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 거창 미녀봉/숙성산 (2023.12.9)
2023년12월9일(토)
대한토 산우와 함께 거창 미녀봉/숙성산을 찾아간다.
미녀봉은 경남 거창군 가조면에 있는 문재산(文載山, 930m)의 주봉을 일컬으며
문재산 일대의 산자락이 '미녀가 누워 있는 형상'처럼 보이는 데서 지어진 이름이다.
대한토는 이미 차돌이대장(2007.12.8) 및 다큐대장(2017.11.4)이 주관해서 다녀온 산행지이다.
필자는 그 두 차례 모두 참가했었고, 산행기도 썼었던 바 비교적 소상하게 기억하고 있는 산이다..
오전 9시30분경, 버스가 함양JC를 통해 광주대구고속도로(12번 고속국도)를 따라 가조평야에 들어서니
우측 전답 너머로 눈에 익은 산자락이 보인다. 오도산, 문재산(미녀봉), 숙성산이다.
그 중 문재산 산자락인 미녀봉으로부터 머리봉까지의 실루엣에서 미녀의 형상을 찾을 수 있다.
그 부분만 살펴보면
풀어 헤친 긴 머리카락, 단아한 이마, 까만 눈썹, 오똑한 콧날, 헤벌린 입,
또렷한 턱과 목을 거쳐 봉긋한 젖가슴 아래로 아기를 잉태한 듯 불룩한 배, 약간 구부린 무릎 등
한 여성의 누워있는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혹자는 산 전체가 여체를 형상화하여 성적 호기심을 자아내게 하는 자연의 걸작품이라 말하기도 한다.
오전 9시40분경, 버스가 거창 허브빌리지에 들어선다.
교실 같은 건물과 연단 위에 놓인 걸상이 이곳이 폐교된 학교 부지임을 짐작케 한다.
자료를 찾아보니 이곳은 1999년 가조초등학교에 통폐합된 석강초교 부지이다.
거창허브빌리지는 라벤더를 비롯 200여 종의 허브와 꽃, 그리고 60여 종의 나무를 가꾸며,
여기서 가꾼 허브와 지역 특산물 판매하는 매장, 허브정원, 카페, 펜션도 아울러 운영하는 문화공간이라 한다.
빌리지를 둘러싸고 있는 건물 너머엔 미녀가 입을 삐죽이며 누워있다.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이목구비가 다소 달라보이는 것 같다.
오전 9시46분, 산행을 시작한다.
주관대장이며 선두대장인 다큐님이 들머리를 잡기 위해 폐교에서 도로로 다시 나와 왼쪽으로 향한다.
담장 끝에서 왼편으로 돌아서면 석강농공단지가 나오고, 그 농공단지를 지나야 산행들머리가 나타날 것이다.
산행코스는
A코스: 석강마을-유방샘-미녀봉-유방봉-이마봉-말목재-시리봉-숙성산-학산마을(10.5km, 5시간 30분)
B코스: 석강마을-유방샘-유방봉-이마봉-말목재-시리봉-광성마을(8.0km, 4시간 30분) 등으로 계획되었다.
오전 9시48분, 석강농공단지에 진입한다.
미녀는 여전히 고개를 하늘로 향한 채 도도하게 산객들을 외면하고 있지만,
짐짓 반갑게 맞아주리라 상상해본다. "어여 오시와요~ 들~~"
농공단지가 산자락과 접하기 직전, 울타리 사이로 길이 나 있다.
그 길을 따라 전진..
오전 10시, 울타리 끝에서 다시 왼쪽으로 꺾어들어가면..
미녀가 한층 가깝게 다가온다.
이후 5분 가량 오르면 소형차 주차장으로 이용되는 실질적인 산행들머리가 나온다.
그곳 이정표는 미녀봉이 2.7km 남았음을 알려준다.
오던 길을 되돌아보면..
가조 평야를 둘러싼 산군 중의 하나인 박유산(朴儒山·712m)이 뾰족한 정수리를 내밀고 있다.
주변 산군 중 가장 낮지만 가조면을 둘러싼 모든 산들을 바라볼 수 있는 최고의 조망처라 한다.
산이름은 신라말 선비 박유(朴儒)가 새 왕조의 부름을 마다하고 은거해 지내던 곳이라 하여 유래된 것이라 한다.
산길 초입은 산책길처럼 편안하고 완만하게 이어진다.
오전 10시20분, 정자나무에 이른다.
옆에 세워진 안내판에는 미녀봉에 얽힌 두 가지 전설을 소개하고 있다.
하나는..
한 처녀가 어머니 약을 구하기 위해 이 산에 올랐다가 뱀에 물려 죽었는데
이를 불쌍히 여긴 산신이 그 효녀의 형상을 본 따서 산을 만들었다는 이야기..
