에 담은 뒤.. (도착시간 1시58분, 총 산행시간 4시간58분)
오후 1시58분, 화령재 도착..
뒤이어 내려오는 선두 그룹의 완등 장면을 찍어드린다.
선두.. 상아님, 자등명님..
산수님, 솔솔님..
카시미론님..
술푼눈님..
☆ 대기 & 뒷풀이 선두 일행이 모두 내려온 뒤 25번 국도를 건너 화령재 비석 옆에 세워진 화령정으로 올라가 본다.
화령재와 화령정..
정자 안에는 화령정 건립기가 쓰여있는 편액(扁額)이 걸려있는데 빼곡히 쓰여진 글에는 신라초기로부터 조선시대까지의 고갯길 내력이 담겨져 있고 아울러 이곳이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령임을 알리고 있다.
화령정 건립기..
한편, 화령의 한문 표기가 火嶺 또는 化嶺으로 혼용되고 있었는데 내력을 읽어보아도 신라시대로부터 625동란때까지도 化嶺이란 이름이 쓰였던 것 같은데 그 이후 언제부턴가 火嶺으로 바뀐 듯 싶은데 그 과정이 뚜렷하지 않다. 암튼, 화령재란 이름은 조선시대 상주시 화서면 소재지가 화령현이었는데 이 화령현을 넘나들던 고개라 해서 화령재라 이름지어졌다한다. 화령정에서 내려와 다시 25번 국도를 건너 산행 날머리에 세워진 산행 개념도를 들여다 보며, 오늘 구간과 앞으로의 구간을 짚어본다. 다음 구간 들머리는 여기서 동쪽으로 300미터 더 내려가야 하는가보다.
백두대간 등산 안내도.. 오늘 구간과 다음 구간..
.. 모든 회원이 복귀한 오후 4시30분경 미쓸버스가 대전을 향하여 출발한다. ☆ 쫑.. 지기재 마을입구의 미루나무.. 그 넉넉한 품새.. 신의터재의 알송달송한 유래.. 신의터가 대체 무슨 뜻일꼬? 산기슭에서 만난 드라이플라워 수리취와 삽주.. 죽어서도 유지하고 있는 고고함.. 내내 함께 걷던 님들.. 솔솔님, 자등명님, 상아님.. 땀내 맡으며 쌓은 정.. 신입회원들을 끝까지 챙겨온 대장님들.. 그 책임감.. 요번 산행은 이러한 모습으로 기억에 남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