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4월18일(금), 1일차
점심시간, 한밭수목원에서 산책하던 중 탱자나무 앞에 선다.
습관적으로 탱자나무나 산초나무를 만나면 찾아보는 것이 있다. 호랑나비 애벌레다.
호랑나비는 탱자나무, 산초나무, 귤나무 등과 같은 운향과 나무에 알을 낳는다.
호랑나무 애벌레가 이들의 나뭇잎을 먹으며 성장하기 때문이다.
운향과(芸香科)는 무환자나무목에 속하는 식물로, 향이 강한 꽃이 피는 것이 특징이다.
탱자나무 잎파리를 샅샅이 살펴보지만 호랑나비 알이나 애벌레를 찾지 못하고..
본 나무의 생장과 관계없을 듯한 맹아지 한가닥을 조심스레 절취하여..
사무실로 가져와 수병에 꽂는다.
잎의 성장을 가까이 관찰하고 싶었던 것이다.
2025년4월21일(월), 4일차
주말을 보낸 월요일. 출근하여 탱자나무 잎을 살펴보다 무언가 발견한다.
호랑나비 애벌레다.
지난 금요일에도 이 나뭇가지에 알이나 1령의 애벌레가 있었는데
너무 작아서 찾지 못했었던 모양이다.
호랑나비 알은 5일만에 부화하여 애벌레가 된다.
몸 길이가 2.5mm 정도 밖에 되지 않아 자세히 관찰하려면 확대경이 필요할 정도라 한다.
알에서 빠져나온 애벌레는 탈피한 알 껍질을 먹으며 힘을 보충한다. 이 시기를 1령 애벌레라 한다.
호랑나비 애벌레는 5번의 탈피과정을 거친다.
처음 탈피하여 태어난 1령 애벌레는 2일 후 2령 애벌레,
4일 후 3령 애벌레, 4일 후 4령 애벌레, 4일 후 5령 애벌레로 탈피 및 변신한 뒤
5일 후 번데기가 되고, 12일 후 나비로 우화한다.
이것은 등에 흰무늬가 있는 것으로 보아 2령 내지 3령의 애벌레다.
얼핏 새똥 같이 보이는 것은 천적을 피하기 위한 의태의 일종이다.
2025년4월22일(화), 5일차
나뭇잎을 옮겨가며 열심히 먹는다.
몸 집은 더욱 커지고 무늬는 점점 짙어지고 있다.
2025년4월24일(목), 7일차
산초나무를 구해왔다.
과학관 울타리 옆 산책로에 몇년전 종종 호랑나비 애벌레를 관찰하던 산초나무가 있다.
그 나무로 부터 파생한 유묘(幼苗)가 주변에 쑥쑥 자라고 있기에 한 뿌리 캐왔는데..
유묘 잎인 만치 연하고 싱싱하여 애벌레 먹이로 딱 좋을 것이다.
애벌레는 아직 탱자나무에서 열심히 잎을 갉아 먹으며 몸집을 불리고 있다.
크기로 보아 3령 내지 4령인 것 같다.
조만간 탱자나뭇잎을 다 먹어치울 듯 싶어 먹이를 보충해 놓은 것이다.
2025년4월28일(월), 11일차
주말을 보내고 4일만에 출근하여 찾아보니..
애벌레가 산초나무로 이동하였는데, 모양도 변신하였다.
새똥 모양인 1~4령을 벗어나 마지막 애벌레인 종령(5령)이 된 것이다.
5령 애벌레는 봉제인형 같이 귀엽다.
머리에는 눈 처럼 보이는 문양이 있다.
이것도 의태의 일종으로 가짜 눈이다. 실제 눈은 입과 가슴다리 쪽에 있다.
5령 애벌레가 나뭇가지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며 열심히 먹는다.
나뭇잎을 다 먹어치운 가지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기도 한다.
먹방쇼가 재밌어서 넋놓고 바라본다.
2025년4월29일(화), 12일차
산초나무 유묘를 하나 더 캐왔다.
요번엔 좀 더 큰 것을 조달해왔다.
5령 애벌레는 여전히 열심히 먹고 있다.
몸집은 더 커진 것 같고, 배다리 윗쪽의 백색 무늬도 더욱 선명해졌다.
2025년4월30일(수), 13일차
새로 갖다놓은 나무를 오가며 부지런히 먹는다.
나뭇잎을 갉아 먹는 쩝쩝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이 지켜보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먹방은 계속된다.
예전 과학관 울타리에서 관찰할 때엔 머리쪽을 툭툭 건드려서 반응을 보곤 했었다.
그 때마다 화를 내듯 머리에 '노란 뿔'(후각)을 내미는 것이 재밌었는데..
욘석은 자극하지 않고 그냥 놔둔다. 내적 친밀감이 들어서인지 화를 돋구고 싶지 않은 것이다.
2025년5월2일(금), 15일차
5령이 된지 5일 정도 되었으니
조만간 번데기가 될 텐데..