또 하나는
가조평야가 바다였던 아주 옛날 한 장수가 나룻배에 의지하며 표류하였고
그를 구하기 위해 옥황상제가 도력이 좋은 딸을 지상으로 보내 그를 구하였는데
그 둘이 서로 눈이 맞아 사랑하게 되었고, 옥황상제는 대노하여 둘을 갈라놓고 산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정자나무 노거수를 잠시 살펴보니
잎 결각에 침상이 뚜렷하게 나와 있어 상수리나무로 추정해본다.
수세를 보아 수령은 300년 이상일 듯 싶다.
정자나무에서 5분 가량 전진하면
유방샘이 나온다.
유방봉에서 흘러내려 돌 사이에 고인 샘물이다.
선뜻 먹고 싶진 않기에 그냥 지나쳤는데, 한 모금 먹은 분들은 맛이 좋았다고 한다.
유방샘 이정표는
미녀봉으로 직접 오르는 길(1.5km)과 머리봉을 거쳐 미녀봉으로 오르는 길(2.1km)을 알려주고 있다.
우리 일행은 미녀봉으로 직접 오른 뒤 머리봉을 거쳐 숙성산으로 갈 계획이어서 왼편으로 오른다.
이후 가파른 등로에 낙엽이 두텁게 쌓여 있어 발걸음이 편치 않다.
그렇게 25분 가량 땀을 한소끔 쏟으며 오르니 805봉이 60미터 남았음을 알려준다.
미녀봉은 805봉에 오른 뒤 왼쪽 산기슭을 따라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야 한다.
왼편에 보이는 봉우리가 미녀봉 정상인 것으로 보인다.
오전 10시55분, 805봉에 오른다.
미녀봉은 이곳에서 왼쪽으로 700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숙성산은 오른 쪽으로 3.3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그러니까 A코스는 우선 왼편 미녀봉에 갔다가 이곳으로 되돌아와 오른 편 숙성산으로 갈 계획이다.
오전 10시56분, 미녀봉으로 향한다.
조금 전진하니 전방에 미녀봉이 밋밋한 정수리를 보여준다.
등로 우측엔 오도산(吾道山, 1,134m)이 조망된다.
산 정상에 설치된 철탑은 KT 중계소라 하며,
조망이 출중하여 일출, 일몰, 운해를 담기 위해 많은 출사객들이 찾아오는 곳이라 한다.
등로 왼편으론 비계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비계산(飛鷄山, 1130m)은 봉황이 날개를 펼치며 나르는 형상이라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여기서 계(鷄)는 닭이 아닌 '봉황'을 뜻한다고 한다.
그 왼편에 장군봉이 하얀 암봉을 드러내고 있다.
옥황상제가 자신의 딸과 눈이 맞은 장수를 벌하여 만들어졌다는 장군봉이 바로 저곳이다.
그와 사랑을 나누던 여인은 미녀봉으로 변신하여 이곳에 자리잡고 있으니..
아직도 서로 마주 보며 애틋한 눈길을 나누고 있을 것이라며 애써 러브스토리를 완성해본다.
장군봉 왼편으로 수도지맥인 보해산-금귀산-박유산이 맥을 잇고 있고
그들이 둘러싸고 있는 너른 평지가 가조평야다.
저 분지 지형이 백두산 천지와 모양이 비슷하다고 한다. 그래서 저곳에 '백두산천지 온천'도 있다.
광주대구고속국도(구 팔팔고속국도)는 가조평야를 가르며 지나고 있고,
산행 출발점인 거창 허브빌리지(구 석강초교)는 산기슭 아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전 11시09분, 문재산 미녀봉에 이른다.
정상석 옆에는 문재산(文載山)의 유래를 소개하고 있는데
앞서 소개된 미녀봉에 대한 전설만 적어놓았다.
글(文)을 쌓아놓은(載) 산이라 하여 무언가 유래가 있을 법도 한데 그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쩝~
A코스 선두일행 인증샷..
오전 11시30분경, 805봉으로 되돌아와 인근 헬기장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식사 말미에 초롱이님이 락엔락 통에 담긴 김밥을 가르키며 인생 최고의 맛이라 칭찬한다.^^
한흥수님이 싸온 김밥인데 비주얼만 보아도 정성 가득함이 느껴진다.
오전 11시50분, 중식을 마친 뒤
아직 식사 중인 A코스 후미와 B코스 일행은 뒤로 하고
다큐대장을 쫓아 산행을 재개한다.
오전 11시57분, 유방샘 갈림길을 지난다.
유방샘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오르면 만나게 되는 곳인 것 같다.
이정표는 전방으로 2.9km 가면 숙성산 정상을 만날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조금 더 오르니 전방에 뾰족한 바위가 보인다. 아마도 유방봉 꼭지바위일 것이다.
평지에서 올려보면 유방봉 끝에 뾰족하게 솟은 꼭지 형상이 보인다.
저 바위가 바로 그 쪽지로 보이는 것 같다.
조금 더 오르면 유방봉 이정표가 나온다.
유방봉은 거북등 같이 쩍쩍 갈라진 바위가 모여서 봉우리를 형성하고 있다.
좀 전에 보았던 꼭지바위는 유방봉을 지나는 등로에서 벗어나 저편에 홀로 솟아 있는 바위다.
다시 이어지는 등로 전방에 나즈막한 봉우리가 보인다. 미녀의 이마에 해당하는 머리봉이다.
남서쪽으로 오늘 목적지인 숙성산도 모습을 드러낸다.
머리봉 직전에 솟은 바위는 코바위다.
지상에서는 저 바위가 오똑한 코로 보이는 것이다.
오후 12시08분, 코바위를 넘어서니 눈썹바위가 나온다.
꽤 크고 높은 바위가 미녀의 눈썹 역할을 하고 있다.
오후 12시09분, 머리봉을 지나고..
제법 가파른 내리막을 타고 내려 오후 12시29분 말목재에 이른다.
이제 문재산을 벗어나 숙성산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이후 등로는 소나무 숲과 떡갈나무 숲이 교대로 이어지는데
등산객이 많이 다니지 않아서인지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있는 구간이 가파른 오르막에 종종 나타나 산객을 애먹인다.
오후 12시53분, 시리봉 정상(836m)에 이른다.
제법 가파른 등로를 따라 올랐지만 정상은 봉우리라 부르기에는 애매하게 밋밋하다.
시리봉에서 하산하는 B코스 산우들을 위해 하산로를 찾아보지만
지도상에 표시된 우측 하산로는 잡풀이 우거져서 티미하다.
그러한 사정이 다큐대장 무전기를 통해 수석대장 및 B코스 대장들에게 전파되었고..
논의 끝에 B코스 일행은 레간자대장 인솔하에 말목재에서 내려가는 것으로 조정된다.
A코스 선두일행은 계속해서 직진하여..
오후 1시12분, 숙성산 정상에 이른다.
숙성산(宿星山)은..
옛날 도선국사가 이 산 밑에서 노숙하면서 별을 보고 점을 쳐서
팔도강산의 방향을 찾았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정상석에 그려진 북두칠성은 그런 이야기를 담아 놓은 것 같다.
숙성산에서 하산..
오후 1시22분, 우측 전방에 희미한 하늘금이 눈길을 잡기에 잘 살펴보니 익숙하다. 오호~
덕유산 향적봉으로부터 무룡산-삿갓봉을 지나 남덕유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이다.
조금 더 하산하니 왼편으로 합천호가 보인다.
합천호에 뒷편엔 황매산이 거한처럼 자리잡고 뒷짐지고 있다.
이후 이어지는 가파른 등로는
두텁게 쌓인 낙엽 때문에 방심하면 중심을 잃고 넘어지기 십상이여서 조심조심 하산..
오후 1시56분, 봉화재에 이른다.
이제 인적 없는 산길을 벗어나 세멘트 포장길을 따라 내려가니 한결 편안하다.
오후 2시11분, 송아정골이라는 골짜기를 지나 고개마루에 올라서니
전방에 가조평야가 시야에 들어온다.
학산소류지를 지나 조금 더 내려가니 학산마을에 가까워진다.
오후 2시15분, 학산마을에 당도한다.
학산마을은 마을 뒷편에 솟아 있는 숙성산이 마치 학이 나래짓을 하는 형상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마을 텃밭엔 구기자가 열매를 맺어놓았다.
학산마을에서 포장도로를 따라 학천사로 향한다.
도중에 대한토버스가 학산마을로 올라가기에 다시 내려올 때 타겠다고 하며 통과시켰다.
10분 가량 내려가니 학천사가 나온다.
2017년 미녀봉 산행 후 여기를 들렀을 때 처음 본 옥외 닫집이 생각나기에 다시 찾아온 것이다.
닫집은 불단이나 어좌 위에 목조건물의 처마구조물 처럼 만드는 조형물인데..
절집 바깥 처마 아래에 만든 닫집은 우리나라에서 여기가 유일하다고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만난 이곳 스님 말에 따르면
실내에 들어가기 힘든 장애자들이 쉬이 예불을 드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렇게 실외 닫집을 설치해놓았다고 한다.
닫집 아래에 부처님과 협시보살을 그려놓은 탱화를 불단으로 삼는 모양이다.
그나저나 학천사 경내에서 몸을 씻고 옷도 갈아입으며 대한토 버스를 기다리는데..
이철헌사장님 왈, 학산마을에서 A코스 후미를 기다리느라 출발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도 30분 가량 더 걸릴 것 같다고 하기에.. 끙~하며 다시 학산마을로 올라간다. 산행 끝.
산행거리 13.2km에 산행시간 4시간40분 소요되었다.
미녀품에 앵겨겼다가 낙엽에 푹푹 빠진 산행이었다. 뭔소리지? ^^