앞으로 4일간 연휴이다 보니 그 과정을 보지 못할 것 같아 아쉬울 따름이다.
2025년5월4일(일), 17일차
연휴를 맞아 온 가족이 함께 덕유산 등반을 하고 난 뒤
귀가 길에 연구소에 들러서 사무실에 올라가보니.. 애벌레가 보이지 않는다.
혹시나 하고 옆에 있던 파키라나무를 살펴보니.. 거기에 있다.
그런데 모양이 달라졌다. 몸집이 2/3 가량 줄어든 것이다.
번데기가 되기 위해 체액을 밖으로 내 보내어 몸집이 줄었고..
안전한 곳에서 전용하기 위해 파키라나무의 넓은 잎 아래에 자리잡은 것 같다.
머리와 꼬리는
입에서 토해낸 실로 고정시킨 것 같다.
이제 이동할 수 없어 위험하므로 안전한 곳을 찾은 것이다.
2025년5월7일(수), 20일차
연휴를 마치고 출근하여 다시 살펴보니..
호랑나비 애벌레가 완전히 번데기로 전용하였다.
통상 번데기 기간은 10~15일이라 한다. 그후 나비로 우화한다.
가을에는 이 상태로 월동하여 이듬해에 우화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초봄의 호랑나비는 월동한 번데기에서 나온 것이다.
몸통이 마치 고치처럼 단단해보이고
등짝에 실을 걸어놓고 있다.
2025년5월8일(목), 21일차
번데기가 자리잡고 있는 파키라 나뭇가지를 잘라내어 집으로 가져온다.
좀 더 편하게 관찰하겠단 생각도 있었지만,
그 보다도 우화한 뒤에 채집하여 자연에 내보내려면 아무래도 집이 나을 듯 싶었다.
2025년5월9일(금), 22일차
좀 더 관찰하기 좋도록 화분을 바꾼다.
번데기가 허물을 벗으면 나타날
더듬이, 겹눈, 다리, 날개 등의 문양이 점점 더 도드라지고 있다.
2025년5월12일(월), 25일차
번데기의 머리부분이 좀 더 흰색으로 변하고 있다.
더듬이 윤곽도 더욱 도드라졌다.
2025년5월16일(금), 29일차
밤 12시가 가까워질 무렵..
번데기 허물이 얇아진 듯 등짝에 날개의 검은 줄 문양이 뚜렸하게 보인다.
이제 곧 우화할 듯 싶다.
그 동안 정들었는데 이제 떠나보내야 할 시간이 다가오니
묘한 아쉬움까지 움튼다.
그런데.. 그런데..
이 때의 사진들을 어찌어찌 하다 다 날려버렸다. 헉~~ㅠㅠ
2025년5월17일(토), 30일차
새벽 4시반에 기상..
번데기 허물이 보이고.. 그 옆에 호랑나비가 날개를 폈다 접었다 한다.
방금 우화하여 날개를 말리고 있는 중인 듯 싶다.
새벽 5시. 등산 가는 날이라 이른 아침을 먹으러 주방으로 간다.
나비는 날아가봐야 방 밖을 벗어나지 못 할 테고..
그 사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관찰하기 위해
나비 옆에 갤럭시탭을 거치하고 동영상 앱을 작동시킨다.
식사후 돌아와보니 나비가 사라지고 번데기 허물만 남았다.
동영상을 살펴보니 나비가 위로 날라갔음이 확인된다.
천장을 바라보니..
형광등 갓 속에서 그의 행방이 드러난다.
일단은 저 상태로 놔두고 오전 5시40분경 산행을 위해 집을 나선다.
2025년5월18일(일), 31일차
간밤에 먹은 술이 깨기도 전에 기상하여
형광등 갓에서 호랑나비를 잡아서 내려놓는다.
아직 날개짓이 능숙하지 않은 듯 이따금씩 펄럭 거리며..
손을 거쳐서 팔뚝으로 올라와 관찰자와 눈을 마주친다. ^^
이후 등까지 올라가더니..
창가로 날아가 힘차게 날개짓을 한다.
이제 자연 속으로 보내야 하기에
조심스럽게 날개를 잡은 뒤 집밖으로 나선다.
아파트 화단으로 가서
활짝 핀 연산홍 위에 올려준다.
이후 벚나무로 날아가 날개를 살살 펄럭거리며
관찰자와 한동안 눈 맞춤을 한다. 그러한 느낌적 느낌이었다. ^^
그러다가 훌쩍 날아가버린다.
31일간의 만남이 그렇게 끝났다.
2025년5월22일(목), 우화 후 4일차
호랑나비가 날아간 후
차일피일 미루던 관찰일기를 이제야 정리한다.
아직도 내 방엔 호랑나비 번데기 허물이 남아있다.
성충이 된 나비는 2주 가량 산다고 한다.
그 사이 짝짓기 잘하여 탱자나무나 산초나무에 건강한 알을 낳길 바랄 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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